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도 외면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교육, 상수도를 비롯한 공공서비스와 철도, 발전, 가스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 현재의 촛불집회 공간에서 쟁점화 된 의제들 대부분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인수위 시절부터 개혁 구상을 밝혀왔으며, 이미 대중들의 불만과 불신이 잠재되어 있거나 조금씩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들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논란이나 최근의 제주도 의료민영화 추진 해프닝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일련의 개혁 정책들은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이지’ 언젠가는 다시 등장할 것이고 대중들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노무현 정부 당시 유보되었거나 더디게 추진되었던 부문들의 개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민연금 제도개혁에 대한 구상이 이미 인수위 시절 제출되었으며, 연금기금 운용체계 개편작업이 추진 중이다. 연금제도, 기금운용 등 국민연금을 구성하는 제도 전반에 대한 (재)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집권 내내 진행되어 이제 일단락이 난 듯 보였던 국민연금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신자유주의가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국민연금이라는 주제는 공공노조-연금노조 등 몇몇 주체들의 노력에도 촛불집회에서 전혀 쟁점화되지 못했다. 촛불집회는 대중들의 삶, 생존과 직결되는 다양한 쟁점들이 이슈화되는 공간이었지만 국민연금 문제는 매우 예외적이었으며, 비슷한 목적과 체계를 갖추고 있는 건강보험의 사례와도 매우 대조적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무관심, 그리고 현실이 아닌 미래의 소득을 다룬다는 연금제도의 성격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연관 짓지 못하는 사회적인, 나아가 사회운동 내의 인식의 취약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인 듯하다.
건강보험, 상수도, 가스 등의 민영화와 국민연금 개혁은 그 본질 면에서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민중의 보편적인 기초생활에 대한 공적 책임을 축소하고 그를 자본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 그렇다. 더욱이 공적연금은 그 제도적 특성상 장기간의 투자가 가능하며, 막대한 적립기금으로 인해 금융자본의 이해가 매우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작용한다.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은 현재 약 230조가량으로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 정도 가는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금융자본의 공격에 더욱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의 특정한 사회제도가 진공상태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닌 바에야, 국민연금 역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원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29일,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연금기금의 주식투자, 해외투자, 대체투자 등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분야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여 국민연금 수익률을 제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에 호응하듯 국무회의에서는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민간투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개편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이틀 후인 31일, 각종 언론들이 2008년 상반기에 국민연금이 4조 3,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손실을 기록했다는 기사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연금제도·연금기금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적연금 해체하는 이명박 정부의 개혁 구상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인 지난 2월 국민연금의 추가적인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기초노령연금의 대상 범위를 현재의 60% 수준에서 80%로 확대하여 기초연금으로 전환하며,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삭제하고 가입자 개인들이 내는 보험료 수준으로 지급받는 형태의 소득비례연금으로 남기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의 주요 골자이다. 이와 같이 2층 구조를 구축하되, 기초노령연금 및 기초법과 국민연금의 중복수급을 금지하겠다고 하였다(각 제도 사이에 일정한 조정구간을 두는 것은 검토).
