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도민여론조사를 앞두고 행정력을 총동원해 대규모 도민여론조작을 시도하려는 70년대 '관제반상회’와 자생단체 강제 동원을 즉각 중단할 것’과 도민들의 합리적 판단을 위해 ‘대도민 공개토론회와 마을단위 공동설명회 개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말도 많고 우려도 많았던 임시반상회, 17일 낮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거니 역시나 우리 아파트에서도 오후 7시 30분에 관리사무소 3층 회의실에서 임시반상회가 개최된다고 전해 주었다. 김태환 지사가 “관제반상회 지적 옳지 않다. 훌륭한 반상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지만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밝힌다. 필자는 ‘의료민영화 및 국내영리병원 저지 제주대책위’에 소속된 단체(노동조합)의 실무자이다. 국내 영리법인 병원 설립허용의 문제점과,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기 위해 반상회에 참석하고자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필자는 반상회에서 단 두 번만 발언했다. 이제 그 치열했던 반상회 모습을 같이 감상해 보자.
오후 7시 30분 아파트 관리사무소 3층에 도착해 보니 나와 통장님을 포함해 세 명의 주민이 있었다. 15분쯤 지난 후 10여 명의 주민이 모였고, 참석한다던 공무원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장님은 공무원이 ‘옆 마을과 반상회를 같이 하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사전 통보도 없이 그럴 수 없다고 하여 공무원이 우리 아파트로 온다는 전언이다. 대부분이 주부인 주민(남성은 나를 포함하여 3명 참석)들은 반상회 개최 시간을 두고 투덜거리는 분위기였다. 오후 7시 30분이면 젊은 사람들은 퇴근 전이거나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인데 어떻게 반상회에 참석하느냐는 문제제기였다.
드디어 오후 8시, 옆 마을에 가 있던 공무원 한 분이 우리 아파트에 급하게 오면서 임시 반상회는 시작되었다. 주민은 통장님을 포함하여 15명 정도였다. 공무원은 임시 반상회보와 다른 유인물 한 장씩 총 두 장의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국내 영리법인 병원 설립 허용” 사실은 이렇습니다. 임시 반상회보! 낮에 언론을 통해서 보았던 그 반상회보다. 제주도는 영리법인병원 설립에 대한 일방적 홍보의 장이 절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기록물은 절대 사람을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 누가 이 유인물을 보고 영리법인병원 설립추진 홍보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꿈 참았다.
공무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임시반상회가 진행되었다. “원래는 방송에서 지사님 연설을 하고 있어 TV시청을 해야 하는데 여기는 TV가 없어서 그것은 생략하겠다” “영리병원 설립 허용의 장점과 단점은 유인물을 읽어보시면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급하게 오느라고 사실 내용을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제주도에 8개의 영리법인병원이 있고, 다른 지역에서도 영리법인병원 허용을 요구하고있다” “반상회에서 나온 의견은 동사무소를 거쳐 제주도에 전달될 예정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겠다” 공무원의 모두 발언이 끝난 후 주민들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우선 제주도에 영리법인병원이 있다는 공무원의 말에 대한 반박한다. 모 주민 “어떻게 제주도에 영리법인병원이 있습니까? 제주도에도 그렇고 전국적으로 아직 영리법인병원은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영리법인병원이 시작되면 다른 병원으로 전파될 텐데 제주도가 이걸 추진하는 이유가 멉니까?”
또 다른 모 주민 “아까 말씀하시면서 저희 제주도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저희 제주도입니까? 우리 제주도라 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도청이 제주도를 자신들 거라고 여기니까 막 밀어붙이는 거라고 봅니다” 등골이 싸했다.
주민들이 발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모 주민이 “반대의견 하는 사람도 와서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공무원은 “의견을 들어서 반영하겠다”고 답변한다. 또 다른 모 주민은 “도의 입장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오신 공무원이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답답합니다”라고도 한다.
모 주민 또 “여기 오신 분 중에 식코라는 영화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면 높은 의료비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도에 허용되기 시작하면 다른 병원도 요구할 겁니다. 의료 공공성만은 지켜야 합니다”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또 다른 모 주민 “우리가 언제 물을 사먹으리라 생각 했겠습니까. 물을 팔기 시작하고 시장화 하면서 지금은 모두 물을 사먹고 있지 않습니까.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순간 의료비는 비싸질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걸 왜 합니까. 의료보험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나도 여당을 찍었던 사람입니다만 이건 진짜 아닙니다.”
