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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왜 도대체 그래야만 했는가

[기고]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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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아침. 불타오르던 망루. 사람이 있다는 절규. 빠른 속도로 아래로 툭하고 떨어져 내리던 영혼.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입니다’라는 글에서 조세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때 어느 부대가 또 급습했습니다. 농민 하나가 퍽하고 쓰러졌습니다. 옆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다른 농민 한 명이 나더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난 영혼이 푹 쓰러졌습니다.” 같은 느낌.

불타오르는 망루, 망루를 향해 들어 올려진 위태로운 컨테이너 박스. 무슨 일이 있다고, 저렇게 까지 하고 있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저게 뭐하는 짓인지, TV를 통해, 동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 불타는 망루. 그 모습을 시청한 국민들은 야만을 본 것이다.

사실, 참사의 진실 진상 규명은 그게 다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상조사 작업이지만, 처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느 여성단체의 피켓에 써있었던, ‘진압이 아니고 구조였다면 살릴 수 있었다’는 말이 모든 것일 뿐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소방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화면으로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토록 시너물질이 많은 곳에, 그것도 그렇게 높은 곳에서 불이 났다면, 애초부터 화학소방차로도 진화가 되지 않습니다. 소방기초 지식입니다. 위험한 거 경찰도 알았을 껍니다. 그건 처음부터 무모한 일이었어요.”그렇다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것 같냐고 했더니, 그는 오랫동안 머뭇거린 후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사람으로 보지 않은 거죠. 거기 있던 사람들을...”

거기 있던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부자들을 위한 화려하고 세련된 대한민국의,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삼성과 대림과 포스코가, 도대체 개발로 인한 이익이 얼마에 다다를지 알 수 없는 사업을,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 살아 보겠다고 버티던 가난한 사람들. 갈 곳이 없어 투쟁하던 사람들 아마 거추장스럽고 귀찮고 쓸어버리고 싶고 그랬을 것이다. 삼성이 대림이, 포스코가 그랬을 것이다. 그들의 용역하청을 받은 철거업체 호람과 현암이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그랬을 것이다. 망루까지 쌓고 새총과 화염병을 들고 오르는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빨리 치워버리고, 빨리 쓸어버려야할 벌레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아니었다. 망루에 오른 사람들도 국민이었고, 설령 그들이 불법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생명만은 아껴주고 지켜줘야 하는 시민들이었다. 도망갈 수도 없이 아래로 위로 컨테이너 박스를 공중에 매달고 경찰 특공대가 치고 올라가, 불이 붙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해야할 적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하늘 꼭대기 망루로 올라갔다. 처자식과 살던 대로 살아보겠다는 단순한 욕망이 그토록 용서되지 않는 불법이었나.

아들과 함께 복요리 전문점을 같이 경영하는 게 꿈이었던 복집 사장 양회성 씨, 갈비집이 힘들어 막내 아들 내외와 호프집을 개장한 용산 토박이 이상림 씨, 함께 오른 망루에서 아버지를 잃고 뛰어내려 지금은 구속 수감된 이충연 위원장, 금은방 김사장, 중국집 김사장. 그런 보통사람이었다. 쫓겨난 자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달려왔던 윤용헌 씨, 이성수 씨, 한대성 씨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복면을 하고 화염병을 들고 망루에 올랐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다. 그 사정을 돌아봐 줘야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었다.

기준도 이유도 알 수 없는 턱없는 보상금을 쥐어주던 재개발 조합 사람들. 행정대집행 절차도 없이 들이 닥쳐 철대위 사무실을 깨부수던 구청. 똥을 뿌리고 할머니를 바닥에 패대기치는 험악한 용역놈들. 용역에게 죽도록 맞아도 출동하지 않던 경찰. 평생을 걸었던 장사 밑천, 보상금 몇 푼으로 해결하지 말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묵살하던 세상. 그래서 올라간 망루였다. 그걸 단 한번이라도 돌아봐 줬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거기서부터 검찰 조사는 시작되어야 했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거대 검찰조직은 그걸 했어야 했다. 철거민이 시너를 콸콸 쏟아 붓고, 화염병에 불을 붙여 내리 꽂아 화재가 났다는, 초라한 결론을 내기 위해 불철주야 일해야 했던 것이 아니라,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을 먼저 살폈어야 한다. 그리고 철거민을 쓸어버리고 싶던 자본가들의 조급했던 욕망을 대리해준 국가 공권력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토록 말도 안 되는 진압으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밝혔어야 했다.