작년의 국민연금제도 개혁은 기초노령연금의 도입과 국민연금의 후퇴가 맞교환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사회운동 내에서도 개혁 방향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개혁의 큰 틀을 지지했던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에 가입조차 하지 못하는 빈곤한 노인들에게 비록 적은 액수일지라도 연금을 지급받도록 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을 개혁의 최소한의 명분, 성과로 꼽았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고 있는 추가적인 개혁 구상은 국민연금에 가입도 하지 못하는 빈곤한 노인(그 내에서도 기초법 수급자와 비 수급자), 가입은 했지만 소득 수준이 극히 낮은 노인, 평균 수준의 소득을 가지는 노인, 고소득자 등 조건에 따라 이해득실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빈곤층 노인의 노후대책은 후퇴하거나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점(중복수급의 금지), 그리고 국민연금 이외의 (노후)소득보장제도와 관련이 전혀 없는 고소득자의 연금급여는 올라간다는 사실(소득재분배 기능의 삭제) 등의 몇 가지는 매우 자명하게 예측된다. 나아가 이와 같은 방향 아래서 연금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 수준을 더욱 낮춰 가는 개혁의 지속 역시 무리한 예측은 아니다. 물론 이는 노후소득보장, 공적 사회보험의 원리를 급격히 후퇴시키는 방향이다. 이와 같은 이명박 정부의 개혁 구상은 아직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지 않았지만, 지난 국민연금 개혁 과정, 그리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개혁방향을 고려한다면 언제라도 제안되고 추진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체계개편, 브레이크 없는 연금기금의 금융화
위와 같은 국민연금 제도개혁 이외에 작년 하반기 추진되다 중단되었던 연금기금 운용체계 개편도 노무현 정부 당시의 안과 대동소이한 개혁이 추진 중이다.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편안이 현행 체계와 특징적으로 다른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기금운용 지침마련(전략적 자산배분)과 기금운용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복지부 산하, 비상설 기구에서 민간 독립, 상설기구로 전환한다 2)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은 가입자 대표 12인을 포함한 총 20인이던 것에서 민간투자전문가 7인으로 구성한다 4) 가입자 대표 6인을 포함 총 11인으로 구성되는 운용위원 추천위원회를 신설한다 4)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의 기금운용본부가 담당하던 기금운용의 전술적 자산배분 및 집행을 기금운용공사를 별도로 설립하여야 한다 5) 정부는 최소 요구수익률을 제시한다.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투자의)전문성, (정부와 가입자로부터의)독립성·자율성, (정부의)책임성,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통한)대표성·투명성의 제고를 큰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금운용 체계개편에 시동을 걸었던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여기에 기금분할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개편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기금운용공사를 복수로 설립, 연금기금을 분산 예치하여 경쟁적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되었는데, 이 역시 지배계급 내에서는 여전히 검토 중인 사안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개편을 사회운동의 언어로 해석해 보자면, 연금기금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애요소를 제거하고 금융투자의 원리를 연금운용의 기본원리로 제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려져 있듯이 막대하게 쌓이고 있는 연금기금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부양하는 핵심 자원 중의 하나다. 또한 노무현 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미국의 월가로 건너가 세계은행과 연금기금 주식투자와 관련한 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한데서 알 수 있듯이, 세계은행, IMF 등의 국제금융기구들은 연금기금의 금융투자의 규범과 세부 방법론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여 공적 연금 지배구조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국민연금의 사례를 참조할 만한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 모두 민간 금융투자 전문가들 중심으로 기금 운용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공적연금을 구축하고 있는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매우 드문 사례로 손꼽히는 곳들이다. 특히 정부의 개편안은 캐나다 연기금운용회사(CPPIB)를 모델로 삼고 있는데, CPPIB는 연기금 운용 기관들 가운데서도 매우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식부문에 대한 투자가 60%를 상회, 해외투자 30%까지 가능). CPPIB 역시 1990년대 중반 인구 노령화와 재정안정성을 명분으로 한 캐나다 공적연금(CPP) 개혁 과정에서 기금 투자 수익률을 제고함으로써 재정안정성을 높여 나간다는 구상 아래 설립되었다. 철저히 금융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CPPIB는 고도의 투자위험을 감수하면서 공세적으로 주식투자를 하였고, 그 결과 토론토 증권시장을 부양하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투자처를 찾아 배회하던 CPPIB는 심지어 이라크 등지에 무기를 생산·조달하는 민간군수기업에 대한 투자 등 매우 비윤리적인 투자에까지 영역을 넓혀 나가 시민사회운동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연금기금 운용체계 개정안이 순조롭게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부터 새로운 기금운용 체계가 작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의 연금기금 투자 방향을 둘러싼 각종 논란들은 매우 시사적이다.
