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전략회의는 오는 24일 오후 3시30분 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진보좌파정치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나(1)’를 토론한다.
주된 토론 지점으로는 △민주노동당 분당의 의미와 진보신당 △사회주의노동자당준비모임의 행보 △진보좌파 이념의 재구성 △진보좌파운동의 혁신과 현재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 등이다.
이날 토론에는 고민택 사회주의노동자당준비모임 활동가, 김인식 ‘레프트21’ 발행인,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박영균 진보평론 편집위원, 박진희 진보정치포럼 대표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발표자의 견해를 미리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아래는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의 글이다. 발표자의 글이 도착하는 대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들어가는 이야기
1. 민주노동당 분당의 의미와 진보신당에 대한 생각들
1-1. 분당의 원인에 관한 평가
2008년 2월 민주노동당 분당의 원인, 혹은 명분으로 이야기되었던 것은 대표적으로 자주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였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실제로 존재했고,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집단적 관념이나 작풍과 연관된 것이었다. 때문에 분당의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실질적이고 심각한 이유였지만, 당 외에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과도하거나 지엽적인 문제제기로 비췄던 면도 있었음이 사실이다.
이러한 지적은 부분 타당하다. 선도탈당을 결행한 세력도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만 없으면 훌륭한 진보정당이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고, 자주파와의 절연이 분당과 신당 창당의 궁극적 목표라고 표방한 바도 없다. 다만 그러한 문제들이 예상보다 이르게, 준비를 갖추기 전에 분당을 강제했다고 사후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분당 결행의 상황 판단과 시기 선택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토론거리가 아닐 줄 안다.
오히려 환기하고 싶은 것은, 민주노동당으로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맥락과 존재적 구성에 대한 질문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비판적 지지를 한발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 필요성과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민족주의 세력부터 민주노총까지 일단 모두 끌어모아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과제를 돌파하자는 구상이 민주노동당 전략의 성격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97년-2000년 사이에 사회당과 정치연대, 이후 노힘은 다른 판단을 했었다.
민주노동당은 2002-2004년 사이에 소기의 목표를 이루었고 이를 폄하하긴 어렵다. 그러나 가능성을 입증한 이후에 새로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진전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신과 노동계급 구성의 변화와 결부된 대중운동 지형의 변화가 진행되었다.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87년-2000년 사이의 구호였고, 변화한 한국사회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구호와 노선을 필요로 했지만(사회경제적 민주화, 혹은 보수/진보가 아닌 좌/우로의 정립 등으로 표현되는...) 민주노동당의 구성은 그 이상을 하기 어려웠다. 즉 단지 자주파 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나는 ‘87년 체제의 지연된 종언’이라고 표현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성공의 일 단계를 거치는 순간 이내 대체를 요구받고 있었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큰 틀에서의 고려와 현실 정치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선택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87체제’의 성격과 건설 방향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벌이는 것이 지금 좌파진영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논의는 부진한 것 같다.
1-2. 진보신당의 재창당에 관한 평가
질문이 다분히 진보신당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고 보는데, 어차피 토론자들은 이를 감안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레디앙' 기고문을 통해, “진보신당의 제2창당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제2창당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었고 임무가 주어졌는데 못했다는 뜻이다. 내용으로 보면 첫째, 포스트-87체제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진보정당운동의 외연을 그리고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고 둘째, 진보의 재구성이라 표현된 새로운 정치노선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 과제 모두 실패했다기 보다, 착수하지를 않았다. 가능하고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인데, 기회가 있었음에도 시도하지 않았다. 사회당, 사노준 등과의 직간접적 만남은 의무방어 성격이었다. 이는 일차적으로 당연히 진보신당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진보신당만의 일로만 간주했을 때 그렇다. 외부 좌파 세력들이 진보신당에 어떤 프리미엄을 부여할 이유는 없지만,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전략적 사고와 행보를 지금 누구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인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중간 결론으로 말하자면, 진보신당의 제2창당은 정치적 수사로 종결되거나 무산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만약 제3창당이라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진보신당만의 일이 아니라 좌파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이라는 공동의 과제로 인식되고 공동의 작업이 진행될 때 가능해질 것이다.
2.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의 행보에 대한 생각들
2-1. 성격, 건설경로 등에 관한 평가
사노준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되는 게 잘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는 물론 진보신당에게 거꾸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거쳐 여차여차 노동계급 독자정당 건설 논의의 단계까지 왔다. 노힘을 해산하고 외통수를 선택한 것은 정당하고 잘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구상과 의지를 액면을 봐서 알기는 쉽지 않다. 말하자면 조직의 역사성이나 색깔이라 해도 좋을 것인데, 이를 넘지 못하면 그게 써클주의다.
사노준은 출범대회에서 당의 성격을 △사회주의 정당 △노동자정당 △생태, 여성, 소수자 등 21세기 사회변혁 과제 △사회변혁을 위한 정당 △민주적인 정당 △당원이 일상적으로 행동하는 정당으로 잡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100인 내외의 준비모임으로 출발, 2009년 상반기 추진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하고, 2010년 전후에 출범한다는 계획이나 일정박기 식은 안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라면 진보신당하고 논의를 못할 이유도 없다.
