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망언이 의미하는 바
이런 이데올로기 지형이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시위대 내부를 향한 것이기에 말실수로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7일 경남 양산에서 열린 노사모 총회에서 “쇠고기 협상이 아무리 잘못됐다 하더라도 정권 퇴진 요구는 우리 헌정질서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했고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진출 시도는 별 소득 없을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미래의 나를 향해 투쟁하지 말라?!
앞의 발언 요지는 투쟁의 방향이 정권퇴진으로 가는 것에 대한 ‘동일한 이익지반’을 갖고 있는 보수정치세력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의 표현이겠지요. 이 발언을 들으며 1830년의 프랑스 7월 혁명 당시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들이 혁명이 부르주아 계급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보수적 부르주아만을 공격하라는 게 1830년 혁명의 결과물의 수혜를 받았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의 태도였지요.
혁명이 일어나기 전, 샤를 10세로 대변되던 부르봉왕조는 자유주의부르주아를 견제하기 위해 ‘의회 해산, 선거자격 제한, 언론출판의 통제’등을 했지요. 그래서 소부르주아와 노동자 농민이 함께 거세게 저항해 루이필립 왕을 세웠지만 산업혁명과 부르주아의 성장만 보장하고 노동자 농민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1848년 노동자와 농민들이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내세운 투쟁인 2월 혁명이 일어나던 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을 비롯한 보수정치세력들은 대중들의 공격이 ‘여당을 넘어 야당까지’ 공격하게 될까봐 두려운 거겠지요. 얼마 전 광우병 대책위가 6·10이후 정권퇴진으로 가야하지 않겠냐는 강한 의지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한 우려일 것입니다.
또한 6·4 보궐선거에서 촛불시위의 수혜를 그냥 힘도 들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먹은 사람으로서의 태도이겠지요. 민주당이 수혜를 본 이유는 한나라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자 보궐선거에 진보세력이 아직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보궐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제가 아는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은 투표하러 갔는데 투표할만한 사람(당)이 없어 그냥 투표도 하지 못하고 왔다고도 했으니까요.
투쟁방식으로 인한 비난은 받지 않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 발언의 핵심은 투쟁 방식이 과격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 시위의 혜택을 받고 있는 보수정치 세력들이지만 촛불 시위에 대한 비난은 받고 싶지 않다는 태도이기도 하지요. 물론 촛불시위대의 투쟁방식을 논의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 동의를 얻고 있는 이 싸움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투쟁 방식을 보수정치세력들이 이용만 하려는 태도에 대해 우리의 주체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쟁방식은 시위대가 거리에 나설 때처럼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하여야 합니다.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시위대가 원하는 것은 청와대가 아니라 ‘시위대를 광화문에 묶어두려는 정부와 경찰에 대한 항의’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원하는 곳에서 시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집회를 할 자유’를 시위대는 요구하는 것이지요.
대중적 공감대를 유지하고 이 흐름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 이게 우리의 과제이니까요.
주체의 확장과 의제의 확장
6·10 이후의 투쟁방향을 어디로 이끄느냐에 따라 투쟁의 성과가 어디로 귀결되는지가 결정되겠지요.
9일 화물연대는 총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13일 총파업을 결의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상반기 투쟁이 있을 겁니다. 오늘 투쟁에 결합하기 위한 6·10 총회투쟁을 시작으로 민주노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유가, 공공부문 개혁’ 등과 관련해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발표에 벌써부터 경영자총협회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경영계는 작년의 ‘정치파업은 불법이다’라는 논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요. 하지만 정치와 정책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게 사실인데 어떻게 노동자들의 싸움이 정치적 이슈에 무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민주노총의 이러한 결의가 현실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노동자들이 임단협 투쟁에만 매몰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좋은 경우의 수라면 현재의 이슈들, 쇠고기 수입을 넘어 수돗물 민영화, 유가인상 등 민생경제, 공기업 민영화 저지, 의료민영화 등의 싸움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싸움과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는 민영화로 대표되는 정책으로 서민들의 사회적 권리가 의료와 물의 영역에서 그리고 교육의 영역에서 빼앗기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의제의 확장은 단지 정권퇴진으로 수렴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입장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민영화로 인한 사회적 권리 침해를 우리는 거부한다’처럼요.
그리고 나아가 열린 정치의 공간을 우리의 내용으로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차별금지법 등의 이슈도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판으로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촛불시위의 방향도 중요하지만 촛불시위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냐도 중요하니까요.
사회권 확보를 위한 시민적 권리 쟁취를 목표로 하자
앞서도 말했듯이 시민들의 사회적 권리는 여러 곳에서 빼앗기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물 민영화를 하자 수돗물이 폭등하여 생활을 영위할 수조차 없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사회적 권리를 빼앗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행정부, 입법부를 소환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앉아서 권리침해를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요. 물론 헌법에는 국민소환제가 명시되지 않았을 뿐더러 국민소환제를 특별법으로 제정한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이 자기에게 화살이 꽂힐 수 있는 법을 제정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국민소환제를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거세어진다면 이명박으로서는 재신임에 대한 압박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촛불시위에 나온 온 국민이 인지한 대표적 악법인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을 집회시위를 보장하는 법으로 바꾸어내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물론 이것만이 목표는 아니며 그 외에도 우리가 쟁취해야 할 시민적 권리를 논의하며 함께 만들어 가야겠지요.
거리정치를 유지하는 게 힘이다
정기국회가 열리면 거리정치를 마감하고 의회공간으로 이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보수정치세력을 비롯한 일부 세력들은 야당은 의회의 장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의회공간은 한나라당의 입지가 높을 뿐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담아내기 어렵기에 이러한 움직임을 최대한 막아내는 게 필요합니다. 의회공간에서 다루어질 의제들을 보수 세력들이 함부로 다룰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게 거리정치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대안이 없다고 싸움을 멈출 것인가
많은 분들이 언제까지 거리에서 촛불을 들거냐고 묻습니다. 대안을 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데 우리의 싸움을 ‘대안이 없다’라는 이유만으로 멈출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지도부가 없이 잘 싸웠듯이 지금 바로 정답을 낼 수 없지만 우리는 시위대 내부의 소통을 통해 해결방향을 만들고 투쟁방향을 만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시위대를 향해서 말합니다. “조금 힘들지만, 그래서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촛불을 내리지 말자”고.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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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