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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국민도 존재하지 않는 땅 . .

[시] 지독한 저항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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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구년 일월 이십일 아침 여섯 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 용산이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시커먼 연기가 뒤덮었다
재만 남았다
용산은 이제 대한민국이 아니다
아니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일흔이 되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내가 잠자던 천장 낮은 집은 번번이 포클레인 주걱에 무너졌다
무너진 자리엔 어김없이 남근이 불끈 발기하였다
내 키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를 찾지 못할 만큼 작아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빌딩 옥상에 컨테이너를 쌓고 망루에 올랐다
너무 작아져 보이지 않는 나를 보아달라고
나도 얼굴 있고 몸뚱이도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외쳤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망루에 오른 내 키가 불쑥 커져 내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한 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용산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천구년 일월 이십일 오전 여섯 시 이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재가 되어 사라졌다
대한민국 헌법과 함께
인권과 함께
양심과 함께
재가 되어 생존하지 않는다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졌다
이제는 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지독한 야만의 땅이 되었다
지독히 날카로운 육식 짐승만이 날뛰는 정글이 되었다

죽은 자는 야만의 땅에 존재하지 않아 행복하다
죽은 자를 기억하며 슬퍼하거나 눈물 보이지 마라
진정 애도해야 할 것은 살아남은 자들
야만의 땅에 살아남아 숨만 헐떡이는 고깃덩어리들
국가는 없다
국민는 존재한 적이 없다
오직 야수의 권력만이 있는 땅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
기쁘게 웃고 죽느냐
고통에 겨워 질질 짜며 죽느냐
야수에 저항하는 자는 웃으며 죽을 것이요
야만에 움츠린 자는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국가도 국민도 존재하지 않는 땅
남은 것은 몸뚱이마저 떳떳이 사라질 순간
진정한 테러리스트가 되어
진정한 저항을 하자
지독한 야만의 시절
지독한 저항을 하자

야수의 먹잇감인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너무 작아 존재의 가치조차 없는 내게 먼저 저항하자
내게 저항한 뒤 야만의 땅 야수에 맞서 저항하자
눈물로 호소하지 말고 육탄으로 파괴하자
진정한 저항만이 지독한 저항만이 남았을 뿐이다
야만의 땅에선 저항만이 진정 행복해지는 길이다
죽음의 땅에선 저항만이 지독하게 살아남는
유일한 오직 단 하나의 살아 숨 쉬는 길이다
지독한 저항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