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계경제위기의 정세 속에서, 즉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계급투쟁의 정세 속에서, 올바른 이주노동자운동의 방향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긴박하고 중요한 사안이지만, 노동자운동의 국적/민족을 경계로 한 분할이라는 현실적 조건들을 극복하는 문제로 인해 그 구체적 실천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우선 적어도 그리고 필수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방어 내지 쟁취하기 위해 제출되어야 할 관점과 조직해야 할 실천들은 '국제주의'적 관점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두자.
민족적 노동운동의 반동적 실천
올 해 치러진 '세계이주민의 날' 행사는 특별히 세계경제위기의 한파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더욱 위협받고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시점에서 진행되었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참세상 12/18일자 기사(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0872)에서 보여지듯이, 이와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민족적' 노동계급의 반동적 실천들은 당분간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의 상황도 예외는 아닌데, 아니 오히려 대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내용은 이번 12월 18일 제출된 이주노동자단체의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대만의 이주노동자운동의 조건과 한계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운동 일반에게 주는 일정한 함의를 추출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이번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이하여 제출된 대만이주노동자운동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이다. (http://www.coolloud.org.tw/node/31936) 첫째, 고용비율을 정확히 조사하여, 염가노예노동의 유입을 일시적으로 중지할 것. 둘째, 본국 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 나눌 것 없이, 노동권익을 보장할 것.
바로 첫 번째 요구사항이 경제위기 정세 속에서 폭넓게 수용되는 대표적인 민족적 노동자운동의 반동적 실천사례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12월 9일 대만에서는 이와 관련한 대규모의 집회가 조직된 바 있는데, 바로 대만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단체들 대부분이 참여한 가운데, 이주노동자 유입 반대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http://www.coolloud.org.tw/node/31559 ) 참가단위의 면면을 보면, 대만의 주요 기업별, 산업별 노동조합 및 소위 '진보적' 노동운동단체 대부분이 망라되어있다. 이러한 대만의 노동운동의 특징은 이주노동자운동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임에 틀림없다.
대만에서 본국 노동조합과 이주노동운동단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유입 일시중지'라는 요구사항은 왜 반동적인가?
본국 노동조합의 태도는 사실 그리 낯선 것이 아닌 만큼, 이주노동자단체의 논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논리가 그다지 복잡한 것은 아닌데, 이들은 현재의 정세를 '경제위기로 인해 본국노동자의 실업이 증가하고, 이주노동자들도 동시에 계약이 해지되고, 새로운 사용자를 찾기 힘들며, 게다가 높은 송출브로커비용을 이미 지불한 상황에서 몇 달 일도 해보지 못하고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를 더 들여오면, 본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고용상황이 모두 악화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유입을 일시 중지해달라는 요구가 나온 것이고, 언뜻 보면 매우 그럴 듯 하다.
두 개 위기의 경계에 있는 아시아 이주노동
이러한 논리에서 보이는 문제로서, 우선,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짚을 수 있다.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는 소위 '구조적'위기인데, 개별민족국가나 개별자본의 차원에서 극복될 수 없을 만큼 이미 '세계화'된 위기이기 때문에, 중심과 주변을 막론하고 예외없이 관철되는 위기라는 특징을 가진다. 요구사항의 전제가 되는 인식은 '이주노동자가 들어옴으로 인해 본국노동자(또는 본국 내의 노동자)의 실업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의 노동조합들은 본국노동자의 우선고용을 요구하고 있고, 대만의 이주노동자운동단체는 이주노동자유입을 중지하고, 본국 내의 이주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만의 경제위기 상황을 특수화 하는 것이며, 세계경제위기의 구조적 측면에 대한 몰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의 이주노동자는 송출국과 유입국의 심각한 경제위기라는 두 개의 위기라는 판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으로의 위기의 일시적 전이는 사실 더 큰 위험의 원인이 될 뿐이며, 위기의 판 양쪽에서 동시적으로 노동자의 생존의 위기 감축을 위한 계급투쟁을 진행함을 통해서만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러한 반동적 논리에 대해 대만 내부에도 비판적 관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당일 집회현장에서 만난 대만 '노동인권협회'(대만 노동당 소속)의 경우 이번 집회의 두 가지 요구사항 중 첫 번째, 즉 '이주노동자유입일시중지'라는 요구사항에 동의하지 못해 연대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회에서 연대발언을 한 인사는 첫 번째 요구사항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면서, 두 번째 요구사항만을 여러 번 외치고 들어갔다. 하지만, 대만 노동당의 경우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직접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실질적 발언력은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은 경제위기라는 정세 속에서의 '계급투쟁'의 관점에 대한 것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가 맞이하게 될 '위기'에 대한 대안은 오히려 '자본'에 대한 '노동'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주노동자와 본국노동자의 단결 속에서, 특히 권리가 박탈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음으로써, 즉 '자본'을 압박함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본국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대만 이주노동자운동은 '계급투쟁'의 맥락을 상실한 채, '노동인구'의 통제를 통한 위기의 지연이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마도 국제주의적 관점의 부재 속에서 이러한 전략적 선택 자체가 종국에는 운동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레버리지로 삼아서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방어할 것이냐, 아니면 이주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레버리지로 삼아 '노동의 힘'을 증대시킬 것이냐 하는 차이인 것 같은데, 대만의 이주노동자운동은 전자를 선택했다.
한국보다 훨씬 먼저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던(1992년) 대만은 이미 고용허가제 자체가 사회적으로 안착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비율도 5%안팍의 비율을 보임으로써 사실상 제도자체의 정당성이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고용허가제 자체가 가지는 근본적 문제들(주요하게는 '사업장이동의 제한'으로 인한 노동권의 실질적 박탈)을 간과되어서는 안되는데, 이번 요구사항에서의 '이주노동일시유입중지'라는 요구는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유입제도 자체를 긍정하는 효과를 갖는 다는 것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TIWA를 비롯한 대만의 이주노동자운동이 이를 지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안적 요구사항을 제출하지 못한 채, 추상적 비판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엄연히 '자본'의 위기이다. 그래서 이런 시기일수록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더욱 요구해야 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미 경제위기는 너무나 큰 현실이고, 겪어야 할 운명처럼 인식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국제주의'라는 관점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할 때, 자본에 의한 노동의 분할을 극복하고,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기회'로 역전시키는 계급투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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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석님은 대만 세신대학에서 석사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