현장 좌파 분파들 사이에서도 이견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핵심은 이념지향의 문제, 합법성 및 제도참여의 문제, 계급중심성과 세력 연합의 문제, 활동 방식의 문제 등으로 집약될 것이다. 이러한 의제들에 대해 사노준은 원칙적으로는 매우 개방적이나, 실제로는 그룹 내부의 규합과 논의에 치중하고 있는 인상이다. 좌파 역량의 부족함을 절감하는 입장에서 다소 치사한 비판일 수 있지만 결론부터 일부 이야기하자면, 보다 선명한 정치노선과 프로그램이 있다면 현실 정치에서 보다 개방적인 논의와 상호 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본격적인 이야기
3. 진보좌파 이념의 재구성 문제
3-1.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등의 문제는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것인가
-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위의 문제들이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없다면 왜 그런 것인가
- 위의 문제들이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이 점점 본고사 논술로 접어들고 있는데, 오히려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의 주장은 인식론적으로 노동계급의 ‘당파성’ 측면으로, 정치적으로는 억압과 착취의 피해자이자 변혁과 새로운 세계 건설의 주체 세력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철학적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한이 없겠지만, 자본주의 모순의 일차성을 인정하는 한 노동계급 중심성은 재론될 수밖에 없다. 다만 20세기 노동계급의 지배적인 상, 즉 집합적 육체노동자와 남성가장의 상은 상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결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가부장제, 환경 착취와 군비경제 속에서 노동계급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자본주의 재생산과 공모하거나 혹은 저항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현재의 조직노동과 상당히 다른, 혹은 새롭게 재형성되어야 할 노동계급을 상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장 좌파 동지들에게 진지하게 되묻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수평적 연계 가능성은 반자본주의를 상위 구호로 할 때 충분히 가능하고 지금 같은 시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수평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상위와 하위의 모순을 전제한다는 것인데, 평등 이후의 생태나 평등 이후의 평화 이런 것은 현실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자본주의의 원환적 논리구조를 인정하는 꼴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부분의 인정 여부가 구좌파와 신좌파를 가르는 기준선일 수도 있는데, 이는 논쟁해볼만한 문제다.
3-2.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3-3. 정치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3-4. 정치운동과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하는가
세 가지 질문은 결국 하나라고 보는데, 운동세력이 인적 역량이 부족하고 컨텐츠가 빈곤하며 따라서 매력이 없고 고립되고 있는 문제다. 촛불 소녀소년들이 자라나는 10년 후까지 버텨볼 수 있겠지만, 세대의 균질성을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고 대기론은 더욱 안 될 말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경우는, 민주노총을 대체할 운동 구심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민주노총을 깨자는 말이냐고 경계하는 시선이 많은데, 당연한 우려라고 본다. 하지만 의식이 존재를 배반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 중앙과 조합원이 존재하는 조건이 변화했는데 ‘어게인 전노협정신’을 외친다고 민주노총의 변혁성이 생겨날 수는 없다.
민주노총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합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건강한 대중적 정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좌파 활동가들은 다른 구상을 세우고 역량을 이전하는 게 맞다. 민주노총이 포괄하거나 소화할 수 없는 운동 주체와 영역 부분이 그것이다. 제3노총 이야기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오고 또 실현될 것이다. 청산주의다, 분열주의다 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더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돌파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정치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을 아우르는 그림이 없다. 진보운동 내 우파든 좌파든 마찬가지다. 역량의 부족과 컨텐츠의 빈곤을 당장 어쩌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먼저 깃발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감으로써 풀어갈 수밖에 없다. 대략 2015-2020년 정도까지를 보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이 사이에는 경제위기의 여파, 사회계급의 변화, 피크오일, 국내 지배계급의 재편과 몇 차례의 주요 정치일정이 있을 것이다. 판을 바꾸거나 주도할 기획과 세력을 낼 수 있느냐가 판가름 될 계기들이다.
마무리 이야기
4. 향후 진보좌파운동의 나아가야 할 길
4-1. 진보좌파운동의 혁신을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4-2. 지금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
- 다가오는 보궐선거, 2010 지자체선거에서의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기타
토론자로 나온 이들이 대변하는 세력을 서로 비판하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나 각각의 세력들의 바운더리에서 두 걸음만 나오면 한국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좌파운동 내에서도 거의 무의미하다. 각자가 포괄할 수 있는 내부 그룹정치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나고 소통하자는 착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구상 속에 각 세력을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큰 그림이 있고 자리매김이 있다면 좋든 나쁘든 서로 해야 할 말이 있다.
노힘부터 와서 지금 사노준 동지들은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당 운동을 실패로 규정하며, 합법 개량주의의 폐해를 지적해왔다. 좌파 대중정당 운동이 굉장히 많은 것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회운동 일반은 물론 좌파 정치운동도 진보정당 운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민주노동당이 그리고 지금 진보신당이 ‘유포’하는 합법 개량주의가 그렇게 남한 좌파운동에 해악적이고 치명적이라면 왜 사노준은 합법정당 조직들을 공공연히 비판하지 않는가? 지난 10년간 대중운동의 퇴보가 진보정당의 합법주의 교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진보신당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사노준은 진보신당이 사민주의 세력이 장악하기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연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런데 진보신당 내에 일관되고 강력한 사민주의 세력이나 인사가 있기는 한가?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정확한 것인가? 사노준 정도의 활동력과 투쟁력을 가진 조직이 반자본주의 성향의 진보정당 조직 하나를 활용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또는, 사회주의 노동계급 정당 지향 세력에게 대중적 좌파정당 지향 조직은 어떤 전략적 의미가 있거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피차가 대중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자학적 규정을 하지 않는다면, 서로 무책임했고, 결과적으로 각자에게도 무책임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지금 진보좌파운동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 가지다. 각자의 분명한 깃발, 솔직한 자기 인정, 단계적이거나 제한적이어도 좋지만 서로에 대한 자리매김과 소통 의지. 당분간의 각개약진은 불가피하겠지만 그게 전제되어야 이후에 공동의/ 각자의 평가도 가능하고 공동의/각자의 진도도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