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8년부터 2년간 의경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약 3년간의 학생운동을 하다가 의경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전경은 육군지원자 중 차출이고, 의경은 지원이다) IMF사태로 인해 시급히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던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운동권 학생이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겪어야했던 당시의 고통을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왜 전의경제도가 인간을 황폐화 시키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한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의경으로 복무하면서 집회현장에서 어제까지 함께였던 선후배, 동기들을 진압하는 입장에 처할 때마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나는 나름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있다고. 그러나 그렇게라도 자위하고 싶었던 나를 무너트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필자가 복무했던 곳은 서울시내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경찰서 소속 방범순찰대였는데 하루는, 관내 부유한 아파트 단지에 출동을 나가게 되었다. 이유인 즉, 아파트 단지 내 경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데 주민들이 몰려와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기에 보호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호하는 출동을 나가는 터라 어느 때보다 설레 였던 나는 이내 지휘관의 지시를 듣고 경악에 빠지고 말았다. “적당히 막다가 뚫려줘”,“주민들 몸에 상처하나 나지 않게 그냥 맞고 있어.” 노동자들 집회 나갈 때는 뚫리면 잠을 안 재우겠다는 둥, 다치지 말고 몰래몰래 시위대를 까라고 명령하던 지휘관과 고참 들이 그날은 상반된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위대에게 조롱을 당하면서(심지어 어떤 주민은 민주화 운동 경력까지 자랑하였다) 몇 대 맞다가 일부러 뚫려줘야 했던 나는 주민들이 파업하고 있던 늙은 경비노동자들을 끌어내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는 평소와 달리 간식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제공한 고급 빵이 나왔다. 주위 동료들이 너무나 맛있게 그 빵을 먹고 있을 때 난 배가 고팠음에도 도저히 그 빵을 먹을 수가 없어서 몰래 버리면서 눈물이 났다. 법질서를 수호하는 경찰? 나의 존재란 정권과 가진 자들만을 보호하는 소모품이라는 것을 그날 확실히 깨달았다.
구타, 가혹행위, 자살 그리고 외박
전의경 부대 내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매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통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시위진압까지 수행해야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리 부대의 경우, 낮에 시위진압을 갔다가 밤에 경찰서로 돌아가 각 파출소로 방범근무까지 소화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소위 ‘점호’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숙식제공에 용돈까지 주는 이유가 시위진압 잘 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보니 짧은 점호시간에 우리의 존재의의를 각인시켜주는 방법은 시간이 걸리는 기합보다는 구타가 빠르고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가? 때릴 시간조차 없으면 근무 나가거나 취침시간에 따로불러서 존재의의를 끊임없이 각인시켜줘야만 했다. 근본적으로 전의경제도 자체가 시위진압하라고 만든 부대이니 아무리 구타금지와 인권보호를 말해봤자 결국 전의경 부대의 존재의의 앞에서는 부대원 개개인의 인권은 고려대상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휘관들이나 경찰청은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정기적으로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그러나 전의경들은 정말 절박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2달에 한번꼴로 주어지는 2박3일간의 외박은 유일한 낙이기 때문이다. 육군에 비해서 자주 주어지는 외박 특혜는 전의경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당근이자 통제를 가능케 하는 채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부대에서 구타사고가 밝혀지면 그 부대는 연좌책임을 물어 한꺼번에 외박이 정지된다. 설령 어떤 부대원이 심한 가혹행위를 당하더라도 하루하루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설렘에 버텨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의 인권침해를 신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폭력은 계속해서 은폐되고 악습은 지속한다.
거기에 더해 잠시 거쳐 가는 근무지중의 하나로 여기는 경찰직원들은 자기가 소대장이나 부관으로 있을 때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기만을 원하기 때문에, 전의경들의 인권침해는 구조적으로 은폐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통 시위상황 대응 시, 각 경찰서 서장이나 과장들이 3~4개 중대로 이뤄진 타격대의 책임을 맡아 병력을 통제하게 된다. 평소와 달리 훈련된 부대의 통제권을 가진 경찰관들 입장에서는 뭔가 보여주거나 뭔가 해보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그러다보니 아침 일찍부터 부대를 출동시켜놓고 필요이상으로 병력을 배치하며 진압 시에도 필요 이상으로 작전을 짜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타격대와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경쟁심도 작용하며 각 중대의 중대장들 역시, 이 기회에 능력 있는 지휘관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런 비합리적인 부대 운용에 대해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전의경제도가 운용되면서 구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권침해의 악습들이 지속되어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전의경들은 최악의 경우,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육군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통계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 참세상 자료사진 |
더 이상 전의경 제도는 유지되어서 안 된다
한국정부는 지난 2006년 초대 인권이사회 선거와 올해 인권이사회 선거에서 ILO 105조 강제노동금지 조약 가입 및 비준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제노동기구 핵심 조약중의 하나인 강제노동금지 조약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 조약으로 여기에 한국이 가입해 있지 않은 것은 세계적인 수치이다.
한국이 여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군 복무대신에 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전의경제도와 공익근무요원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국내외에서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인해 2012년까지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기로 하였으나 최근 촛불시위대에 대한 폭력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은 여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바 있다.
인권활동가가 아닌 의경 복무자로서 진심으로 어청수 청장에게 말하고 싶다. 군 복무중의 하나로 택한 젊은이들을 정권 유지의 소모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상상도 하기 힘든 인권침해를 참아야 하는지 당신은 아느냐고 말이다.
국민을 적으로 삼고 뙤약볕 아래에서 무거운 진압 복을 입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 부대가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어울리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당신이야 가끔씩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몇 푼 던져주면 끝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방패를 들고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그들에게서 하루하루는 전쟁이며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는 승리와 패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폭력경찰이란 매도 속에 황폐해져 가는 마음이며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보다 더 무서운 부대내의 구조적 폭력이다. 진심으로 어청수 청장 당신이 전의경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옳으며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그들을 앞으로 내세우지 말고 당신이 진압 복을 입고 직접 나서라.
전의경은 적이 아니다. 맞다. 그러나 전의경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면서 죄의식 하나 가지지 않는 당신들은 양심과 인권의 적이다. 더 이상 전의경 제도는 유지되어서 안 된다. 하루빨리 이 비극적인 젊은이들을 양산하는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