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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는(buy) 것인가 사는(live) 것인가

[기고] 마포성산동 주민과 함께 적정생계비 실태조사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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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고, 서글픈...#1.

(홈에버 상암점 매장 입구, 한 청년이 “집은 인권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있다.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 발걸음을 멈추고 학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말을 건다.)
지나가던 할아버지: “학생, 집이 없나?”
피켓 든 청년: (-_-;;)


위의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1017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홈에버 상암점 앞에서 진행한 선전전 중에 발생한 상황이다. 우습고도 서글픈 것은, 그 할아버지 이런 말을 남기고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가셨기 때문. “학생, 영어공부 열심히 하게.”

집이 없거나 가난한 것은 과연 당사자의 무능함 때문일까? 각자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구해 일을 열심히 하면 빈곤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우리는 이 사회 구석구석에 이러한 낯설고도 위험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홈에버 상암점 앞에서의 선전전을 진행하기 이전에 찾아갔던 곳은 성산동 임대아파트 단지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적정생계비/임금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하면서 다양한 주민들을 만났고, 다양한 이야기들과도 만났다.

#2. 담배 한 갑, 그리고 커피 세 개. 하루에 허용된 자유의 양.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첫 번째 찾아간 집에는 오십대 중후반 아저씨가 혼자 계셨다. 실태조사와는 별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저씨는 천천히 태우시던 담배를 비벼 끄신 후,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불편하신 몸을 일으키신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한 잔 마시고 싶어서 그래”라면서 아저씨는 기어코 물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앞에 두고 또다시 이어진 이런저런 이야기.

남들처럼 회사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정신질환이 찾아왔다고 한다. 아니, 서서히 찾아온 병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술 때문이라고 아저씨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글쎄...술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삶의 무게라는 것도 있었겠지.

결국 시설에 갇혔다고 한다. 그곳을 아저씨는 '돼지우리'라고 하셨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도 하셨다. '억울하다'라는 말도 여러 번 반복하셨다.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약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는 병인데...그러니까 병원에서는 잠 오는 약이나 주고 드러눕혀 놓는 건데...계속 드러누워 있어야 장사가 되니까...의사는 가족들한테 병 나으려면 멀었다고 하고...가족들은 의사 말을 더 믿게 된 거니까...면회 와서는 의사 말 잘 듣고 말썽피우지 말고 있으라는 이야기만 하니...가족들이 면회를 와도 뭐...잘 있다, 잘 가라, 라는 말 외에 할 말이 뭐 있나...나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이야기해도 소용없지 뭐...돈 많은 인간들이야 그나마 살만한 곳에서 지낸다지만...나 같은 인간들은 돼지우리에 갇히는 거지...자유가 없으니까 돼지우리인 거야."

구구절절한 이야기.

자유가 없으니 돼지우리라는 아저씨의 말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담배 한 갑에 커피 세 개, 그것이 아저씨가 그곳에서 하루에 맛볼 수 있었던 자유였다고 한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아저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신다.

#3.어색한 가족사진.

방이자 거실노릇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공간 벽에는 가족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아저씨와 아들 둘, 세 남자 사이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사진관에서 찍은 듯 한 사진인데, 웨딩드레스라니? 좀 어색했다. 게다가 셋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게 그녀는 다소 긴장한 표정.

"아드님 결혼사진...인가봐요?"

"아냐, 내 처야."

의아해하는 나와 류에게 덧붙이는 설명.

가족사진이 없어서 사진관에서 사진을 박았는데, 아내의 모습은 결혼사진에서 따다가 합성했다고. 십 수년 전에 이혼해서 이제는 함께가 아니므로... 어색한 가족사진. 그 어색함이 서글픔이 되는, 그런 사진. 많은 이야기를 던져 주던 사진 한 장.

#4.여기서 살려면 일자리도 맘대로가 아니야.

커피를 대접받고 금방 일어서기가 뭣해서 또다시 이야기는 이어진다.

담배를 한대 더 꺼내 피워 무신 아저씨, 적정생계비/적정임금 관련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는 우리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주신다.

