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욱더 차분히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원칙이 있다. 첫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지난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나 사회의 경험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광우병이 공식적으로 발생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알 수 없는” 현실이며 이 알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대비는 막연한 확률이나 가능성의 논리는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이 정도로 적기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의 최저수준의 안전기준을 따라 쇠고기를 수입하면 된다’라는 식의 논의는 그 기저에 확률에 따라 ‘몇 명의 사람들은 광우병에 걸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저명한 광우병 전문가인 카네코 키요토시 박사가 이미 말한 것처럼 국민을 단 한 명이라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서는 확률론은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둘째, 이처럼 막연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대비는 더욱더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전예방원칙은 매우 중요하게 가슴에 품어야할 원칙 중에 하나이다. 광우병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82년 이후로 아직까지도 걸음마 수준이다. 치료법은 물론 병원체의 속성에 대해서도 모두 파악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한 위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요소들을 예방적 차원에서 차단하는 것만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 될 뿐 아니라 질병발생으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간략히 논의하면서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유럽연합은 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가?
- 무역 분쟁 패소에도 식품정책 완화하지 않는 유럽연합
1985년을 전후로 영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발생하고 영국산 쇠고기 수출이 완전히 금지되면서 영국은 물론 전 유럽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왜 유럽은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미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여 자국의 쇠고기 수요를 충족시키지 않았을까? 오히려 1989년에 유럽연합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대규모 무역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대서양을 마주한 이 무역 분쟁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영국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영국과 자국의 소들을 모두 폐기하는 상황에서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오히려 수입을 전면금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렸을까?
유럽에서는 축산업 분야에서 6가지 종류의 호르몬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즉, 에스트라디올, 프로제스테론, 테스토스테론 등 세 가지 천연 호르몬과 제라놀(에스트로젠), 아세트산염 트렌볼론(일종의 스테로이드) 그리고 아세트산염 멜렌제스트롤(프로제스틴)의 3가지 합성호르몬의 사용금지이다.
문제는 소의 성장을 촉진하려고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이들 호르몬을 투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연합의 과학자들은 이들 성장호르몬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무역 분쟁은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로 이어지면서 더욱 악화되었으며 세계무역기구는 성장호르몬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유럽연합의 입장이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유럽연합은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해 미국 뉴욕의 로체스터 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호르몬 처리된 쇠고기를 먹은 산모가 낳은 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거나 적게 먹은 산모가 낳은 남자보다 정자 수가 적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다시 성장호르몬을 사용한 쇠고기의 위험성이 부각된 바 있다.
유럽연합의 성장호르몬 처리된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 때문에 미국이 받는 피해액은 연간 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연합의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려고 비호르몬 처리된 소 사육 프로그램 (Non-hormone Treated Cattle Programme)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으로 수출되는 쇠고기에 대한 성장호르몬 투여금지, 소의 출생과 도축까지 모든 과정에 대한 증명서 제출, 연방정부의 유럽수출용 소고기에 대한 도축 및 가공과정 감독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05년 현재 미국 내에서 오직 세 곳의 도축장이 유럽연합 수출용 소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은 광우병 파동을 통해서 너무나 큰 교훈을 얻었다. 자국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한 식품정책은 세계 어느 곳보다 강화되었으며 결국 무역 분쟁에서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식품정책완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유럽연합국가들의 보호주의적 무역의 속성과 오랜 전통은 성장호르몬 쇠고기 무역분쟁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배울 점은 자명하다.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최대한의 노력은 아무리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다.
과학의 절대적 객관성에 대한 뜨거운 열망
지난 5월을 뜨겁게 달군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과 관련된 논란은 모두 과학적 근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무역대표인 수잔 슈워브부터 우리 정부의 농림부 장관, 그리고 심지어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사실 관계나 과학에 대해 좀 더 배우기를 희망한다”라는 명대사를 쏟아내고 말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과학에 근거한 것이며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조용히 자신의 실험실에서 국민에게는 생경한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연구하던 한 교수님의 논문이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광우병의 과학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가? 광우병에 대한 대부분 실험연구는 실험용 쥐와 침팬지를 이용한 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 (prion) 단백질이 정말 병원체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광우병의 원인물질을 프리온으로 너무 이르게 단정 지음으로써 오히려 광우병 병원체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객관성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과학적 실험으로부터 얻어진 결과도 연구자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며 전혀 상반된 해석이 나타나게 된다. 즉, 과학의 객관성은 가변적이며 종교적인 권위처럼 기능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광우병 문제에서 언급되고 있는 과학적 증거에 대한 논의는 결국 과학적 해석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현재 광우병 파동에서 “과학”은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위 “30개월령”의 과학적 근거도 절대적 객관성이 될 수 없다. 국제수역사무국은 30개월 미만의 소는 마치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영국에서 20개월령 소의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을 발견하였으며 일본에서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미국에 대해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는 근거로 제출하였다.
즉, 광우병 발생가능성의 기준이 되고 있는 “30개월령”의 기준은 과학적으로 절대적인 객관성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지금 시점에서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해석과 합의로 이루어진 기준이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예는 소위 “특정위험물질 (SRM)"에서도 발견된다.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에 따라 소의 두개골, 뇌, 척수, 창자, 장간막, 편도와 회장 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적인 과학적 기준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척추와 연결된 갈비뼈를 단순히 갈비뼈가 위험물질로 볼 것인가 또는 회장 끝 2미터와 연결된 내장을 위험물질로 볼 것인가는 각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게 적용된다.
유럽연합의 경우 국제수역사무국이 규정하고 있는 특정위험물질과 연결되거나 접하는 기관도 위험물질로 취급되고 있다. 결국, 유럽연합의 과학적인 기준에서 보면 한국에 수입될 일부 미국산 쇠고기는 특정위험물질이 되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의 객관성은 그 해석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합의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일 뿐 애초 절대적으로 객관성을 담보 할 수 없다. 과학적 객관성은 항상 그를 둘러싼 상황과 사회적 배경과 결합될 수밖에 없다.
한때 광우병의 병원체는 프리온이 아닌 슬로우 바이러스 (Slow Virus)라고 불렸다. 그리고 1982년 미국의 신경학자인 스탠리 프루지너 교수가 프리온 이론을 발표했을 때 과학자 사회에서는 그저 괴담으로 취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1997년에 그는 노벨의학상을 받게 되고 프리온 이론은 광우병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 되었다. 괴담취급을 받던 프리온 이론이 최신 분자생물학적 연구방법과 유전공학적 방법과 결합하면서 좀 더 강력한 설명력을 갖게 되면서 과학자 사회는 점차 바이러스 이론에서 프리온 단백질 이론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아마 최근 5년 동안 세계적인 과학지에 실린 광우병 관련 연구논문들 대부분은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광우병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광우병은 프리온질환 또는 전염성 해면성뇌증 (TSEs)의 하나이다”. 이를 다시 읽어보면 “광우병은 아직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지속하고 있는 질병이다. 그리고 광우병은 프리온 질환으로 취급하는 과학자들도 있으며 전염성 해면성 뇌증이라고 취급하는 학자들이 있다”로 해석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절대적인 열망은 오히려 그 객관성의 이름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한국에 살고 있는 시민 중 한 사람이라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면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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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2003년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 과학학 연구소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에서 최대규모의 의사학 연구소인 런던대학교 (Uiversity College London)의 웰컴 트러스트 의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우병과 연관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위해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의 화학공학과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우병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연구인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From Scrapie to Prion" (Routledge, 2007)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를 다룬 ”광우병 논쟁“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