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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8조 원 투자손실, 값비싼 교훈은 무엇인가

[기고] 사회운동의 ‘운동전략’이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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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 과정 속에서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통해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었음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연금기금의 금융투자, 특히 주식투자 확대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때 마침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를 별도로 설립하여 민간 투자전문가들에게 연금기금의 운용을 전적으로 위탁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에 의해 운용되었을 경우, 보다 공격적으로 주식투자가 이루어 질 것은 매우 자명하다. 또한 연금민영화로 가는 가능성은 보다 확대된다. 수 조 원 대의 연금기금이 날아간 상황이고, 기금운용의 안정성에 대한 어떠한 보증도 없이 주식투자가 확대될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심지어 역시 투자는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국민연금

미국 투자은행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던 기간 동안, 국민연금이 리먼, 메릴린치, AIG에 대한 투자에서 약 6천 6백만 달러(약 754.9억)를, 그리고 이들 금융기관의 도산에 앞서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화된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는 약 3천900만 달러(약439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미국 투자은행들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손실을 포함하여, 지난 8월까지 연금기금의 금융부분 수익률은 -0.99%로, 주식부분에서 국내 -20.68%, 해외 -16.70%로 가히 기록적인 손실을 나타냈다. 그나마 채권부분의 투자 비중이 아직은 크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약간 하회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8조 4,800억 원이 주식시장에서 공중분해 되었다.

더욱이 투자손실의 증가가 불을 보듯 예견되는 상황에서 투자는 더욱더 확대되어 왔고 그만큼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국민연금에서 이미 금융투자로 인한 평가손실이 4조 2,647억 원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고, 이는 국내주식 -9.9%, 해외주식 -11.9% 대의 수익률로 인한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9월 중순 이후 미국 투자은행의 위기로 주가가 연일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국민연금은 거의 매일 순매수를 강행하였다. 올 들어 국민연금이 순매수한 6조 8,480억 원의 절반 이상이 최근 두 달 사이에 집행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투자손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이후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한 내부 논의들이 폭로되어 왔다. 지난 7월, 국민연금공단 박해춘 이사장이 2012년까지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40% 까지, 해외투자 비중을 20% 이상으로, 대체투자를 10%까지 확대하겠고 밝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이는 당시에 박해춘 이사장의 월권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듯했고, 최근의 국정감사에서 박해춘 이사장은 당시의 생각이 오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얼마 전 그 같은 발언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수립된 ‘국민연금기금 5년(2009~2013) 중기자산배분안’에 근거한 것임이 폭로되었다. 2009년까지 30%, 2013년에는 기금의 절반에 육박하는 200조원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다.

금융위기가 터져 나온 직후인, 지난 9월의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이와 같은 ‘중기자산배분안’의 조정필요성이 일부 위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위원회 구조 아래서 이 같은 논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기금운용본부는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인식 아래서 미국 투자은행이 빠져나간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대체투자) 확대,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투자방식인 NPL투자 등을 더욱 확대하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투자방식들은 한국투자공사(KIC),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등의 이른바 국부펀드를 비롯한 여러 투자기관들이 금융위기가 터져 나오기 이전에 이미 시도하여 손실을 보았거나, 금융위기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현재 투자를 유보하고 있는 사항들이다.

이른바 ‘금융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14일 입법 예고된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이러한 상황에 추동력을 더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의 후속 조치로서, 금산분리를 완화하여 초대형 금융기관을 육성하여 세계금융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 규제완화 방안은 금산분리를 완화하여, 재벌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장벽을 낮추었고, 금융지주회사들이 제조업체들을 자회사로 포괄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줄지어 파산하고 예금은행들의 줄도산이 예견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금융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정부만이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 당시에도 이미 이와 같은 정책이 연금기금을 염두에 둔 전략임이 지적되어왔다. 코스피 시가 총액이 올해를 기준으로 대략 930조 원(연초)에서 600조 원(최근)을 조금 웃도는 상황에서, 현재 약 230조 원, 2013년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400조를 넘어서는 연금기금의 존재는 한국 자본시장 성장전략의 상수라 할 만하다. 이번 규제완화 방안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이 산업자본으로 포함되는 규정을 환화함으로써 은행 주식투자를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정부 발표가 있은 직후, 박해춘 이사장은 지난 7월 이미 예고했던 바와 같이, TFT를 구성하여 우리은행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 동안 연금기금은 국내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고 은행자산을 확대하여 세계적 규모의 대형 투자은행 설립을 촉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부여받아 왔다. 이번 정부 방안이 입법화된다면, 주식투자 비중 확대를 넘어 국민연금 스스로가 금융기관화되는 새로운 도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연금기금지배구조의 개혁, ‘연금민영화’를 숨겨둔 판도라 상자?

