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앞에 돈 풀어 환율방어?
앞서 언급했듯 자본의 무정부적 경쟁으로 과잉축적, 과잉생산뿐만 아니라 이윤율의 저하를 수반하게 된다. 생산자본간의 생존경쟁은 필시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좋은 기계를 들여야 한다. 그러다보니 투자한 돈이 많아지고 이윤은 많이 남을지 몰라도 투자한 돈에 비하면 이윤율은 떨어지게 된다. 이윤율의 반영이 은행의 이자인데, 대체로 선진국들이 이자율이 낮고 후진국으로 갈수록 이자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윤율이 떨어지니 돈은 생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돈되는 투자처를 찿아다니게 된다. 쉽게 얘기해서 투기자본이 되어 먹이감을 찿아다니며 금융적 수탈을 자행하게 된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에 돌아다니는 투기자본이 하루에 1조 9천억 달러로 추산한다. 말하자면 한국의 1년에 쓰는 예산이 280조가 좀 넘는데, 단 하루에 3천조에 가까운 돈이 돈질하러 돌아다니는 것이다. 강만수라는 아저씨, 여기다 대놓고 푼돈 좀 있다고 환율방어한다고 나서서 400억 달러 해먹었다. 정말이지 삽질에는 형님에 뒤지지 않는 천하장사다.
1990년대 들어 IT부문이 돈이 된다고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미국 부통령 고어라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정보고속도로니 신경제니 바람까지 잡아주니, 초고속망이 깔리고 여기에 컨텐츠 얹는다고 신문, 방송, 영화 등등을 인수합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자금은 주식시장을 통해서 조달했는데, 이러한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의 규제도 없애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최소한 5% 이상의 이윤을 남길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가도 크게 빗나갔고 주식시장은 붕괴했다. 신경제도 붕괴하고 IT산업에 대한 기대도 붕괴했다. 김대중도 연기가 나지않는 공장이 어떠니, 자기실현이 가능한 노동이 어떠니, 벤처가 어떠니 해서 한 때는 잘 써먹었다.
투기자본은 거품이 꺼져버린 주식시장을 떠나 새로운 거품을 찿아나섰고 그곳이 부동산시장이었다. 이자율은 2003년에는 1%까지 떨어져 너도나도 집장만에 나섰다. 집값을 산정하고 개인 신용도를 조사해서 집을 대신 사주고 20년이면 20년, 30년이면 30년 돈을 받아 메꾸는 모기지회사가 바빠졌다. 부동산 바람을 타지 못하면 망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당연하겠지만 우량(prime)이 아닌 비우량(sub-prime)고객, 속된 말로 개털까지 나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은행금리에 3% 정도의 추가금리를 붙여서 변동금리로 해서 원하는 만큼 대출을 해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부동산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자 웬만하면 떨어져나가라고 연방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는데, 최고 6.3%까지 올라가니 개털들은 버틸 재간이 없다. 야반도주하고 돈을 못내서 집달관에게 쫓겨나면서 빈집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먼저 망한 것은 모기지회사가 아니라 투자은행들이었다. 모기지회사가 받을 돈을 소위 파생상품이라는 갖가지 채권으로 만들어 은행들에 판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아니라 영국의 노든록이라는 은행부터 급기야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까지 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보증을 선 세계최대 보험회사 AIG도 망했다. 최근에 ‘죽음의 채권’이라 불리울만한 ‘Death Bond’라는 파생상품이 생겼다고 한다. 생명보험을 든 이가 죽을 때 받을 보험금을 파생상품으로 만든 것이 그것인데, 이렇듯 온갖가지 파생상품은 무한정이어서 미국정부는 물론 월스트리트조차도 그 액수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손실액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앞으로 전세계 약 1천개의 은행이 망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이후 은행들이 줄도산하자 루즈벨트는 그 배경으로 지적된 은행의 증권업 겸업을 금지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의 분리를 요지로 하는 글래스 스티걸법안이란 걸 만들게 된다. 말하자면 예금과 대출업무를 주로 하는 상업은행과 은행이 직접투자를 하는 투자은행 분리정책이랄 수 있는 이 법안을 클린턴이 폐기하면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좋은거라고 노무현이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후임에게 선물로 주고 퇴임을 했는데, 이명박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하고 산업은행을 비롯해서 민간은행을 투자은행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꺽지않고 있다.
