김경욱 위원장, 아니 이제는 위원장이 아니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 신세가 된 김경욱을 만난다고 구로역으로 간다고 한다.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뒤돌아서는 순간 이경옥이 부른다.
▲ 참세상 자료사진 |
“사실은 저 남편과 사별하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 했어요.”
“네? 아, 네에.”
“누군지 아세요?”
머리를 긁적였다.
“노동조합하고 결혼해서 함께 살아요. 정말 잘 결혼했다고 생각해요. 만약 노동조합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처지를 비관만 했다면 이제껏 살아 있지 못할 거예요. 아마 미쳐 버렸을 거예요. 내가 힘없는 존재잖아요. 힘없는 사람들이 자기 힘없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어떻게든지 혼자 살아보려고 바동거리잖아요. 그러다보니 치사하게 살며 버티려고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버티기도 살아남기도 쉽지 않잖아요. 힘없는 사람은. 전 내가 힘없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산 거예요. 노동조합을 만났고,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힘없는 내가, 비겁하고 치사하게 살아남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매번 무모한 투쟁과 파업을 했지만 내 삶에서는 한 번도 지지 않고 승리한 거예요. 그래서 전 노동조합과 결혼한 게 너무 행복해요.”
이경옥만이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는 아닐 것이다. 쫓겨남이 일상화되고 떠도는 걸 상식처럼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국가는 있는 걸까? 국민은 있는 걸까? 또 의문이 든다. 과연 정규직이 있는 걸까? 자신이 현재 정규직이라고 해서 지금 자신이 안정된 일터에서 일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모두가 비정규직이다. 모두가 보장되지 않는 땅에서 보장되지 않는 노동을 하며 보장되지 않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하루아침에 파산신고를 하고 자본을 철수해버린 쌍용자동차, 십년을 죽어라 다닌 일터가 자신도 모르게 하룻밤사이에 이사를 가버린 자티전자, 단체장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국립오페라단 단원들. 지금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고 맘 편히 일하는 걸까.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안녕한 사회일까. 대학생들은, 청소년은 미래에 자신이 안주할 땅이 있을까?
▲ 참세상 자료사진 |
자신이 디아스포라임을 이미 깨달은 이경옥이 정말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내가 힘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인정한 이경옥. ‘나름’의 생존법을 찾아 당당하게 살려는 이경옥이 말이다.
이경옥이 지금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역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숱한 디아스포라들이 이경옥과 같은 방향으로,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이경옥과 등을 지고 발길을 옮긴다. 순간 사람들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땅이 사라졌다. 아니 땅이 사라진 게 아니라 땅을 딛고 걸어야 할 실체가, 존재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가산디지털단지역 퇴근시간, 지금 사라진 존재들의 허상들이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다.(끝)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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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