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는 매년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이양받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가 3번째로 ‘3단계 제도개선과제 추진’이라 불린다. 이미 제주도는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는 것에 덧붙여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에 건강보험 적용 진료부분과 미적용 부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해주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중앙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보건복지가족부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에 따른 당연지정제 예외 기관 인정 논란을 우려한 중앙 정부와 제주도의 협의 하에 아예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에 대해서도 기존 의료기관과 동일하게 건강보험을 당연히 적용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되었다. 어찌되었든 촛불의 열기가 한창 고조되던 지난 6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허용하기로 중앙정부와 최종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제주로부터 의료민영화’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되었다.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게 되면, 경제특구로서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에 허용된 이후 전국화의 경로를 밟을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영리법인병원이라는 것은 자본시장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자본으로 의료시설, 장비에 투여하여 병원을 운영하고,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해주어야 할 책무를 지니는 병원이기 때문에 수익이 많을수록 주가가 뛰고, 투자가 늘어난다. 따라서 기존 비영리 병원보다 더욱 돈벌이에 치중할 수밖에 없으며 현재의 건강보험 진료비 수준에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초기에는 건강보험제도를 자양분 삼아 활동하겠지만, 건강보험을 대체할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가시화되면 언제든지 건강보험제도를 벗어나 고가의 진료수입이 보장되는 민간의료보험으로 갈아타기 위한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다. 결국, 건강보험제도는 영리법인병원 성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다가 사용기간 만료 후 폐기처분 될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리법인병원이 처음 시도되는 곳이 ‘제주’라는 점이다. 제주도는 서울에 비해 의료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고, 외국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관광 수입 또한 예전만 못한 조건에서 ‘의료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의료 인프라 개선 명분이 상당한 파괴력을 지닐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속내는 국가권력이 ‘의료민영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의료 인프라가 제일 취약하고 경제전망이 어두운 지역을 약한 고리 삼아 끊어내고, 의료민영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지만 명분은 아주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6월 24일 발표된 제주도 당국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영리법인병원 허용 찬성이 75.4%에 달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앙정부의 처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영리법인병원 허용은 결국 의료민영화의 물꼬를 트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보건복지부에서는 영리법인병원 허용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하면서 ‘단, 제주도민이 원하면 우리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발뺌하기에 급급하였다. 의료민영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고밖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이런저런 논란이 벌어지던 상황에서 재미있는 돌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지역신문의 하나인 한라일보가 제주특별자치도 2주년 평가 여론조사를 하면서 영리병원 찬반 여론을 묻는 문항을 포함시켰는데, 부정적 의견이 47.9%였고, 긍정적 의견이 42.8%로 이전 조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혐의를 회피하려는 중앙정부는 제주도 당국에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요구하였고, 그로 인해 제주도 당국은 새로운 여론조사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제주도 당국은 7월 27일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하고, 이 결과에서 과반수 찬성을 넘지 못하면 2008년에는 영리법인병원 추진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이후 제주도 전체는 10여 일이 넘는 기간에 영리법인병원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여론조사를 앞두고 10일간 제주도 공무원이 총동원되어 20세 이상 성인 10만 명(제주도민 전체 55만 명)을 직접 만나서 영리법인병원 도입의 필요성을 교육·홍보 하였고, 관변단체와 도내 주요 기업체가 총동원되어 영리법인병원 지지 광고로 도내 일간지를 도배하였으며, 영리법인병원 지지 기고와 기자회견이 줄을 이었다. 제주도 전역에 임시반상회가 조직되어 지역 케이블 TV로 생중계되는 제주도 지사의 특별 담화를 시청한 후 이어진 공무원 주관 교육은 관제 여론몰이의 ‘백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는 찬성률 70% 이상을 장담하고 있었고, 여론조사 전문가와 기자들조차 과거 경험을 이유로 찬성률 60% 이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8일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영리법인병원 찬성 38.2%, 반대 39.9%.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반대편에서는 승리의 환호가 터졌고, 도청에는 충격의 쓰나미가 덮쳤다.
일반 여론조사 결과라면 1.7% 차이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여론조사의 맥락을 짚고 보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제주도민들은 열악한 의료 인프라와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의료민영화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로 김태환 도지사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조건이 성숙하면 다시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2010년 선거를 앞두고 2009년에 다시 영리법인병원 카드를 꺼내 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를 비롯하여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쉽게 영리법인병원을 비롯한 의료민영화 추진 계획을 함부로 꺼내들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주도민들의 현명한 선택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