한국은 예외이겠는가. 그 결과는 파국적이겠지만 은행이 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현재 은행은 예금에 비해 대출이 절대적으로 높아 그 비율이 140%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이 덩치키우기에 나서면서 인수합병으로 은행시장을 재편하고, 최근 몇 년간 낮은 금리에 넘치는 유동성으로 춤추는 부동산, 주식, 원자재 시장에 대출을 해주면서 공격적으로 자산을 불려왔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최근 돈이 된다고 하니까 시중의 돈은 물론 예금까지 주식, 펀드, 부동산 쪽으로 빠져나가버린 것이었다. 할 수없이 부족한 자금을 양도성 예금증서(CD)나 은행채 발행으로 메꾸고 그래도 모자란 돈은 외국에서 고리대 급전으로 빌려온 것이다. 그 결과 얼마나 다급했는지 정부가 나섰다. 내년 6월말까지 은행 외채의 만기 연장이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갚아야 할 외채가 800억 달러라며, 만기연장이 이뤄지지 않는 외채는 외환보유액에서 전액 지원하겠다고 한다. 외환위기설의 1차 진원지는 여기이고 달러만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은행채를 감당할 원화도 모자라 한국은행이 나서 막아주는 이유이다.
부동산 거품에 은행 위기 코앞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은행은 약 700조 정도의 가계대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300조 원 정도가 부동산 대출이다. 최근 부동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는데 젖먹던 힘까지 다하고 있다. 종부세, 양도세 없애고 용적률 키워주고 그린벨트 풀어주고 급기야는 건설회사 미분양 아파트 사주면서까지. 그래도 모자라 지방 SOC 건설에 쓰라고 9조를 예산에 특별히 편성하는 것을 포함해서 직간접적으로 30조원을 풀었다. 이렇듯 직접지원과 7차례의 부동산정책으로도 쉽지 않을 듯하다. 특히 그중에 잘나가는 부동산경기 이용해서 건설회사하고 기획해서 개발에 들어갔던 PF(프로젝트 파이낸싱)라는 데서 먼저 구멍이 날려고 하고 있다. 그 액수가 100조원에 이르는데 그 중 12조원 정도가 위험하다고 해서 저축은행에 1조원을 퍼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난감한 지경인 것으로 보인다.
대량 난감한 것은 극도의 경기침체로 부도기업이 늘어나고, 영세 자영업자의 수가 줄어들어 10월 통계로 카드대란 당시와 비교될 정도이고, 은행 연체율, 카드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가계대출이야말로 점차 위기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이 “90년대 말 금융위기는 당시에는 큰일처럼 보였지만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에 비하면 해변에서 보낸 하루정도”라고 언급하듯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강부자내각의 이해에 충실한 부동산정책에는 사정없이 신속하지만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가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죽은 경기 살려볼려고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도 제로금리로 갔고 한국은행도 신속하게 내려 기준금리가 3%가 되었다. 약발을 안받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은 한술 더 뜬다. 달러면 달러, 원화면 원화, 현찰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은행은 돈먹는 하마가 돼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도 금리를 내릴 수도 없고 추위에 떠는 백성들에게 대출을 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같이 외환위기가 거론되던 영국이 구제금융을 댓가로 국유화를 하는 한편 대출을 전제로 구제금융을 주고 있는 것에 비해 대조가 되지않는가
영국을 필두로 해서 미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선진제국에서도 구제금융의 대가로 은행을 국유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마저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으로 현재 국유화돼 있는 우리은행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은행의 주식을 국가가 쥐고 있는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직접 원인이 되었던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여러 대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더 이상 자본이 투기부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물론 생산을 통제하는 은행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통제가 가능할 때 비로소 지금과 같은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