이렇듯 국민연금 기금을 둘러싼 정세는 매우 급격하게 진행 중이다. 노무현 정부가 연금제도 개혁과 연금기금 금융화의 제도내적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왔다고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를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추진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연기금지배구조 개편방안이 가져올 문제들은 이미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는 현재의 기금운용체계가 가진 문제점과도 다르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투자은행의 위기로 나타난 이번 금융위기가 주택담보대출증서가 증권화 과정을 거쳐 다양한 파생상품으로 전화하는 등의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다는 사실이 한 요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주식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자산운용 전술이 철저히 비공개로 운용되고, 해외투자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위탁운용 되기 때문에 운용본부 등의 직접적 운용주체들 조차 그 현황을 단기간에는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현행 연금운용체계의 문제들은 최근의 투자손실 사태만을 보아도 더 이상 간과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또한 기금운용위원회의 가입자 참여가 매우 형식적이라는 문제를 포함하여 연금 가입자들이 연금운용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기금운용공사를 별도로 설립하여 민간투자전문가들이 기금운용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방식으로 연기금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나아가 공사의 자회사 설립의 길을 열어두어 기금의 분산예치를 통해 경쟁적 투자 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연금기금의 주식투자를 극적으로 확대하려는 조치임이 매우 자명하다. 이 뿐 아니라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기금운용 수익률에 복속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는 확정기여방식의 연금제도로의 전환, 그와 연동되어 사적연금을 더욱 확대하는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러한 예측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강행하려 했던 건강보험 민영화 추진전략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설득력이 있다. 건강보험 민영화는 현재의 건강보험을 단기간에 해체하는 직접적인 수단을 통해 시도되지는 않았다. 실손형 민간보험의 도입을 포함한 민간보험의 확대, 영리병원 설립 허용, 건강보험의 보장성 축소 등의 다층적인 전략이 동시에 동원되었고, 이러한 정책들의 최종적 결과가 바로 건강보험의 사실상의 무력화, 민영화이다. 지난 상반기 촛불집회 등을 거치며 대중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다소 주춤거리고 있지만, 2단계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에 포함되었던 일반인의 병원 개설 허용방안(현재는 보건복지가족부가 반대의견 표명)처럼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도 마찬가지 경로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수준과 대상을 다소 확대하여 기초연금으로 재설계하고 국민연금을 소득비례 연금화하여 2층 구조의 공적연금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사회투자로서의 복지를 강조하며 복지예산의 삭감을 시도하는 현 정부의 노선을 보건데, 현재의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기초노령연금의 확대가 과연 별도의 재원구조의 확보 없이 지속가능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기금운용공사는 수익률 논리와 재정안정성 문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연금제도 개혁을 추동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배계급이 제시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양하게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초노령연금을 최소기여를 전제하는 기여방식으로 전환하거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또다시 삭감하는 개혁을 2013년 3차 재정추계를 계기로 또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연금의 확정기여방식으로의 전환을 제기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의 제도개혁의 피로도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현실적으로는 힘든 조건을 고려한다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삭감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이는 지난 연금개혁 당시 한나라당의 기본 입장이기도 했다(기초연금 노인 100% 14만원, 국민연금 급여율 20%, 보험료율 7%).

