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지난 4월 15일 사설 학원까지 학교에 들어와 영업할 수 있는 '학교자율화' 조치를 단행했고, 4월 28일엔 한반도를 외국교육기관의 영어시장으로 내어주는 '유학연수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30일에는 서울 강남 4개 구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강남 교육감이 당선되었고, 내년 3월에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 모두 영어로만 가르치는 등록금 1천만 원의 국제중이 개교한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 학교 간 성적이 전면 공개되고 2012년부터는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시험을 국가가 주관한다.
2010년 국가시험으로 학교 서열화
일부 사립대들이 내부적으로 SKY대(서울대, 연대, 고대 등 이른바 명문대를 이르는 말)의 입학률을 가지고 고교등급을 매겨왔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초중고 학교 전체를 정확하게 한 줄로 세우는 것은 그간 불가능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학교의 성적이 비교 가능한 것일까? 이미 1998년부터 정부는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또는 2학년 학생들의 1% 내외를 뽑아서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러왔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라고 일컫는 이 시험은 어디까지나 교육과정 수준이 적당한지, 학생들의 성취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교과별로 부진한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반성하기 위한 연구용 평가였다.
그러나 지난 4월 28일 교육부와 16개 시 도 교육감들은 오는 10월 14~15일 초등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이 시험을 치르게 했다.(초등 3학년은 이보다 앞선 10월 8일에 시험을 치른다. 지난 2002년부터 이 시험은 전국의 모든 초등 3학년 학생들이 치러왔다. 그러나 성적은 개인에게만 공개되었다.) 평가에 참여하는 학생은 24만 명에 이르고 평가에 소요되는 예산은 무려 16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아이들이 받아보게 될 성적 통지표는 아래와 같다.(학부모는 수학·영어·사회·과학 과목을 포함한 1장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언뜻 보기에 이 정도 내용으로 무슨 학교 서열화가 가능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10~11월에 제정될 예정인 「교육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특례법 시행령」(이하 학교정보공개법)은 2010년부터 이 시험 결과를 3단계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3단계 비율은 곧 총점으로 환산할 수 있다. 과목별 가중치를 두고(국 5점, 영 4점, 수 3점, 사 2점, 과 1점) 성취수준에 따라 또 가중치를 두면(보통이상 5점, 기초 3점, 미달 1점) 거기에 학생비율을 곱한 합계가 그 학교의 총점이 된다.(교과 점수에 가중치를 안 둘 수도 있고 가중치 순서도 바뀔 수 있다.)
아래 학교를 예로 들면 국어 총점은 【5점×〔(5점×○%)+(3점×△%)+(1점×□%)〕】이 된다. 학교 홈피에 공개된 비율만으로도 충분히 이런 총점 산출이 가능하며 이것을 표로 만들면 전국 초등학교를 한 줄로 세울 수 있다. 교육부가 시행하고 학교가 제공한 점수를 간단하게 가공하면 보수 언론사와 단체들은 얼마든지 내 아이 학교의 등수를 알아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서열화를 우려해 3단계로 공개하던 방식도 4단계, 5단계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더욱이 2011년부터는 전년대비 성적 향상도까지 공개하여 해당 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의 1년간 성과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성적 향상도는 학교만족도와 같은 주관적인 교원평가 매뉴얼을 대체할 계량화된 매뉴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학교정보공개법이 가져올 공교육 파산
학교정보공개법 내용에 교원단체나 교원노조 가입 교사수를 공개한다고 하여 떠들썩하다. 아주 간단한 조작으로도 보수 언론이나 단체들이 전교조 교사수와 성적(대학 진학률)과의 상관관계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이 비율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와 2008년 서울대 입학자 수의 다중선형 회귀분석 결과 서울대 입학생 수에 영향을 미치는 유의한 변인은 '강남 여부', '특목고 여부'였고 교원단체 현황은 모두 유의한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변인은 '특목고 여부'였다. 특목고이거나 강남에 있는 학교가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으며 이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학생의 성적과 진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이런 결과는 교육부가 발표한 아래 표에서도 정확하게 드러난다. 이 표는 지역에 따른 2006년 초등학교 6학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연도별로 정리하여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 한 교육부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국어과의 ‘우수+보통’ 비율은 대도시일수록 높고 ‘기초+미달’ 비율은 읍면 지역일수록 높다. 2006년에 농산어촌의 초등 6학년 가운데 국가 평가에서 20점도 채 맞지 못하는 학생들은 무려 6.5%에 이르렀다.(이는 같은 지역 영어과 미달 비율인 5.2%보다 높다.)
학교정보공개법이 가져올 무시무시한 결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이 하려는 '학교선택제'는 학부모가 서울 시내 고등학교 가운데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외고·과고·자사고 등이 초일류고군이 되고 강남·목동·노원 지역의 학교가 일류고군 그리고 그 외의 학교들은 이류나 삼류로 떨어져 이른바 '비선호 기피학교'가 된다. 신자유주의를 추진해 왔던 지난 정부들조차 지켜왔던 3불(三不 :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고등급제 금지 정책)은 이미 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교원평가도 이미 시행된 것이나 다름없다. 학교 간 서열화의 결과가 곧 그 학교 교사들의 평가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래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현상을 방치하고 가난이 교육을 대물림하는 입시경쟁체제를 유지시켜온 한국 공교육의 파산은 얼마 남지 않았다.
누가, 교육 파산을 막을 수 있는가?
실제로 영국과 미국의 성취도 낮은 학교들은 학부모가 선택하지 않아 폐교되거나 민간에게 맡겨진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집에서 더 먼 학교에 다니거나 아예 학교에 가지 않고 빈민가를 쏘다닌다. 정부는 학생수에 따라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학생이 적은 기피 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해고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교육 파산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부는 신자유주의 교육의 핵심인 '학교 간 성적 공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성적이 낮은 학교는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낮은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인데 이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마치 주류 언론들이 서브프라임으로 집을 잃은 미국의 홈리스나 식량위기로 굶어죽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비율,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비율만으로도 공적 지원이 필요한 학교들은 알 수 있다. 정부가 진정 학력이 낮은 학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라면 이런 지표들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국가 평가로 아이들을 시험의 노예로 학부모를 사교육의 볼모로 만들고, 이 파산을 막을 진보적인 교사들을 평가에 찌들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 대해 개혁언론조차 시선을 두지 않는다. 전교조 교사수라는 빙산의 일각에만 몰두하고 물 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파산의 전조는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20%도 채 안 되는 전교조 교사들은 신자유주의 교육 파산을 막아낼 한 줌의 주체들에 불과하다. 이 무한경쟁 교육체제의 홈리스가 될 가난한 노동자, 농민, 빈민, 서민들이 나서서 파국을 막지 않으면 이 한 줌의 주체들도 물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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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희 님은 서울영일초 교사이며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