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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소녀와 소년의 미래, 죽음의 일터

[해미의 당장멈춰] 문송면 군의 20주기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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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촛불의 열기로 뜨겁다. 워낙에 막무가내 정권이다 보니 그만큼 이슈도 많다. 명박산성부터 시작해 80년대식으로 진압을 하겠다는 경찰청장도 있고 빨갱이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테러까지 벌이는 보수단체 회원들도 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으로 촛불 정국에 힘을 보태겠다고 하고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민중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관심이 집중되는 2008년 정세의 핵심을, 그리고 향후 5년간의 이명박 정부의 향방을 촛불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문송면 군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기 위해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는 7월 2일은 소위 노동보건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우리나라 노동보건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사건인 문송면 군이 사망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영등포구 양평동의 온도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 군은 16살의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온도계에 있는 수은주를 가는 관으로 끌어올리려고 당시에는 가는 유리관인 수은주를 빨대 삼아 입으로 수은을 들이마셨다고 한다. 수은을 입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다가 수은중독에 걸려 사망하였고 영원히 ‘군’이라는 호칭이 붙을 수밖에 없는 16살의 나이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한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문송면이 존재한다. 한국타이어의 노동자들은 20대부터 10여 명이 과로사로 죽었고, 삼성반도체의 20대 여성 노동자들은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천의 냉동창고에서는 안전장비나 제대로 된 소화 시설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 40명이 불에 타 죽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고, 여수에서는 출입국사무소에 감금되어 있던 이주 노동자 10명이 쇠창살에 갇힌 채 화마 속에서 죽어갔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말헥산이라는 물질에 중독되어 신경손상을 입어 걷지 못하게 되었던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들도 있었고, DMF(디메틸포름아미드)라는 물질 때문에 간 독성이 생겨 간이 망가져 사망한 이주노동자도 있었고, TCE(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물질 때문에 간이 망가지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의 중독증상으로 사망한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여수에서는 건설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얼마 전 두산중공업에서는 지게차에 비정규 노동자가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며칠 전인 6월 27일, 안산에서는 건설 노동자가 철근에 복부를 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작업장에서 죽고 다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 문송면 군처럼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강제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는 없지만 여전히, 그리고 끊임없이 노동자들은 다치고 죽는다. 이 와중에 전직 건설회사 CEO 출신인 이명박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쳐주시고 이 때를 틈타 경총과 같은 자본가 단체는 규제완화라는 미명하에 각종 법과 규제의 개악에 나서고 있다. 건강검진부터 안전교육, 근골격계 예방과 안전조치 및 유해요인관리에 이르기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법안을 통째로 뜯어 고치려고 하고 있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지만 현재의 양태는 분명한 후퇴이다.

촛불을 처음 든 것은 모두들 아는 것처럼 10대 여학생들이었다. 그녀들이 이야기한 것은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되고 급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죽기 싫다’는 것이었다. 20년 전 그녀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문송면은 ‘죽기 싫다’고 외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죽어갔다.

노동자들의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외침은 묘하게도 촛불 소녀들의 ‘죽기 싫다’는 외침과 겹친다. 촛불 소녀들이 진학을 하고 몇 년이 흐른 후 이 땅의 노동자가 되었을 때 그녀들은 광우병 쇠고기만큼이나 무서운 작업장에 있게 된다. 거기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지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잘나가던 증권맨이 경쟁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사무직이 과로사하고, 제조업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발생하고 매일 8명의 노동자들이 죽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지금의 촛불 소녀와 소년들이 갈 일터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닌 FTA 협상 체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면서 국민들의 건강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는 법안을 규제라는 이름으로 완화시키거나,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영리법인화의 문제 등이 모두 그렇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은 우리에게 이를 피해갈 만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모두 급식을 먹어야 하고,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고, 영리 법인화된 병원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정책에 개입을 할 만한 정치조직도 부실한 상황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나 자본에게는 노동자·민중의 안전과 건강보다 경쟁력과 성장이 중요하다. 문송면이 사망한지 20년이 되는 날, 모란공원에 그의 추모비를 세우면서 촛불 소녀와 소년의 20년 후가 걱정되고, 광우병 쇠고기뿐만 아니라 죽음이 넘치는 일터로 내쳐져 위협당할 그들의 삶이 걱정되고 더불어 미안해진다. 언제쯤이 되면 정부나 자본이 우리들의 삶을 경쟁력이나 성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까?
덧붙이는 말

해미 님은 참세상 논설위원이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