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정부 혹은 폭력 정부라는 이름으로 현재 이명박 정부를 명하기에는 이미 그 이름조차도 유치한 모습을 담아 낼 수 없을 듯하다. 공권력과 경찰의 폭력으로 우리 민중들의 ‘분노’와 ‘힘’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리고 그럴듯한 정치적 ‘쇼’를 통해서 언제까지나 우리들을 기만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나는 지금 빈민이, 가난한 사람들의 힘이 대세인 카라카스에 있다. 중남미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500년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구축되어온 사회경제구조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70-80%를 빈민으로 만들어 놓았고, 카라카스 수도의 외각에는 거대한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인간적 사회적 구조는 결국 지금의 카라카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힘’이 대세인 도시가 되도록 하였다.
사진은 민중권력의 핵심인 주민평의회 조직을 위해 카라카스 빈민가에서 열린 주민투표의 모습이다. 카라카스 빈민촌(한 구역) 주민들의 대변인(대표가 아니라 대변인 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들이 모여 동네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회의하는 모습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참여해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와 열정을 보였다.
요즘은 정부의 개헌을 지지하고 정부를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의지를 가진 정부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부를 지키려는 민중의 의지와 활력이 부러웠다.
그리고 난 이곳에서 빈민이었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 유치한 제스처를 통해 고인들을 기만하는 정부를 보았다. 전철연을 중심으로 빈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사회운동단체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기에 받아들인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힘이 부족하여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것 외에는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살고자 저항하다 돌아가신 고인들을 추모하는 것 외에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우리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극단적인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의 행태로 볼 때 미래를 예감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듯 하다. 그리고 우리는 단순히 ‘저항’의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힘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곳 카라카스에서 카라카스를 부러워하며 패배자로 있을 생각은 없다. 왜냐면 이곳 카라카스 민중들은 그들을 위한 정부를 만들었고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었듯이, 우리도 반드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아니라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고인들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가능하다. 이곳 베네수엘라에서 가능했다면, 그것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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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나 님은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사회인류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현재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필드 서베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