10여만 원 수준의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20% 수준의 소득비례연금으로(그것도 중복수급을 금지) 노후소득을 기본수준에서라도 보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중간계층 이상은 공적연금에 남아있을 유인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한다. 결국 사적연금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고 그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 추가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공적 소득비례연금과 대체가능 하도록(contract out) 제도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도 연금민영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또한 공적연금은 2층화가 아니라, 저소득층은 기초연금에, 중간계층은 국민연금에 포괄되는 식으로 계층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마치 끝없이 반복 재생되는 우화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금민영화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영국의 경우 대처정부에 이어 블레어 노동당 정부 시절까지 근 20년에 걸쳐 지속적인 연금민영화가 진행되었고, 위와 같은 경로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확대된 확정기여방식의 퇴직연금, 개인연금은 영국 주식시장의 자원이 되었고,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사회책임투자 시장이 성장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지난 연금개혁 당시에도 사회운동의 일각에서는 기초연금을 도입하고 국민연금을 후퇴시키는 방안이 영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는 경로가 개방된다는 점에서 우려와 비판을 제기했던 것이다.

연금기금 금융화의 계급적 본질과 위험성

이번 금융위기의 여파가 워낙 큰 탓에 별다른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과연 누구일까? 두말 할 나위 없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통해 주택을 구입한 미국의 노동자 민중, 빈곤층이다. 미국 은행들이 요구하는 신용등급을 가지지 못하는(900점 기준에서 700점 이하) 저소득층들이 서브프라임을 통해 주택을 구입했으나, 2004년에서 2006년에 걸친 점진적 금리인상과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상당수의 저소득층들이 대출이자를 납부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대상자 200만 가구를 포함하여 총 1000만 가구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주택을 차압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또한 7000억 달러를 포함하여 투자은행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미 정부가 쏟아 붓고 있는 공적자금은 결국 노동자 민중들의 혈세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 재정적자를 유지하기 위해 유입되고 있는 막대한 달러들의 출처는 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중동의 석유산유국 등지인데, 결국 이 자금들은 이들 국가들의 노동자 민중들의 것이다.

이러한 현실로부터 사회운동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미국을 선두로 하여, 세계적으로 경제의 금융화가 소득격차를 더욱 확대하고, 고소득자들에게 더욱 많은 부를 집중시켰다는 사실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번 금융위기 사태는 금융거품이 붕괴되었을 때 그 부담과 피해가 노동자 민중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사적연금, 주식투자 등의 다양한 금융기제들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은 금융화된 경제체제에 보다 더 깊숙이 편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연금기금의 금융화와 그 원리에 의해 강제되는 연금개혁을 비판해온 사회운동과 많은 논자들의 주장이기도 했다.


