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철도노조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저버린 철도노조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2008년 12월, 철도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합의서에 따라 25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외주위탁되었다. 20여 명은 올 1월 1일자로 해고되었다. 해고된 이들 가운데 몇몇 사람은 서울역 대합실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이다. 엉터리 합의서에 서명한 철도노조 지도부는 서울역 농성을 외면하고 있다. 이 농성에는 서울차량 지부만 참여하고 있을 뿐 철도노조 8개 지방본부, 전국 140여 개 지부가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극소수 활동가들이 이 승산없는 천막을 지키고 있다.

철도노조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철도노조는 25,000여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거대 공기업 노조이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철도노조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외주위탁 노동자들을 모두 조합원에 가입시킬 수 있는 규약을 가지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인 철도매점 노동자 투쟁, 직접 고용 계약직인 새마을호 승무원 투쟁, 외주위탁 노동자들인 KTX 여승무원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해 왔다.

철도노조 역대 집행부는 “철도 노동자는 하나다.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에 걸맞게 비정규직 투쟁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하였다. 지도부의 이런 태도에 철도 노동자들도 호응하여 KTX 여승무원 투쟁에 8,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기금을 모아 생계비를 지원해 왔다. 뿐만 아니라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며 정규직 전환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과반수 이상이 동의하기도 하였다. 이런 철도노조가 하루아침에 수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주위탁, 혹은 해고하는데 사인을 해준 것이다.

외주위탁,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되었다. 철도공사는 계약해지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당신네 노동조합이 합의해 준 일이다. 항의하고 싶으면 노동조합에 항의하라”고 대답했다. 380명 KTX 여승무원들을 정리해고 하고,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경찰병력 투입요청, 가처분 신청 등 온갖 탄압으로 ‘비정규직 탄압의 대표사업장’으로 악명높던 철도공사에 노동조합이 면죄부를 준 것이다. 해고 무효 확인 소송 재판을 하려 해도 “대표자인 노동조합이 동의를 해주었기 때문에 승산이 거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비통한 일이다. 98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 법안에 서명했을 때 외신들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노동조합이 자기 조합원 목을 치는데 서명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일이 철도노조에서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더욱 절망스러운 일은 노동조합 지도부의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대다수 간부, 활동가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조합이 반대한다고 해서 외주위탁, 해고를 철회시킬 수 없다. 그러느니 교섭을 해서 해고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게 현명한 일이다”라며 뻔뻔스러운 태도로 외롭게 농성하는 천막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간부들도 있다. 사람의 양심으로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철도노조는 거대 공기업 노동조합이다. 운수노조 및 공공운수연맹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재정을 가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운수노조 및 공공운수연맹도 침묵하고 있다. 민주노총 또한 마찬가지이다. 98년 정리해고 법안에 동의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면 철도노조 지도부도 당연히 제명처분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 극소수 철도 활동가들이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및 전체 철도노조 조합원에 대한 공개사과, 총사퇴” 요구를 하고 있지만 철도노조 지도부 및 대다수 간부, 활동가들은 묵묵부답이다.

이런 더러운 침묵의 카르텔을 깨지 못하면 철도노조 미래는 없다. 이런 지도부를 징계하지 못하는 운수노조, 공공연맹, 민주노총의 장래도 없다. 노동자들 목을 치는데 동의하는 지도부를 징계하지 못하는 민주노조 운동의 장래는 없다.
덧붙이는 말

이철의 님은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철도노조 정책실장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