고위험·고수익 투자 확대, 기금운용 체계개편, 구조조정의 삼박자
법·제도적 측면에서의 개혁의 추진이 아니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의 금융화는 이미 본궤도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증시가 급락할 때마다 국민연금의 투입설이 정부 책임자의 입을 통해 공공연하게 발언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실제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국 증시가 요동을 칠 때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들이 증시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왔다. 작년 8월 16일, 코스피 지수가 6.9%나 떨어지며 1,700선이 붕괴되자 10월 12일까지 약 2조 5,704억 원에 이르는 연기금 순매수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코스피 지수는 1,600대에서 2,000대까지 수직으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포함하여, 작년 11월 22일에서 12월 13일까지 1조 220억 원, 1월 14일에서 2월 26일까지 2조 612억 원, 4월22일에서 5월 8일까지 6,811억 원 등 연기금이 집중 투입된 시기마다 코스피는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입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되어 주택시장의 위기,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지고 있는 미국경제의 위기가 지속·확대하고 있는 조건에서(구체적인 내용은 참세상 기사 ‘미국경제위기 어떤 상태인가?’(박하순) 참조) 그와 같은 상황은 지속하기 힘들며, 연금기금 투자의 위험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이후에도 외국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에 대응하기 위해 연기금이 대거 투입되었지만 증시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1일 보도된 국민연금의 막대한 투자손실은 필연적인 결과다. 적어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서의 보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연금기금 주식투자 부분에서 4조 2,647억 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현재 연금기금 약 230조 원 중 70.4%가 국내 채권, 15.2%가 국내주식, 해외채권 7.8%, 해외주식 3.1%, 대체투자 2.8%의 비중으로 기금이 운용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주식투자를 한 결과 국내주식 -9.9%, 해외주식 -11.9%대의 수익률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9일 국민연금관리공단 박해춘 이사장이 밝힌 연금기금 운용방향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투자원금의 10%에 이르는 무려 4조 원이 넘는 기금을 증발시켜 버린 기금 투자 상황을 모르고 나론 발언들이라면 좋게 봐주어도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만일 알고도 나온 것이라면 금융회사 출신 이사장답게, 국민연금의 기본 목적에 대한 심각한 왜곡으로 앞으로도 이와 같은 투자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공격적으로 금융투자를 감행하겠다는 발상이다.
박해춘 이사장은 2012년까지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해외투자 비중을 20% 이상으로, 대체투자를 10%까지 확대하겠고 밝혔다. 이 같은 방향은 ‘국민연금 중장기 기금운용마스터플랜’이나 매년 수립되는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 등에 이미 반영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박해춘 이사장의 계획안은 목표달성 시기를 매우 단기간으로 잡고 있다. 특히 다른 부분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대체투자에 대한 확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투자란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정형화된 전통적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에 대한 대체(Alternative) 개념으로, 공개시장을 통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유가증권 또는 실물자산 등에 투자하여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방식이다. 사회간접자본(SOC)투자, 부동산, 벤처투자, 기업구조조정투자, 사모투자(Private Equity) 등이 대체투자 대상이다. 한눈에 알 수 있듯 대체투자는 주식이나 채권보다도 고위험을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금융상품과는 다른 종류의 투기성을 특징으로 한다. 박해춘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민영화 대상 은행,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기업, 국내외의 부동산, 해외 발전소 등의 자원 개발, 곡물 자원에 대한 투자 등 대체투자를 공세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구조조정 및 매각 대상으로 지목되어온 우리금융,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의 금융사, 그리고 대우조선,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매각이 예정된 구조조정 완료기업에 대한 투자 등 구체적인 기업을 거론하며 투자 의지를 피력했다. 사실 이 같은 연금기금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의 문제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기본적으로 공단 이사장의 권한 밖의 일이다. 따라서 내년 하반기 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새로운 기금운용체계가 안착하기까지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이명박 정부의 금융, 기업 구조조정, 때맞춰 추진되는 기금운용 체계개편 작업이 삼박자를 이루며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신자유주의 지배계급의 행보에 비해 사회운동의 인식과 대응은 매우 한가롭다. 노동자 민중의 노후소득을 금융시장에 내맡기고, 노동자 민중의 땀으로 쌓여가는 연금기금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종자돈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두고만 볼 것인가? 보편적 노후소득 보장이 가능하고 연금기금의 금융화를 저지하기 위한 민중적 대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고민, 투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