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 'K i t s c h'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에서 생긴 말입니다. 그 의미가 점차로 변해 와서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어떤 유(類)의 미적 스타일, 싸구려 예술을 뜻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 훨씬 이상이지요. 그건 어떤 세계관에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고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망각 : 밀란 쿤데라 & 앙트완 드 고드마르 인터뷰>, 김화영 옮김, 계간 문학동네 12호, 1997
1. 촛불 : 2007 vs 2008
2007년 4월 2일.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그 날 저녁, 협상 타결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가 세종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렸다. ‘순수한’ 시민들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소위 ‘~권’ 사람들이었고, 그 역시 많은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협상 타결에 대한 각 계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실어야 하는 언론사들의 카메라는 전 날 있었던 밤샘 집회 때보다 더 많이 등장했다. 방송국에서 들고 나온 조명들이 워낙 많아서 그 자리는 대낮처럼 밝았다.
우리를 비추는 방송국 카메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자는 사람들에게 나눠준 피켓으로 카드 섹션을 하자고 요구했다. 지금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으니, 방송에 내보내야 된다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제2의 한일합방”이라며 분노했지만, 아무런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던 카드섹션을 도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욕구를 채운 카메라들은 ‘(기계적)중립을 지킨 편집’을 위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사람들도 날이 너무 춥다며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2008년 5월 2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최초의 촛불은 청소년들이 들었다. 그들은 “제2의 한일합방”과 같은 거창한 은유 대신에 “나는 저런 거 먹을 수 없다!”라는 원초적인 구호를 외치고 나왔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토론을 한다. 부랴부랴 대책위가 꾸려져서 중앙무대를 만들고 그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 했더니 도리어 욕만 먹는다.
“우리는 지금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들으러 온 게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나온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촛불 집회가 어른들까지 불러 모으면서 규모가 커졌고, 청소년들이 거부했던 중앙 무대가 등장했다. 촛불이 방송국 카메라에 담기 좋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자족하는 듯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촛불이 그런 ‘감상적인 통속물이나 저급예술’ 따위로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듯싶다. 결국 5월 24일, 촛불은 청계광장을 둘러싼 폴리스 라인을 뛰어넘어 길거리로 나갔다.
2. 날(生)스러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날(生)스러움’ 그 자체였다. 광화문으로도 가고, 신촌으로도 가고, 동대문으로도 가고, 서울의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오죽하면 정보과 형사들이 면식 있는 활동가들에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고 물어보고 다녔을까. 돌아다니면서 하는 행동들도 다양하고, 급작스럽기 그지없었다. 누가 보든 말든 사방팔방에서 온갖 퍼포먼스들(퍼포먼스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일 경우도 많았다!)이 펼쳐지고,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구호들이 넘쳐났다.
누구나 예상가능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화면에만 익숙한 방송국 카메라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도 없었고, 담기도 힘들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가 후렴인 노래를 어느 방송이 생중계로 내보내겠는가? 어느 인내심 강한 방송이 광화문에서 동대문, 심지어 여의도와 강남까지 달려가는 행진을 담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이제 방학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부연설명 없이 내보낼 수 있는 방송이 있을까? 편집과 연출이 불가능한 날스러운 거리에 가장 적합한 것은 가장 날스러운 정보 유통 창구인 인터넷뿐이었다.
인터넷 대역폭의 확대와 무선 인터넷의 상용화라는 기술적 발전도 중요한 이유였겠으나, 거리의 날스러움이 인터넷 현장 생중계를 불러오고 확산시킨 가장 큰 동력이었다.
3. 그래서 어설픔
날스러움을 담기에 인터넷 현장 생중계의 내용 또한 당연히 날스러웠다. 거리의 상황에 따라 화면은 멈춰있기도 하고, 정신없이 흔들리기도 한다. 리포터들은 방송국 기자들처럼 말끔한 모습에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지도 않았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도 않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분노하며 흥겨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말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설프다보니 부담이 없다. 그래서 인터넷 현장 생중계에서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리포터의 배경으로 머무는 모습 따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생중계 하는 사람들을 여기로 와라, 저기로 가라 한다.
