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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두만강 소년은 어찌 되었을까

[김규종의 살아가는이야기] '워낭소리'가 일깨운 두만강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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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서

‘워낭’소리를 나이 들어 유심히 들은 것은 2004년 8월 초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중국의 국경마을 ‘숭선’에서 나는 오래도록 그 소리를 들었다. 처음 대하는 북녘 땅과 두만강 물줄기에 정신이 팔려서 처음에는 워낭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더욱이 두만강에서는 중국인 촌로가 낚시를 하고 있었기에 달구지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워낭소리는 문명과 거리를 둔 두만강 오지에 멀리까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달구지에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편은 간간이 채찍질로 길을 재촉하였고, 아낙의 무심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달구지 끄트머리에 그들과 등지고 앉은 작고 새까만 소년이 있었다.

두 발을 까딱까딱 하면서 달구지 움직임에 몸을 내맡긴 아이의 자태가 석양빛 아래서 자꾸만 흔들렸다. 두만강 맞은편에서 자기들을 응시하는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했다. 그때였다. 굉음소리를 내면서 군용트럭이 나타난 것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은 앞으로 질주했다. 달구지는 길을 멈추고 트럭에게 길을 터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워낭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먼지 사이로 달구지가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기 전에 소리가 먼저 존재를 알려온 것이다. 높이 솟아오른 산꼭대기에 기나긴 여름해가 걸려 작별하려는 시각. 나는 아주 오래도록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낡은 초상화나 빛바랜 정지사진의 인물처럼. 영화 <워낭소리>가 다시 일깨운 장면이다.

시간과 세월에 대하여

이충렬의 <워낭소리>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시간이다. ‘기록영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영화에 들어있는 예술적 장치로 시간에 허여된 의미가 자못 크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실제적인 시간은 대략 2년 남짓이지만, 관객이 만나는 시간은 적어도 40년 이상이다. 그것은 워낭의 주인인 소의 나이에서 기인한다.

<워낭소리>의 울림이 큰 것은 40년의 물리적 시간을 온전히 드러내는 주체이자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소라는 데 있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유일자로서 인간은 영화에서 배제되어 있다. 추석에 몰려온 최 노인 자식들은 아버지의 노동이 불편하다. 도회지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소와 함께 한 팔순 노인의 노동에 담긴 함의를 알지 못한다.

음정도 박자도 고르지 못한 할머니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할머니 목소리에는 지나간 세월의 정한과 회한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 노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직하게 코를 고는 노인을 대신하여 마당에서 소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노래를 귀담아 듣고 있다.

최 노인의 가는 팔뚝에는 손목시계가 매어져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인은 언제나 시계를 차고 있다. <워낭소리> 전편에 깔린 불규칙한 시간의 흐름과 시계의 규칙적인 운동의 대비가 선연하다. 시간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노인에게 시계는 불편한 왼쪽 다리처럼 붙박이로 존재한다. 삶조차 망각된 노인의 과거와 현재를 무심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풍경과 소리

영화는 2006년 봄부터 그해 겨울까지를 느릿하게 잡아낸다. 영화의 속도는 노인의 나이와 소의 나이처럼, 그리고 스튜디오 ‘느림보’처럼 한없이 더디다. 계절은 소리 없이 왔다가 속절없이 스러지고, 그 사품에 감독이 잡아내는 봉화의 풍경은 ‘세밀화’처럼 정밀하고 미세하다. 청개구리, 고추잠자리, 메뚜기와 우렁이 속에서 <워낭소리>는 호흡한다.

이충렬은 봉화 산골마을의 수려한 풍광을 담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계절과 사람과 시간을 있는 그대로 잡아낸다. 그의 영화에서 대상들은 소리로 소통한다. 특히 노인과 소가 서로 통하는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늙은 아내의 온갖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대꾸도 미동도 않는 노인이지만, 소가 우는 소리에는 즉각 반응한다. 그에게 소는 삶 그 자체다.

<워낭소리>에서 소리는 다채롭게 변주된다. 해금의 애절한 소리가 우리를 곳곳에서 자극하지만, 자연의 소리가 한결 풍성하다. 젊은 암소와 늙은 소의 울음소리, 청개구리와 뻐꾸기, 그리고 소쩍새 우는소리, 장하게 쏟아지는 한여름의 장대비 소리, 아픔을 호소하는 병든 노인의 신음소리, 가을햇살에 곡식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묘지에 눈보라치는 소리.

