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특공대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인도로 뛰어들어 다짜고짜 곤봉으로 사람들을 후려패는 폭력으로 시작한 광주항쟁처럼, 경찰특공대는 대검이 아니라 끝이 뾰족한 방패로도 충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피가 흥건한 수건, 방패에 맞아 피흘리는 얼굴, 쓰러진 여학생을 짓이기고 다시 후려친 군홧발, 눈과 귀를 멀게 한 물대포, 경찰차에서 무고한 시민을 밀어 떨어뜨리는 만행 등, 대검과 총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경찰의 폭력은 경찰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마디로 ‘인산인해’, 그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프라자 호텔 앞, 공장 건너 편 덕수궁까지 무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은 광장을 대중적인 저항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준비를 하며 인산인해로 모여 들었다. 2008년 5월 31일 오후 8시 반, “청와대까지 가시겠습니까?”라는 구호에 맞춰 대중들은 주저 없이 평화의 촛불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5차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중들은 스스로를 대중지성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디카, 노트북, 핸드폰으로 무장한 대중들은 한마디로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디지털 게릴라였다. 지난 시절 전두환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도 ‘독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던 대중들은 이명박 정권 앞에 무릎을 꿇기는커녕 이명박 정권을 국민들의 주권 아래 굴복시키기 위해 ‘평화’를 외치며 청와대로 나아갔다.
▲ 지난 5월 31일 밤 부터 6월 1일 새벽까지 삼청터널 입구/ 참세상 자료사진 |
87년 6월, 얼굴에 두건을 쓰고 준엄한 거리투쟁을 벌였던 바로 그 한국은행 앞 분수대를 지나치며 대중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적인 경찰국가에 저항하고자 ‘스스로’,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호헌철폐를 외치다 쏟아지는 최루탄, 지랄탄을 피해 대학생들이 한국은행, 신세계 백화점 주변 골목들로 피신하던 그 곳을 말 그대로 ‘대중 일반’이 장악했다. 대학생, 고등학생, 어린아이,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엄마, 유모차,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플래카드를 온 몸에 두르고 촛불을 휘저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날랜 몸집을 보이던 여자, 그리고 그 옆에 진지한 표정이면서도 흐뭇해하는 남편, 중절모에 약간은 구부정한 모습이지만 꿋꿋하게 같이 행진하던 노인네들, 구호는 외치지 않고 양 손 호주머니에 낀 채 걸어가던 두 명의 공무원 같던 중년 남자, 2002년 월드컵의 추억 냄새 아련한 붉은 악마의 도깨비 불, 태극기를 펼치고 행진하던 아고라 회원들.... 대중들의 시위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거대한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대중들은 거리와 골목길을 온 몸으로 밀어버리는 도시의 뱀들이었다. 대중들은 배후 운운하는 이명박 정권, 조중동, 한나라당의 코를 시원하게 뭉개버렸다. 대중지성답게 촛불시위의 배후가 이명박 정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게 쓰레기같은 미국산 쇠고기는 절대 먹일 수 없다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욕망에서 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대중들은 드디어 청계광장, 시청 앞 광장을 일제시대의 만민공동회로, 정치의 장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민주주의가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주 올 때까지 민주 외쳐라”를 부를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 것일까? 신자유주의가 뭔지, 경찰국가가 뭔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뭔지 몰라도 대중들은 이미 두 달이 다 되도록 청계광장에서 알찬 학습을 해 왔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무슨 파국을 일으킬 것인지, 0교시 자율화가 피말리는 경쟁을 야기하고, 물과 전기 민영화가 서민들의 삶을 어떻게 괴롭힐 것인지, 광우병 쇠고기가 뭔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다 학습한 터이기도 했다.
국민들이 뭘 몰라 불안해한다는 이명박 정권의 말이 말짱 거짓말이자 꼼수라는 것을 대중들은 이미 다 줄줄이 꿰고 있었다. 두꺼운 사회과학 책을 읽지 않았어도 대중들은 알아서 시위를 조직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았으며 스스로 자원봉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해한 법전의 내용은 다 몰라도 그 핵심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하면서도 핵심적인 조항을 알고, 광장에 모일 때마다 기꺼이 즐겁게 노래 부르던 대중들은 탄핵, 국민소환제, 고시무효 소송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모여든 소울드레서 등 각종 카페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모금했고 그 돈으로 광고를 날렸다. 이명박 정권이 2MB라면 대중들은 그것의 수만 배, 수십만 배가 되는 기가바이트, 페타바이트였던 것이다.
인원수를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무수하게 이곳 저곳에서 몰려든 대중들은 을지로 1가 지하철역, 종각역을 지나면서 축제분위기에 들떴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대학로에서 ‘크라잉 넛’의 노래를 듣고 몸을 흔들어대던 광장의 축제 분위기, 2002년 붉은 악마의 향수에 젖던 분위기는 안국역에 가까워지며 대중저항적인 분위기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이명박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협상 무효, 고시 철회’ 구호 옆에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가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이기주의가 어느새 반정부 투쟁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청계 광장이든 시청 광장이든 광장의 체험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양가적이다. 광장 안에는 축제와 혁명이 공존한다. 촛불, 노래, 구호, 춤으로 한껏 들뜬 축제는 혁명적인 저항의 분위기로 치닫기도 한다. 카니발이 혁명으로 전환되는 예는 실제 역사에 존재한다. 1580년 프랑스 동부 로망에서 벌어진 페스티발은 무장충돌과 대량살상의 투쟁으로 변했다. 물론 5·31을 달군 축제 분위기가 바로 전통적인 의미의 혁명으로 직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광장에서 대중들이 배운 학습 효과는 그러한 혁명적인 분위기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스스로 정치학습을 한다는 생각이야 안했겠지만 광장에 모여 이루어진 대중들의 자유발언은 이미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학습이자 정치학습이었고 광장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광장에서 몸으로 느낀 축제분위기와 자발적인 정치학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광장에서, 거리에서 뭉실뭉실 커갔던 연대와 공동체의 정신이다.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강부자·고소영과 달리 대중들은 차량으로 넘쳐난 거리를 점령한 데서 해방감만을 느끼고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따뜻한 차와 빵이나 김밥을 바리바리 싸갖고 오거나, 예비군복 차림으로 스크럼을 짜, 서로를 보호해주는 배려의 정신을 본능적으로 실천했다. 100일 만에 도덕적인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이명박 정권과 달리 대중들은 100일은 커녕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이 엄청난 학습을 해 왔고 그 효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마침내 도덕적인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경찰 폭력으로 훼손시켰지만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인 이기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기주의가 이타주의와 소통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라는 지식을 넘어, 이윤보다 생명이 왜 중요한지, 나만이 아니라 너도 중요하다는 연대와 평등의 정신을 대중들은 지금 ‘광장’에서 진지하고도 광범위하게 배워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대중들의 저항적인 분위기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국면 - 의료보험 민영화, 물가, 물·전기·가스 사유화, 유전자조작 옥수수, 한반도 대운하 등 - 과 맞물려 사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가격하는 물대포, 무자비하게 시민들의 얼굴과 몸을 후려패는 방패의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새벽녘 동이 트도록 사그러들 줄 모르던 5·31 대중항쟁의 붉은 기운을, 떠오르는 아침 붉은 태양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바톤 터치하고 있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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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교수로, 참세상 논설위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