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개봉된 영화 <라듸오 데이즈>를 보자. 경성방송국에 침투해 거사를 꾀하던 효과음 담당자 K가 일제에 의해 적발되고 경성방송국이 일제에 의해 침탈 장악되는 장면이 나온다. K는 경성방송국 전파를 해킹하다 걸렸을 때 일본군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는다. “전파도 천황의 것이다.”
조중동은 전파가 국민의 것이라며 MBC 등 최근의 총파업을 두고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간다. 조중동이 말하는 국민은 민주주의 하의 국민이 아니라 파시즘 하의 ‘황국신민’의 약자인 국민을 가리킨다. 혹은 강부자이거나 고소영의 국민일 따름이다. 조중동이 전파가 국민의 것이라고 주장했을 때 그 얘기는 곧 전파는 조중동의 것이자 재벌의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MB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게다.
KBS 사태 이후, 그리고 현재의 YTN 사태에 이어 이명박 정권은 영화에서 일제가 경성방송국을 침탈한 사태를 리얼 쇼로 보여주고 있다. 방송국 장악이 한낱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위기 국면에서 공황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파시즘과 공황이 절묘하게 궁합을 맞추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강화, 방송통신위원회, KBS, YTN 낙하산 인사, 예산안 날치기 통과, 공기업 구조조정, 공무원 길들이기, 국방부의 대체 복무 거부, 사이버 통제법,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 문광부의 임정 전통 무시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대한민국의 역사가 일제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눈 비비고 다시 보니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가 김영삼 정권 때 무너진 총독부 건물로 보인다.
방송 산업 선진화라는 허울 아래 지금 자행되고 있는 것은 일제 시대, 그 뒤를 잇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처럼 전파를 MB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파시즘적인 작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전파를 적어도 최시중, 강만수, 한승수 등 고소영 내각의 것으로 만들어 일제 군국주의의 전통을 잇는 뉴라이트의 정치, 경제, 역사, 사회에 대한 파쇼적인 선전대로 삼으려고 하는 수작이다.
주지하는대로 이명박 정권은 너무도 속보이게 혹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민중들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강부자와 재벌만을 감싸 안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 정권의 작태에서 우리가 분명히 해둘 것은 이명박 정권이 그저 ‘강부자 고소영 내각’ 정권인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익을 주도적으로 대변하는 자본의 공개적인 독재체제 즉 파시즘 정권이라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구사하는 군대식 용어를 두고 과거 회귀를 이야기하지만, 전광석화, 속도전 등의 군사적인 용어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인식은 상당히 안이한 발상에 불과하다. 강부자든 고소영이든 속도전이든 언론에서 희화화된 이미지에만 몰두할 일이 아니다.
이미 조중동 안에서 신문재벌과 경제재벌 사이의 컨소시엄 등의 논의가 활발한 터에 정당, 국회, 검찰/경찰을 총동원해 재벌의 이익을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최근 방송 언론 사태의 본질이다. 건설사에 돈 풀어주기로 하였으니 대운하 사업 밀어붙이는 것이고 재벌에 방송신문 넘겨주기로 했으니 방송 악법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온 몸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위기에서 공황 국면으로 치닫는 현재의 세계 경제 자체가 파시즘의 부활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다. 중국 광동성의 실업자가 700만 명이고 일본 영국 등의 실업률이 올라가며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 중단 하는 판에 김구가 테러리스트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의 적통이 임정이든 아니든 별반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위험스러운 사태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에 버금가는 대대적인 공사판 운동이 바야흐로 삽질 준비를 마쳤고 박희태, 최시중은 천황에 버금가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MB같은 지도자가 있는 게 우리의 행복”이라거나 “땀 흘리는 모습에서 국민은 감동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MB를 국가의 영도자로 한껏 추켜세웠다.
청와대, 한나라당, 최시중 방통위원장, 검경이 일사분란한 군화발로 방송언론을 장악 침탈해 대한민국 사람들의 귀와 입이 닫히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그 때, 우리는 박정희 독재정권 때의 ‘경제 발전’이라는 말처럼 오로지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그 끔찍할 정도로 파시즘적인 용어에 휘둘려 살아가게 될 것이다. 2008년 12월 26일 시작한 언론노조 총파업의 의의는 단순한 방송 악법 저지 투쟁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경제동물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전방위적으로 파시즘의 부활을 노골화시키는 민간파쇼독재에 저항하는 첫 단추를 꿰는 데 있다. 영화 <라듸오 데이즈>에서처럼 방송국이 전파도 천황의 것이라고 강변하는 일제에 의해 침탈당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