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저는 죽어가는 당신들을 안고 뛰었습니다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전차가 도시 한가운데를 미친 듯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살리려고 전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 에미가 바스라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뛰어가는 동안 당신들은 계속 쪼그라들어
마침내 아주 갓난아이처럼 작아졌습니다
철석같이 믿은 병원은 당신들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진동하듯 떨더니 눈이 스르르 감겨지는 즈음에야 저는 소리쳐 항의했습니다
그제서야 의사는 당신 입에 주사바늘을 꽂아넣었습니다
저 가녀린 입에 주사바늘을 꽂아넣다니!
소스라치며 막으려다 그래도 의사의 처치이니까 하고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의사가 건넨 우유병을 아기에게 먹이려는데 우유병이 뚫려져 다 새어버렸습니다
다시 우유병을 가져와 먹이는데 몇 모금 마시다 영영 눈 감아버렸습니다
저는 아기를 흔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 아이를 죽게 한 제 어리석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아기는 제가 죽였습니다, 아기 입술에 물만 축여주었더라도
아니 병원과 의사를 철석같이 믿지만 않았더라도
아기는 곧 기운 차리고 방싯거렸을 겁니다
더 간절하게 말했어야 합니다 더 간절하게 행동했어야 합니다
여기 살아남아 님들 앞에 선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미 당신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살육에 가까운 당신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가공의 방법으로 자행된 공권력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개발과 발전의 이름으로 오직 배부른 자들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해
하늘 높이 쌓아가는 부자들의 바벨탑,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서로 다른 말,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삶을 짓밟고
서로를 훼손하고 관계는 금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된 괴물 같은 바벨탑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욕망과 증오의 바벨탑 한 가운데서
화염이 솟는 순간 뜨겁게 소리쳤을 아우성과
입으로 들어간 불길이 목구멍과 식도를 태우고 내장을 그을리는 순간,
녹아내린 나일론 천에 달라붙은 엉겨 붙은 살점과
타들어간 뼈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데
뜨겁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아아아 모음뿐인 외침과 절규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이 아픈 주검들 앞에 예의도 슬픔도, 하다못해 염치조차 없이
개죽음을 만들고 있는 파렴치한 세상을 날마다 받아들여야 하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정말 죄인입니다
이런 아픈 세상을 아픔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감각이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쫓아내고 하루를 못 기다려
깡패와 공권력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어버이입니다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 몰려 마침내 벼랑에 선 자식에게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벼랑 아래로 밀어낸답니까
억울하다고, 내 말을 더 들어보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자식에게
어느 어머니가 으름장을 놓으며 각목으로 두들겨 패고 석유를 부은단 말입니까
국가의 녹을 먹는 권력자는 국민의 어버이여야 합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하루 종일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부모 공양하고 자식 길러내며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사는 가난한 자식들에게
어느 부모가 생존과 죽음의 양자택일만을 강요한답니까
어느 미친 어버이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가난한 자식들의 것까지 빼앗아
부자 자식의 바벨탑에 보탠답니까
부디 용서하세요
몇 십 년밖에 안 살고도 어찌 우리는 이 따위 세상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당신들의 죽음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은 생각이 대체 어찌 이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생명이 생명을 죽이는 생각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하고
폭탄과 화염 속에서 죽이고 죽어가는 오늘 이 세상에서
대체 누구에게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용납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이런 세상을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서로 사랑하는 대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뼈아픈 세상을 용납하고 있는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제발 저 짓은 내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희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리나니 부디 저희들 스스로 이런 저희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그 용서의 힘으로 당신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도록 도와주세요
부디 이런 뼈아픈 죽음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삼가 고인들께 바칩니다
- 덧붙이는 말
-
이 시는 제2차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규탄 범국민추모대회에서 낭송되었다.
김해자 님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