위의 표는 국민연금과 함께 거대 적립기금 규모를 가지는 주요 공적연금들의 2000년 이후의 운용수익률이다. 미국 투자은행에 대한 막대한 투자손실이 알려진 직후 발표된 이 자료를 근거로 정부는 지난 상반기 주식투자를 통해 큰 손실을 입었지만 다른 국가들의 공적연금에 비해 그 손실이 덜하다는 점을 강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연금의 채권투자 비중이 높아 다른 연금들에 비해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주식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GPIF 27%, CalPERS 53%, ABP 38%, CPPIB 52%).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신경제 거품이 붕괴되며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했던(S&P500 22%가량 하락) 2001년에서 2002년 사이 주식투자 중심의 기금운용을 했던 모든 국가들의 기금 수익률이 대폭 하락했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의 금융위기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화된 세계경제에서 미국 경제의 위기는 다른 국가들로 급속히 전염되고, 금융시장은 그에 매우 민감하게 동조적인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제는 현재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며 그 외에도 각종의 경제지표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보다 심각한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연금기금의 더욱 주식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발상은 단기적으로는 고위험.고수익이라는 수사로 포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천문학적인 투자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와 같이 연금기금이 주식시장을 방어하는 기제로 활용된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주식시장이 불황에 빠져 외국투자자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엄청난 기금손실, 가치하락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목적 하에 적립된 막대한 공적기금이 수십 년의 기간 동안 맹목적으로 수익률 제고만 되뇌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금융적 증식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주식투자 확대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종교자선기관들의 윤리투자에서 시작된 사회책임투자는 초기에는 영국의 개인펀드들이 주요 투자자였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연금펀드를 중심으로 하는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로 급격히 확대·성장하였다. 200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들 전반에서 퇴직연금법에 관련 조항을 반영하며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기업경영에 대한 ‘관여’를 주요 전략으로 하는 영국식과 ‘주주행동주의(한국의 경우 대표적으로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소액주주운동)’를 가장 중심적 활동으로 삼는 미국식을 기본모델로 하여 다양한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지만 결국 수익률의 극대화가 운용의 기본 원칙이라는 점에서 금융투자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이런 것이 있다. 사회책임투자의 주요 운용전술 중 담배나 포르노 관련 기업처럼 윤리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특정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있다(이른바 ‘적격심사(screening)’). 어떤 운용(수탁)기관이 이와 같은 운용전략을 채택했는데 만일 이로부터 투자손실이 예상된다면 이를 벌충하기 위해 특정 산업부분에서 수익율이 일등급을 나타내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포트폴리오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 사회책임투자 시장의 확대는 공적연금을 후퇴시키는 것과 동시에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방식의 연금개혁을 진행한 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근로자 저축 계획’이라는 이름의 연금펀드 플랜을 도입한 프랑스(1999년), 기존 공적연금을 수정하여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펀드에 지급하도록 한 이탈리아(2001년), 연금저축의 증대를 위해 각종 조세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한 스페인(2002년)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 2006년 시행에 들어간 퇴직연금이 올해 6월 기준 약 4조 원의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2050년경에는 그 규모가 2,100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증권연구원, 2000).

사회운동의 ‘운동전략’을 구성하자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 설립과 관련한 사회운동 내의 논의지형은 매우 복잡하다. 물론 기금운용공사 설립 문제가 연기금 지배구조, 연금운용과 관련한 장기적 관점과 전략에 근거한 논의인 만큼, 그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차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 연금개혁에서 많은 사회운동 조직들이 대안적 제도를 마련하고 그의 입법 활동을 중심으로 연대를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십을 형성했던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민주노총, 공공노조(산하 사회연대연금지부) 등의 주요 조직들의 입장은 현재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은 정부가 제출하고 있는 기금운용공사 설립방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는 가운데, 가입자 참여 문제 등을 보완하는 법안을 마련해둔 상태이다. 참여연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 개정방안에 동조하는 입장인데, 정부가 이번 기금운용공사설립 방안을 구상하면서 모델로 참조한 캐나다 연기금운용회사(CPPIB)를 대안적인 연기금 지배구조 모델로 오래 전부터 검토해왔다.

한편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반대하는 입장들 역시 단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연기금 주식투자 반대를 주식투자의 수준을 제한하거나,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반대하는 ‘전술적 근거’의 수준에서 접근한다. 물론 230조 원이라는 적립기금의 ‘현실적 존재’를 부정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제도적 대안마련과 실행이 쉽지 않다는 이유이다.

또한 필자가 속한 단체를 포함하여 사회운동의 일각에서는 연기금의 금융화를 저지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현재의 금융세계화를 더욱 추동하고 있는 적립식 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핵심일텐데, 적립기금을 국가가 차입하여 현세대 노인들의 소득보장기금(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소진시키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앞서 예상한 바와 같은 연금제도 개혁이 또다시 추진될 경우 사회운동의 대응은 지난 연금개혁 당시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연기금지배구조의 민간금융 투자원리를 중심으로 한 재편은 결국 연금민영화와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인식의 차이들이 이후 제도개혁 국면에서 수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운동의 보다 장기적인 대응전략, 연대전략이 구상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물론 보다 광범한 사회운동 내의 고민과 토론의 과정 속에서 가능할 것인데, 몇 가지 고민의 단초들을 시론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연금개혁에 대응하는 단기적 과제(정세적 공동대응) - 중단기적 과제(연대운동 전략) - 중장기적 과제(대안적 전략 구성)를 구분하고, 전자를 중심으로 한 공동활동, 연대운동의 방안을 마련,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연기금지배구조 개편방안, 즉 기금운용공사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이 우선 시급하다. 이 과정에서 최근의 연기금 주식투자로 인한 투자손실 문제에 대한 사회적 폭로와 문제제기는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연기금지배구조를 민주적, 민중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대안적 방안까지는 당장 불가능하더라도 그의 기본요소와 현재의 정세적 요구(가입자 참여보장.확대를 비롯하여, 운용현황에 대한 공개의무 규정, ‘중기자산배분안’의 공개 및 수정 요구 등)을 대중적으로 제안하는 활동도 가능할 것이다.