첨단 과학 기법을 총동원해서 망루 안의 철거민 시계까지 확대 재생한 그 정성으로, 화재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세녹스의 폭발력까지 실험했던 그 정성으로, 철거민들이 망루 짓는 사전 모의 장소까지 찾아가 압수수색을 했던 그 정성으로, 전철연의 자금 유통 경로를 싸그리 조사하고도 혐의점 하나 찾지 못한 그 정성으로. 시너성분의 유류품이 다량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초도 지키지 않은 진압을 강행했던 근본 원인. 망루 쌓은지 단 하루 만에 경찰력을 투입해서 참사를 빚게 만든 검은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심장이 있는 법적 양심이 있는 검찰이었다면 그걸 했어야 했다.

불은 두 번 났었다. 참사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 15분 전에 바깥에서도 관찰될 정도의 큰 불이 났었다. 그렇다면 그때 멈췄어야 했다. 그때 멈추기만 했어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김남훈 경장도, 이상림 씨, 양회성 씨, 윤용헌 씨, 이성수 씨, 한대성 씨. 그들 누구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망루를 쌓고 화염병을 던졌다는 이유로 설령 구속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 달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영안실에서 쪽잠을 자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지키고 싶었던 가족들이 자신들의 49재를 통곡으로 보내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멈추기만 했었어도.

발화 원인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토끼몰이 하듯이 아래로 위로 퇴로 확보조차 없이 숨통을 조이던 그들의 작전이 발화의 원인이다. 안전 조치 없이 진압 지시만 되풀이 하는 그들의 무전 내용. 불이 나 망루가 쓰러질 때야 망루안의 안전을 되묻던, 말도 안 되는 경찰들의 진압작전이 참사의 원인이다. 원인 모를 가스에 의해 쓰러져 불탄 망루에서 탈출할 수도 없게 만든 경찰의 작전이 살인의 원인이다. 검찰이 밝힌 대로 경찰 지배영역 밖에서 화재가 난 것이 아니라, 경찰 지배영역 안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경찰은 적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진압작전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진상조사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누가 시켰는가. 어느 고위층이 그걸 원했는가. 누가 삼성과 대림과 포스코의 입맛에 맞게, 19일 상황을 거짓으로 꾸며가면서, 마치 도심 테러처럼 보이도록 여론 조작을 하면서 기본도 안 되는 진압 작전을 벌인 것인가. 청와대의 누군가, 경찰청의 누군가, 누가 도대체 그들과 만나 밥을 먹고 만찬을 베풀고,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사기업 이윤 추구의 욕망을 대변하도록 부추겼는가.

이제 살인의 누명을 쓴 철거민들의 재판이 시작된다. 죽은 철거민 5명에 대한 죽음의 원인은 묻어둔 채, 경찰 한명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이 시작된다. 국민참여 재판을 거부했던 검찰은 상식과 양심이 있는 국민 앞에 변명과 무능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한다. 재판을 통해서 밝혀져야 할 것은 그토록 무모하고 불안하고 조급했던 진압의 근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경찰을 두둔하고 용역을 보호하면서, 검찰이 감추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다. 이 나라의 공권력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인 자에게 책임을 묻고, 죽은 자에게 사죄하는 것. 진상 규명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직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용산에는 삼성의 포크레인이 삽질을 시작하려 한다. 적법한 절차를 거친 행정대집행도 아니고, 여전히 불법 용역업체 현암과 호람의 용역들을 앞세운, 경찰의 호위를 받는 강제철거가 시작되려는 것이다. 용산 문제의 어떤 해결도 없이 여전히 그들은 조급하다. 삼성이 벌어들일 돈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조급하다. 이래도 도심 테러 때문에 그토록 무리한 진압을 서둘렀던 것인가. 이래도 철거민이 철거민과 경찰을 죽였나. 삼성의 삽질은 지금 다시, 용산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자들, 삽질을 멈추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모공동정범이다.
덧붙이는 말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