이런 소리와 인간세상의 소리로 영화는 가득하다. 아픈 노인을 싣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소는 아스팔트 위에 멈춰 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축산 농민들의 시위가 우중에 한창이다. 값싸지만 미친 미국 소 도입을 저지하려는 농민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소는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잘 만들어진 장면이다.

사멸하는 것들을 위한 만가

노인은 소에게 사료를 먹이지 않는다. 사료 값 때문은 아닌 듯하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로 날마다 꼴을 베어야 하는 노인이 안쓰럽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에게 사료를 먹이자는 노파의 말에 노인이 퉁명스레 대꾸한다.

“소에게 사료를 먹이면 안 돼. 자꾸 살이 쪄서 일도 못하고, 새끼를 못 가져!”

노인의 꼴 베기는 일소에게 익숙한 노인의 오랜 영농방식의 귀결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인은 논이든 밭이든 농약을 치지 못하게 한다. 농약을 치면 소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태농업이 오래 전부터 뼛속 깊이 체화된 듯하다. 따라서 그가 영농기계화에 반대하여 인간의 수작업에 의지한 고된 농법을 고집하는 데에는 그만큼 까닭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인이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사멸할 것임을 안다. 속도와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시대가 노인의 삶과 정서를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에 나라전체가 내몰린 상황에서 촌로 하나의 목소리는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낭소리>에 관객이 몰리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사라질 것들에 대한 예의를 위해.

영화는 조만간 우리 곁을 떠나갈 대상들을 보여준다. 노인의 늙은 소는 세상을 떠났으며, 그 뒤를 노인과 할머니가 따를 것이다. 그리하면 그들의 낡고 누추한 농가도 버려질 터. 노인의 지게와 낫과 오랜 농기구들도 같은 여정을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워낭소리>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이미 타격을 입은 우리 농촌의 암울한 미래를 위한 애절한 만가다.

<송환>과 <영매>를 더듬으며

<워낭소리>를 보면서 기록영화 <영매>와 <송환>을 떠올렸다. 2002년 박기복 감독이 세상에 알린 <영매>는 1만 6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우리들 삶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무당들의 삶을 따뜻한 인간의 시선으로 추적한 <영매>. 우리와 똑같은 지상의 삶을 살면서도 천상의 전령사로 살아가야 하는 고된 운명의 소유자들을 그려낸 수작 <영매>.

2004년 개봉되어 2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한 김동원 감독의 <송환>은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기록영화다. 1992년 3월 7일부터 2000년 6월 2일까지 만 8년여의 시간을 할애하여 제작된 <송환>. 기록영화 <송환>은 양심의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와 그것을 꺾으려는 추악한 정치권력의 충돌을 가감 없이 그려낸 역작이었다.

<워낭소리>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영매>나 분단문제를 통해 뼈아픈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송환>과 매우 다른 영화다. 이충렬은 미성숙한 대중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화면에 담으려고 한다. 대중의 시선과는 다른, 시인이나 소설가의 섬세한 눈길과 감수성을 가지고 그는 기록영화 장르에 다가서려고 하는 것 같다.

자연과학과 기술문명을 인간의 보편적 사유와 인문적 감수성이 따라잡지 못하는 우울한 21세기 벽두에 <워낭소리>는 청량한 폭포수다. 설령 그 물줄기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작고 가늘다 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훨씬 값지고 소중하다. 모든 문화와 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며, 다채로움과 다양성 안에서만 인간존재는 환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면서: 두만강 소년은 어찌 됐을까

‘숭선’에서 그날 밤 나는 대취했다. 연변대학 교수들과 38도짜리 ‘왕파이주’를 나눠 마시며 <눈물 젖은 두만강>을 나 홀로 2절까지 불렀다. 여름햇살이 찬란하게 비치는 다음날 아침 나는 두만강에 몸을 던지고 한참을 울었다. 억제되지 않는 통곡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어찌할 바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어떠랴. 그렇게라도 분단을 삭혀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까맣고 앳된 소년의 모습이 선하다. 그대로 자랐으면 이제 열 살이나 되었을까. 혹여 탈북했거나 꽃제비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해질 무렵 들려오던 ‘워낭소리’와 농부가족의 모습이 낡은 사진처럼 자꾸만 떠오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지금도 두만강 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워낭소리의 주인인 소도 그대로 있을까.

언젠가는 나의 아픈 기억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누구도 추억하지 않는 혼자만의 기억이기에. 하지만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눈물 젖은 두만강>을 3절까지 합창할 날이 올 것을. 그날을 위해 나는 기록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들었다. 가고 오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인간의 숙명을 위해!
덧붙이는 말

김규종 님은 경북대 노어노문학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