위와 같은 공동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보다 확장된, 그리고 다층화된 연대운동 전략이 구상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투쟁 과정에서 돋보인 보건의료운동과 사회보험 노조(나아가 건강보험공단)를 중심으로 한 공동활동 체계가 참조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건의료운동은 건약, 인의협 등의 전문가 운동집단, 건강세상네트워크 같은 부문운동 네트워크와 개별 사회단체, 그리고 노동조합의 오랜 산재운동의 경험 등 경험과 성과가 연금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하다. 그러나 연금개혁은 어떤 의미에서는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연대운동 세력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운동을 조직하는 주요한 한 축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가령, 보건의료운동은 건강보험과 같은 제도적 사안에 대한 대응 뿐 아니라, 지적재산권을 근거로 백혈병이나 에이즈 등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초민족제약회사에 맞선 투쟁,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악화-구조화할 한미 FTA에 반대하는 공동활동 등 연대운동의 내용과 대상 또한 매우 폭넓다. 건강보험 민영화에 대한 체계적 대응과 현재와 같은 공동활동 네트워크는 이와 같은 지난 활동의 성과들이 토대가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연금제도 역시 비슷한 방식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빈곤운동과의 관계가 그러한데, 노후소득보장의 기능은 공적연금만이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다른 제도들을 통해서도 수행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제도들의 기능과 대상이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쟁점과 대응의 난맥상 또한 현실적으로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는 각각에 대응하는 운동들이 자신의 외부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연대의 가능성은 전혀 모색되지 못해왔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은 연금개혁에 맞선 대응이 제도 자체에 대한 대응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사회운동으로 제기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도적 대응만을 중심축으로 설정하게 되면, 제도개선식 활동에 소극적인 입장을 가졌다거나, 제도적 대안에 밝은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지나치게 특화된다거나, 제도적 대안에 대한 입장만을 기준으로 연대의 근거가 소진된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연대운동의 확대는 그 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들에 기초하여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대안들에 대한 공동의 논의와 활동으로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연금제도의 대안적 상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로써는 크게 본다면 공공노조-사회연대연금지부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사회연대연금 전략(기초연금 확대 -국민연금의 사수 및 장기적 확대, 사각지대 해소 등이 기본 내용)과 부과방식으로의 근본적 전환이라는 쟁점이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정세적 조건이나 계급역관계 지형 속에서 어떤 대안이든 당장의 현실 가능성은 매우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이와 같은 대안들이 상호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며, 더욱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제기하는 입장은 적립기금 문제를 중심으로 연금개혁의 원인에 맞선 투쟁을 보다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연대연금 전략을 제안하는 입장은 공적소득보장의 대안적 원리와 실현방안에 대한 고민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양자의 문제의식은 더욱 적극적으로 토론되고 적절한 방식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연금개혁의 동학 자체가 이미 제도의 개악과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지고 있는 만큼 각각에 대한 대응 역시 구조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정세적 조건에서 연금문제에 대한 투쟁의 지반을 확대하고, 그러한 투쟁이 보다 장기적으로 보편적인 공적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이 현재 역량을 집중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어떤 운동의 전략이 필요한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판단, 적극적 실천이 조직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