전북에서 올라온 한 초등학생은 나의 등을 툭툭 치더니 인터뷰 하고 싶다고 한다. 외국인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리포터의 영어 실력이 “아륀지”는커녕 “오렌지”도 아닌, “오란게”다. 난처해하고 있던 차, 옆에 있던 분이 흔쾌히 통역을 해준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무리의 대학생 근처로 갔더니, ‘현장 생중계’라 쓰인 노트북을 보고 또 한 번 노래를 불러준다. 심지어 전경들도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진압 과정에서 같은 부대에 있는 사람이 다쳤다면서 피 뭍은 전투모를 보여주며 꼭 찍어달라고 그런다. 그러자 갑자기 한 시민이 달려와서 자기 머리의 상처가 누구 때문이냐면서 자신도 찍어달라고 한다.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요구들이 쏟아진다. 리포터가 조금 숨이라도 돌릴라 치면, 게시판에는 지금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댓글이 금세 올라온다. 인터뷰 내용에 대한 비판 또는 지지의 의견도 올라오고, 카메라가 놓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알려주기도 한다.
나아가 오프라인의 상황을 뒤바꾸기도 한다. 지난 6월 10일, ‘명박 산성’ 앞에서 벌어졌던 스티로폼 논쟁이 바로 그 것이다. 컨테이너에 올라섬으로써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려 했던 시도들까지 날스러운 인터넷에서는 ‘통제’로 읽히면서, 이 날 인권 활동가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3. 그러다보니 적나라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탄핵반대를 외쳤던 촛불을 보면서, 그 촛불들이 언젠가 자신을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저렇게 수준 높은 시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려면 앞으로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는 촛불이 단지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으로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던 것일까?
지금 촛불은 자신을 싸구려 예술품, 즉 ‘키치(Kitch)’로 만들어버리는 모든 시각과 시도를 벗어나고 있다. 2002년, 2003년을 거치면서 우리의 기억력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적 이미지를 거부하며 그 화폭을 찢고 나와서, 온갖 적나라한 질문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그림을 찢어 헌법 제1조를 끄집어냈고, 깨끗하고 조용한 밤거리 풍경에서 집시법을 들추어냈다. 뿐인가, 촛불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멈추질 않는다. 청계광장이라는 근사한 그림을 찢고 길거리로 나왔고, 남성들만 끄는 밧줄의 이미지를 찢어 여성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앞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상상력을 통한 역사의 진보를 외쳤던 것마저도 ‘좌파의 키치’일 뿐이라며 되묻는다.
대의민주주의와 그것을 수호하는 질서에 대한 신뢰를 사람들이 거두었기에 대의제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기존의 미디어는 할 말이 없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제도를 위해 복무해왔던 미디어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의 연출과 편집이 구축했던 대의제적 키치 왕국을 공격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로 대표되는 대의제에 대한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권’들의 집회에서도 좀체 볼 수 없었던 조·중·동에 대한 여과되지 않은 분노와 그 분노에 대한 당당함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어떤 미디어도 2007년처럼 감히 촛불에게 “카드섹션, 한 번 더!”를 외치지 못 한다.
인터넷 현장 생중계가 걸치고 있는 두 공간 즉, 거리와 인터넷의 날스러움은 모두가 공감하고 당연히 예상되는 것, 그래서 대답은 미리 주어져 있고, 새로운 질문이 배재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키치의 배제와 날 것에 대한 신뢰. 툭하면 중계가 끊기고, 화질도 좋지 않은 인터넷 현장 생중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뜰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홍지(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6월3일, 6월 7일 민중언론 참세상의 촛불시위 생중계 1일 현장 리포터로 활동하였습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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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웹진 액트온 10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