자신이 병원과 관련된 곳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주민이 나선다. “사실 지금 너무 포괄적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영리법인병원의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 의료보험 보장성이 너무 낮습니다.”는 등등의 얘기를 했다.
이어지는 주민의 발언
“도민들이 영리법인병원이 뭔지 얼마나 알고 있겠느냐. 의료보험 보장성을 높여서 없는 사람들 혜택을 늘려야지 의료비가 인상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
“제주도에서 영리법인병원 물꼬를 터 줄 수 없다. 아마 이 정책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의료보험은 최소한의 울타리다. 이건 절대 허물어서는 안된다.”
“우린 재벌이 아니다. 영리법인병원은 돈 없는 사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이때 한 주민이 공무원에게 질문한다. “말 들어 보니까 서민들한테는 이익이 안 될 것 같은데 제주도는 무사 허젠 햄쑤과(왜 하려고 하나요?)” 공무원은 “투자활성화, 의료관광이 주된 이유다”라고 간략하게 말한다.
그 주민은 공무원의 답변에 “영리법인병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투자유치를 고민해야 한다. 관광, 농산물을 이용한 것 등 제주도를 위한 투자유치에 더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건 쉬운 곳에서부터 물꼬를 트기 위한 정부의 술책이다”
다른 주민은 “유인물에 가스, 물, 전기, 의료보험은 민영화 계획 없음 이라고 나왔지만 믿을 수 없다. 의료는 건강과 생명과 관련된 거다. 낙제 수준인 사람을 제외하고 내외산소(필자는 나중에야 이것이 뭔 말인지 알았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절대 안한다고들 한다.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거다. 지금도 이런데 영리를 허용하고 자본이 개입되는 순간 의료공공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제도는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보니 8시 45분이 되는 시간이다.
드디어 필자도 말할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 발언이다. “주민의 의견을 전달한다고 했으니. 이 말씀은 꼭 전해 주십시오. 이처럼 중차대한 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여론조사 해서 도민이 지사님 물러나라고 하는 의견이 많으면 지사님 물러나실 겁니까? 지금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도 영리법인병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어르신들은 더욱 그럴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 다음 주에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큰일 납니다. 꼭 전해 주십시오.”
다른 주민도 거든다. “인지도 조사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금 유인물은 너무 어렵다. 다음 주에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공청회 등을 거쳐서 차분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다음은 영리법인법인과 의료보험 당연지정제가 상관있는지, 없는지를 가지고 몇 주민이 말씀을 하셨고 필자는 영리법인병원이 법률적으로 허용되면 의료보험당연지정제 제도가 위헌결정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말씀드렸다.
시간은 9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통장님이 마무리를 위해 일어서신다. “이거 이대로 가민 큰일 나큰게(이거 이대로 가면 큰일 나겠다), 여기서 나온 말 분명히 전헙써(여기서 나온 말 분명히 전하라). 보고헌데 허난 보고 헌 내용 보내 주민 홈페이지에도 올리곡 허쿠다(보고한다고 하니 보고한 내용 보내 주면 주민 홈페이지에도 올리겠다)”
이어 “그냥 추진 했당은 촛불 들렁 나삽니다 양(그냥 추진 했다간 촛불 들고 나갑니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그때까지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들으시던 육중한 체격의 남성분이 말문을 열었다. “이 반상회가 도민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을 갖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 요식행위로 여론조사해서 장난치면 아파트 전 주민 서명 받아 지사 퇴진운동 벌이겠다” 필자의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임시반상회는 파장 분위기다. 통장님은 공무원에게 기록한 의견을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공무원은 “노형동은 반상회가 10군데로 잡혔었는데 여기가 추가 된 곳이다. 여기 올 때부터 이곳이 젊은 분들도 많이 살고 해서 의견이 많으리라 예상했다. 나온 의견은 가감 없이 보고 하겠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뜨거웠던 노형동 모 아파트 임시반상회는 막을 내렸다.
사족
1) 필자는 반상회에서 나온 발언의 요지를 전부 기록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주민의 발언은 그 기록을 바탕으로 썼습니다만,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2) 임시 반상회에 참석한 주민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주민의 0.005%도 되지 않는 수입니다. 관심 있어 참석한 주민들조차 영리법인병원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실정입니다. 과연 도민들은 영리법인병원이 뭔지 알고 있을까요? 이런데도 제주도는 다음 주에 도민 여론조사로 이 정책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인지도 조사는 생략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요. 정말 기가 막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