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온 누리에 세찬 비가 몰아쳤다. 이번 태풍의 크기는 소형인데 강도는 중급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피해가 적어 적잖이 안심이 된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명언을 남긴 갈매기 중에는 유람선을 따라 다니며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를 얻어먹는 ‘거지 갈매기’가 있다. 하늘을 날며 과자를 낚아채는 갈매기의 모습에 관광객들은 환호하며 재미를 느끼지만 그런 갈매기들은 직접 물고기를 사냥하는 본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관광지 식당가의 쓰레기통을 뒤지기 때문에 ‘거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런 갈매기들을 보면 문득 이 땅의 정치를 떠올리게 된다. 따라다니며 달라고 하는 사람과 선뜻 주는 사람. 그래서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가 보다. 그러나 갈매기에게도 소중하고 진실 된 꿈이 있다. 아마 그것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 현실의 세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일 게다. 이러한 꿈은 자신의 생존본능과 욕망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갈매기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권력을 좇으면서 길들여지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적선하듯이 권력 부스러기를 던져준다. 그러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어느 순간 위험을 인식하게 되는데, 그것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존본능’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을 인식하면서 권태와 공포와 분노를 느낄까.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그들의 삶을 짧게 만드는 원인은 아닌지. 그들도 갈매기처럼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본능과 욕망을 맘껏 내보이고 싶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잔인한 스트레스를 받아 교육에 대한 짙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은 살아있으되 산 것이 아니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교육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보편적인 진리는 이제 바뀌고 있다. 즐겁고 신나게 학교에 다녀도 걱정 많은 아이들에게 친구에 대한 신뢰와 선생과의 소통이 담보되지 않는 야만스런 학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친구를 적으로 설정하여 경쟁하게 하는 학교에서는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사고 확대, 초등학교 일제고사 부활, 0교시 등을 통한 학력 신장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무한 신뢰를 줄 수 있는가.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명문학교(?) 진학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학교 건설에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결국 그런 미래는 아이들에게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에 던져버리고 방치하는 것과 같다. 일찍이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내적 의지에 따라 각자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들은 경쟁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이명박식 교육정책의 추진 주체들이야 말로 원칙과 철학 없는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부르주아지들이다. 이들이 바로 권력을 쫓아다니며 권력자들이 던져주는 권력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거지 갈매기’와 같은 존재다. 이들의 교육정책은 아이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개발하기는커녕 오히려 능력을 죽이고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
최근 아이들에게서 자주 목도되는 현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서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경향이다. 즉 자신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돈과 명예가 따르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돈과 명예가 많은 것도 즐거움의 원천이기는 하다. 하지만 돈과 명예는 일을 통해 얻어지는 부산물일 뿐이며, 그것을 얻는 즐거움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대체할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란 1명의 1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존공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윈윈전략이다. 진정한 일류학교·명문학교는 성공 여부를 떠나 수많은 학생을 모아서 그들을 올바른 길, 사회에 공헌하는 길로 보내는 그런 학교가 되어야 한다.
친구와 이웃이 적이 되는 사회에 아이들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학생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삶의 공간이다. 학교는 교육의 핵심주체인 학생을 섬겨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듯 교사, 학교, 교육 당국은 학생을 섬기는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장하고 창조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7월 30일은 최초로 서울시 교육감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날이다. 누가 과연 학생을 섬기는 교육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실천을 할 것인지 이번 선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은 반질반질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아이들이 정말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서울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아닌 현명한 서울시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