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망원인 4위 자살! 2007년 한해 자살자 1만 2174명. 하루 평균 33.3명 자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 5년 연속 1위…. 원치 않는 죽음을 맞는 연간 운수사고 사망자(7,604명)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나라 한국. 20~39세 청·장년층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고, 최근에는 가족동반 자살, 청소년 자살 등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까지 생기고 한국에는 자살예방협회라는 곳까지 생겼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개인의 나약함, 의지박약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사채 40억 원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알려진 故 안재환 씨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하고 있지만, 더 많은 안재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에서 삶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분노해야 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경제 대국 11위 한국의 자화상
2004년 신용불량자 400만 명 시대는 가고 점점 신용불량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선전과는 달리 현재 정부통계로도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780만 명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계부채 660조 원, 가구당 부채는 4천만 원으로 사상최대! 시중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의 비중이 55%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구당 부채는 평균 8000만 원에 육박, 평균 대출금리를 7~8% 적용하더라도 연간 이자부담만 560만~640만 원 정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평균치보다 많은 돈을 빌린 가계의 경우는 그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7월 가계대출 금리는 7%를 넘어섰다. 은행별로 상반기 0.3~0.6%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이 최근에 0.8% 안팎으로 높아졌다.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은 이미 1.5~2.0%로 급등해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법원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지역에서 법원경매에 부쳐진 주택 물건은 지난 7월 1,493건에 비해 40% 가량 증가한 2,085건에 달했다.
얼마 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자영업자 수는 594만 5000명으로 그 수가 600만 명 이하로 줄어든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5년 만의 일이다. 반면 대출은 오히려 늘어났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도매·소매업 대출은 지난해 1분기 50조 원에서 올해 1분기 61조 원으로 대폭 증가, 숙박·음식점업의 대출도 같은 기간 14조 원에서 17조 원으로 3조 원 증가했다. 또 영세 제조업체들의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0.95%에서 지난 5월 말 1.43%로, 건설업체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1.46%에서 5월 2.26%로 늘어났다.
청년 실업자 300만 명! 23일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액은 2006년 1조 6256억 원에서 2007년 2조 1296억 원으로 1년 새 31%나 급증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갚지 못한 연체자 수가 1년 반 동안 2배로 급증했고 연체금액도 약 2.3배 증가했다. 2006년 12월 1만 8100명, 2007년 말 3만 1500명, 2008년 5월 3만 6200명으로 급증했다. 연체금액도 2006년 말 592억 원, 2007년 말 1140억 원, 지난 5월에는 1371억 원으로 늘어났다. 2008년 1학기 학자금 대출 금리는 7.65%, 2학기에는 7.8%로 오른다고 한다.
굳이 위와 같은 통계자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되어 온 빈곤은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더욱이 자식을 둔 부모들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죽을 것인지 살아갈 것인지... 살아갈 것을 선택한 이들은 채무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회, 일을 해도 가난한 사회는 빈곤과 채무의 순환 속에서 나아지기는커녕 또다시 더욱더 깊어지는 빈곤과 채무의 늪을 경험했을 것이다.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불법 채권추심은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큰 공포이다. 이러한 추심의 과정은 아주 기본적인 인권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고 삶의 의지마저 꺽어버리고 있다. 실제 채무의 고통과 추심의 공포를 겪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 잇따른 어머니들의 자식들과 동반자살하는 사건에 대해 우리는 감히 그녀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들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을 빈곤과 채무라는 삶의 무게에 대해 우리는, 그리고 사회는 침묵했기 때문이다.
2MB의 일관된 가진 자들만을 위하는 정책
민중들의 삶이 이렇게 처참한데도 이명박 정권의 정책은 일관된다.
9월 3일 780만 금융소외자를 구원하러 오신 것 마냥 요란을 떨며 신용회복기금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 기금의 주최인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채무와 추심에 시달리는 780만 금융피해자들을 상대로 야바위판을 벌이고 있다.
작년 대선 당시 7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생계형채무자들에 대해 원금탕감을 해주는 등의 4대 신용회복특별정책이라는 공약은 당선이 되자마자 올해 1월 4일 공(空)약이 되어버리며 도덕적 해이를 고려해 500만 원 이하의 생계형채무자에 대해서도 원금탕감은 없다고 했다. 그 연장선에서 출범한 신용회복기금의 본질은 더욱 추악하다. 우선 이자를 전액 탕감해주고 원금만 최장 8년에 나누어 갚게 한다는 정책은 기존에 있는 제도이다. 신용회복위원회라는 은행연합회의 채권사들이 만든 민간 기구에서 2002년부터 시행해오던 개인워크아웃제도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음에도 새로운 것인 양 떠들어대고 있는 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해당 채권사로부터 채권의 10% 내외의 가격으로 채권을 사들여서 채무자에게는 원금 모두를 8년이라는 살인적인 기간 동안 매월 나누어 갚으라고 하는 방식이다. 채권사들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몇 년째 연체가 되어 있는 부실채권의 경우 장기간 가지고 있는 것이 해당 채권사에게 더 불이익을 주어 채권사들은 보통 3년 이상이면 채권을 매각하게 되는데 이 매각되는 금액이 평균 5%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고금리는 채권사들의 원금 이상의 수익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780만 금융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야바위판과 다를 바 없는 신용회복기금은 금융사와 대부업체들만을 살찌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빈곤과 금융채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신용회복기금을 요란하게 선전해 대면서도 잊지 않는 말이 있다.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서 신중하게 심사를 한다는... 생활고가 심각해지면서 개인파산신청률도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파산신청 증가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소추세에는 이유가 있다.
1962년 만들어진 파산법에 따라 1997년 첫 파산자를 시작으로 개인파산 신청자는 점점 증가하여 2005년 4만명, 2006년 12만 명을 넘게 된다. 2007년 초 개인파산 법률브로커 사건과 적절히 조우하면서 개인파산에 대한 보수적인 반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소액채무자와 청년층 채무자들에 대한 심리를 강화하고 재량면책권등을 축소하면서 2007년 개인파산 신청자는 16만 명을 넘지 못한다. 올해도 상반기 개인파산 신청자가 7만 명을 넘어섰다고 요란 떨지만 지난해 추이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상황은 후퇴하고 있다. 금융채무와 파산신청에 대해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라는 낡은 인식은 빈곤과 채무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할 것이며 막다른 골목에서도 구석으로 내몰려져 웅크릴 대로 웅크러져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을 계속해서 양산할 수밖에 없다.
날로 증가하는 금융채무와 금융채무자 문제의 본질은 빈곤과 고금리이다. 세계 다른 국가들의 10%대의 이자율에 몇 배에 달하는 30%~49%(2006년 사금융 평균이자율은 223%)라는 한국의 고금리는 빈곤에 허덕이는 민중의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신용회복기금에서 대부업 이용자들을 30%의 은행대출로 갈아타게 해준다며 선심을 쓰듯 이야기 하지만 30%의 고금리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되묻고 싶다. 그 물음에 이명박 대통령은 협박하는 거냐고 할 것이 뻔하겠지만...
명절을 앞두고 주변에 금융채무가 있는 이들에게 명절인사 하기가 망설여진다. 가족들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모처럼의 연휴를 보내야할 명절에 이들은 지인들에게 조그마한 선물은 커녕 내일, 또 내일 살아갈 일을 걱정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초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해오름에서 논의, 정리된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