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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권력을 끝내 이긴다

[기고] '체인질링'과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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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콜린스가 아니예요.” 번잡한 기차역에서 한 사내아이를 만난 크리스틴은 그 아이가 월터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청소년담당 반장 존스의 설득 아닌 설득에 넘어가 기자들 앞에서 그 아이와 사진을 찍고 만다. 생김새도 다르고 키도 4인치나 작은 애는 분명히 월터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월터가 아니라 <체인질링>이었던 것이다.

크리스틴은 그 아이가 월터가 아니라는 것,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 밖에 없었다. 진실을 말한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찍은 그 사진 한 장으로 인해 크리스틴은 월터를 찾은 행복한 엄마가 되고 말았다. 존스가 보낸 의사에게, 존스 반장에게 그 아이가 월터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 탓에 키가 작아졌을지도 모를 아이를 돌볼 생각은 안 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너는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주는 못된 엄마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평생 동안 로스앤젤레스의 부패한 경찰 권력과 싸우기로 결심한 구스타브 브리그랩 목사를 만난 크리스틴은 목사로부터 경찰의 탐욕과 부패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녀는 경찰이라는 거대한 공권력이 뭔지도 모르는 평범한 싱글 맘이었다. 그저 외아들 월터를 찾으면 그만인 엄마였을 뿐이다.

그러나 아들을 찾고자 하는 그 작은 소망,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진실이 경찰이라는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 하나. 크리스틴이라는 개인이 경찰의 권위주의를 건드린 것. 경찰청을 드나들면서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찰의 위신에 자꾸 흠집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아 사건이 시 선거에 악 영향을 끼칠까봐 전전긍긍하는 시장과 가뜩이나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어온 경찰청이 대중 앞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경찰청장은 존스 반장을 내세워 한 개인의 인격과 신체를 훼손하기 시작한다.

경찰에 대들기 시작한 크리스틴은 드디어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정신병자로 조작되어 시립정신병동에 갇히고 만다. 권력과 의학이 장단을 맞춰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권위의 상징인 경찰에 말 한마디 대꾸했다가 들어온 정상인들이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너무 웃으면 히스테리 환자, 너무 말이 없으면 우울증 환자, 무감각하면 긴장증 환자로 조작되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정신병원 안에서 기차역에서 만난 아이가 자기 아들이고 경찰은 잘못한 일이 없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면 언제라도 병원을 나갈 수 있다는 담당의사의 협박을 받지만, 오로지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할 도리밖에 없던 크리스틴은 번번이 서명을 거부한다. 담당의사에게 욕설을 퍼부은 크리스틴이 18호 실로 끌려가 전기충격을 받으려는 순간, 구스타브 부르그랩 목사가 살인사건 사진을 들고 나타나 크리스틴을 구한다.

권력의 부패가 얼마나 구린지 정신병원에서 몸으로 겪고 난 크리스틴은 어느덧 경찰이라는 권력에 대들었다는 이유로 끌려 온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영웅 아닌 영웅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자 하는 개인적인 열망이 우선이었고 그 열망이 진실을 불러낸 것 뿐이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경찰의 수작이 너무도 뻔해 보였기에 분노했던 것이었지 브리그랩 목사처럼 권력을 남용하는 공권력에 대해 날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권력의 힘도, 권력의 공모도 진실을 억압하거나 은폐시킬 수는 없었다. 캐나다에서 불법으로 체류하던 아이가 잡히면서 로스앤젤레스를 휩쓴 미아 사건의 단서가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이라는 살인범이 와인빌 양계장에 아이들을 집단 감금시켜 놓고 아이들을 차례로 죽인 것이다.

1928년 로스앤젤레스 와인빌 양계장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체인질링>은 월터 콜린스가 끝내 엄마 품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권력이 진실을 끝내 암매장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9년 1월 19일 용산 학살 사건이 터진 후 3일 째 되는 날 개봉된 영화 <체인질링>.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1928년 로스앤젤레스가 2008년 대한민국 용산으로 자리이동을 한 것일까. 신재민 문화관광부 제2차관은 용산 철거민들을 가리켜 투기꾼이라고 하는가 하면 공 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용산 투쟁을 도심테러로 규정하였으며 검찰은 용산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지목하였다.