"건너 건너 집에는 여자가 딸 셋을 데리고 살고 있어. 남편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 아무튼 셋을 키우니, 돈이 얼마나 들어. 그러니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주는 알량한 혜택이란게 일을 하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바로 끊기는 거거든. 그런데 그게 끊기면 애들 교육시키는 게 그게 정말 막막한 거거든. 그러니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통장으로 돈이 바로 안 들어오는 일, 그러니까 밤에 룸싸롱 주방에서 일하는 거나 뭐 그런거지. 그래, 그렇게 힘들게 살아. 여자 혼자 애 셋 데리고서...."

#5.다 같이 밥이나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

꼬박 한 시간가량의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발걸음은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나와서 찾아간 다음 집에는,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눈이 잘 안보여, 그거 정확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면서 실태조사를 마냥 사양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하나 던지는 질문에 서서히 펼쳐지던 이야기보따리.

"이러면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네요? 그럼 어떻게... 지내시는 거예요?"

"다 빚이지 뭐...빚...그래도 여기서 사니까 그나마 다행인거야. 집값이 싸잖아."

"그렇죠, 영구 임대 아파트 같은게 더 많아져야죠. 서민들이 그래야 살죠. 그래도...다행이긴 해도, 그래도 조금만 더 이렇게 좋아졌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으시죠?"

"글쎄...뭐, 조금만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 그래야 상이라도 좀 놓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이라도 좀 먹지. 지금은 뭐...한 사람 먹고 나가야 다른 사람이 먹고, 그렇거든. 좁아서 다 앉지를 못해. 뭐, 많이 바라는 건 아니고..."


너무나 소박한 바람. 기타 의견란에서 대기하고 있던 볼펜 끝은 너무나도 소박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 넣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방황하였다.

#6.안다는 건 상처받는 것

가가호호 방문을 위해 흩어졌던 우리들, 다시 한 자리로 모였다. 실태조사에 함께했던 대학 신입생 한 친구가 왠지 축 쳐져 있길래, 왜 그러느냐 했더니 오늘 만난 사람들, 만난 이야기들로 인해 너무나도 슬퍼졌다면서...

"새로운 걸 알면 즐겁고 기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오늘 제가 알게 된 사실들은 저를 너무 아프게 하고 상처 주는 거예요. 왜 나는 여태 이런 걸 몰랐을까,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편하게 살았는데, 여태껏 난 뭐하고 있었나..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 아픔들. 저녁의 이랜드비정규직투쟁승리 문화제에서 이경옥 동지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도, 기륭도, KTX도, 코스콤도..."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을 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찌르르 하는 그런 아픔들.

비록 안다는 건 상처받는 것 이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뿌듯함과 희열 역시 동반한다는 사실이 덧붙여져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아픔들을 어쩌면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익숙해지지도 말고, 아픔은 아픔대로. 그렇게 느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새내기 친구의 슬픈 눈빛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른 생각.

#7.상처받아 더욱 단단해진 우리들, 위험한 질문을 던지고 진실 된 답을 찾아나가자.

그러나 마찬가지로 새삼스럽기 그지없는 이야기이지만, 상처는 더욱 단단함을 안겨주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상처받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단단해진 우리들, 계속하여 위험한 질문을 던지고 진실 된 답을 찾아나가야지. 10월 6일 오늘은 주거의 날이다. 집은 무엇인가? 사는(BUY) 것인가? 사는(LIVE) 것인가? 10월 17일은 빈곤철폐의 날이다. 빈곤은 무엇 때문인가? 개인의 무능함 때문인가? 1%의 부자만을 배불리고, 없는 자에게서는 그나마 있는 것들마저 빼앗고, 아무것도 없는 이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하는 2MB정권, 미친 개발, 위기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인가? 과연 무엇 때문인가?

p.s. 답이 궁금하다고? 10월 17일에 서울역 광장으로 오시라. 빈곤에 맞선 인권 선언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절로 답을 알게 될 것임.
덧붙이는 말

문설희 씨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교육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