영화 <체인질링>에서 멀쩡한 크리스틴이 히스테리 환자로 조작되었듯이 용산 철거민들은 사건 발생 한 달도 안 돼 투기꾼 테러범으로 조작되었고, 영화에서처럼 경찰은 아무 잘못도 없고 아이와 엄마가 잘못이었듯이 용산 사건에서 검찰은 철거민에게 몽땅 죄를 다 뒤집어씌우고 말았다. 원주민을 쫓아내고 그 터에 빌딩을 세워 시세차익을 노리려던 자들이 투기꾼이지 멀쩡한 원주민들이 투기꾼이라는 망발을 어찌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존스 반장을 내세워 수세에 몰린 권력을 지키려고 하던 경찰청장과 시장의 음모처럼 용산 철거민 생존권 사수 투쟁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김석기 전 경찰청장을,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기동대장을 내세워 수세에 몰린 권력의 입지를 지키려고 했다. 사람이 다친 게 아니라 죽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5명이나 되니 이 사건이 여과 없이 그대로 흘러 나갔다가는 제2의 촛불이 염려되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청와대, 경찰청, 검찰, 방송언론이 입을 맞춰 진실을 은폐 축소하고 무대포로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를 밀고 나갈 도리 밖에 없다는 것이 지하 벙커 회의의 결론이었다. 경찰청의 권위에 타격을 입을까봐 크리스틴의 입을 막고 거짓말을 유지할 도리 밖에 없던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입지는 대한민국의 경찰청에게는 유도 아니었다. 같은 경찰청의 한 형사가 집단살인 의혹을 제기했지만 존스 반장에게는 크리스틴의 입을 막는 것이 상책이었듯이, 경찰이 직접 용산 시민들을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여론의 물꼬가 트이기 전에 싹수를 잘라버리는 것이 상책 아니었을까. 존스 반장이 의사와 의학을 내세워 크리스틴의 입을 막아버리려고 했듯이 대한민국 청와대는 강호순 연쇄살인범의 스펙타클로 용산 사건을 암매장하려고 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히 묻힐 수 없는 법. 영화에서 불법체류자 아이가 잡히면서 반전이 일어났듯이 용산 철거민 생존권 사수 투쟁 또한 우연한 곳에서 권력이 끝내 은폐시키고자 했던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용역이 경찰의 명령을 따랐다는 불법 문제 정도가 아니라 왜 경찰이 서둘러 시신을 부검했는지, 시커멓게 탄 시신의 지갑과 혁대는 왜 불에 타지 않았는지, 머리는 왜 쪼개져 있었는지 분명한 증거가 우연치 않은 곳에서 불쑥 고개를 들이밀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 실종된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엄마의 그 단순한 열망이 위선에 가득 찬 그 알량한 현대 과학을 이겼듯이 용산의 현실에서도 진실은 그 알량한 현대 과학이 얼마나 위선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인지 만 천하에 폭로하게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권력은 그리도 비루한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도 대통령, 총리, 장차관, 수석들, 경찰, 검찰, 용역, 심지어는 군대까지 일사불란 할 정도로 한 통속이고 비굴한 것일까.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투기꾼들의 삶은 또 어떤가. 용산 철거민 생존권 사수투쟁을 벌인 용산 시민들의 소망은 크리스틴 콜린스처럼 단순한 것이었다. 호프집 장사가 잘 되면 집을 장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설사 집을 당장 마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순도순 살아가려고 한 열망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단권력의 음모는 그 열망과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고 짓밟다 못해 불에 탄 시신처럼 뭉개버리고 말았다.

영화 말미에서 월터가 살해된 것이 분명하지만 아들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은 크리스틴처럼 용산 시민들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권력이 진실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지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공권력에 희생당한 자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덧붙이는 말

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연구자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 스포일러가 있다고 제목에 써 놓으시지 ㅠㅠ 영화 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 이득재

    죄송; 하지만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같은 영화라도 다른 맥락을 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존경

    진실은 권력을 끝내 이긴다고요...? 끝내는 이기겠죠..
    세월 다 지나고 다 잃고나서 권력이 힘없어질즘 찔러내서 잘못됐다.나쁘다. 그러죠.. 현실은 지킬줄도 모르고...매번 역사만 되풀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