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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6월 첫날, 동생에게서 온 문자

[기고] "말로 다 안 나오지만 역사가 증명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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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서 온 문자

“열심히 해. 맘으룬 그 인원이면 최소한 청와대 앞까지 했는데 역시나 특공대까지...쭉 봐왔는데 심해서 연락한 거야. 더 많을꺼 아냐 다친 사람. 사실 말로 다 안 나오지만..역사가 증명하잖아...뭐 알겠지만..난 잘 모르니깐...다치지 말구 힘내. 관심없어 상식도 모르는 내 눈에 이 정도면 위험하다 싶어서. 연행과 부상자 숫자는 무의미하잖아. 여전한 헛소리만 할테고. 안 다치게 조심해.”

“글구 영상기술발전 때문에 한 몫하는 게 UCC. 더 계획적으로 기록하면 좋을 꺼 같아. 의도적으로라도 더 심한 것들을 현장에서, 전국적으로, 기록한다면 지금 움직임에 더 힘이 될 듯. 미디어는 어차피 꺼리만 있다면 어느 선까진 몰리니깐. 누난 뭐 더 심한 것들 더 많이 봐왔겠지만 이번껀 규모가 다르니깐 작은 거라도 확실히 물을 순 있을 꺼 같은 생각.“

동생은 돈쓰기 좋아하고 멋 부리기 좋아하며, 최신 핸드폰과 최신 영화에 빠삭한, 전형적인 보통 젊은이이다. 동생과 나는 어릴 때부터 퍽이나 많이 싸웠고,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싸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챙겨주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내 동생에게서 문득 전화가 왔다. 누나도 요즘 촛불집회 나가냐고. 응, 나가는데, 짧게 대답을 했더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데모질 인생 몇 년 동안 동생으로부터 걱정과 지지를 받기는 처음이어서.

동생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아무래도 내 대답이 너무 형식적이고 짧았던 듯싶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물대포 맞는 거 이골 났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를 여러 개 보낸다. 집회는 나오지 않지만 UCC 등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었나 보다.

교차하는 감정들: 부끄러운 대한민국 & 자랑스러운 시민들

동생이 보내온 문자를 보면서 나 역시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다. 사실 지난밤인 5월의 마지막 날을 청와대로 가는 길목의 거리에서 보내면서, 밤새 경찰과 대치하고 물대포 세례를 맞으면서, 지칠대로 지치고 흠뻑 젖은 몸으로 이른 아침에 집에 돌아오면서, 착찹함과 슬픔, 분노와 기쁨이 뒤섞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5월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 밤에 시청광장에 모인 촛불들은 아홉시가 넘어서는 청와대로 향하는 불길이 되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경찰들은 우리의 앞길을 막았고, 길고 긴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사람들은 지치지 않았다. 청와대로 가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똑같이 한 것 마냥 모두가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고 한 곳을 향해 서 있었다.

우리의 촛불은 밤새 꺼지지 않을 기세였고 우리의 불길은 청와대까지 기어코 향할 태세였다. 그러자 물대포가 등장,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넘어지는 사람들...그러나 물대포 덕에 사람들은 더욱 더 똘똘 뭉쳐 하나의 몸이 되었다. 어디선가 구해온 비닐장막을 지붕삼아 모여서서는 물세례를 이겨내다가 물대포가 약해지면 다시금 흩어져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는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한 모닥불이 피워지기 시작했고, 자발적인 시민들로부터 김밥과 물, 담요와 수건 등이 전달되어오기도 했다.

모든 생명이 잠들어야 마땅할 깊은 밤에 수천의 사람들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서 빚어내는 진풍경은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에 한편으로는 서글픔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쁨을 느꼈다. 위험한 먹거리를 거부하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목소리마저 이런 식으로 짓밟는 대한민국 정부라니 너무나 부끄럽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러한 정부를 혼내주러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뭉쳐 커다란 불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상반된 감정이 교차되면서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새벽이 다가왔다.

현명하고 용감한 사람들: 미국경찰 물러가라! 이명박이 불법이다!

급기야 체포전담반이 배치되었다. 경찰방송은 거리의 시민이라고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 외엔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너희들은 불법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전투경찰들이 군홧발 소리와 방패 찍는 소리를 내면서 시위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물대포가 거대한 장갑차마냥 위용을 과시하며 시위대를 향해 다가오더니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사람들을 쓸어내렸다. 영화에서나 보는 전투장면 마냥 기이한 풍경이 또 한 차례 연출되었다. 시위대는 놀라서 뒤로 물러서면서도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민이다! 이명박이 불법이다! 미국경찰 물러가라!

차가운 물세례에 “온수! 온수!”를 외칠 정도로 위트가 넘치면서도,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명박 정권에 있음을 너무나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대포를 맞아 바닥에 엎어지고 경찰에 쫓겨 뛰어다니면서도, 맞아 피 흘리고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그러면서도 다만 처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명하면서도 용감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날이 밝아오자 환호하는 사람들.
그래 이미 우리는 승리했다. 이명박은 각오해라!


뒤로, 뒤로 밀리면서도 다시 앞으로, 앞으로 향해가고 다시 뒤로 밀리면서도 앞으로 향해가고...그러던 와중에 날은 밝아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밤을 버틴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의 함성이었다. 환해진 세상에 진실을 알릴 수 있다는 기쁨의 소리이자, 오늘의 싸움에서 이긴 자는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자축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옆의 동료들과 함께 힘든 와중에서도 밝은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래 이미 우리는 승리했다. 아무리 물대포를 쏘아대고 군홧발과 방패로 우리를 짓이긴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꺼지지 않고 물러나지 않을 것을 5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 모두가 확실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우리들이기에 누구도 우리를 막아낼 수 없다. 불길은 더욱 선명하고 거세어질 뿐이다. 내일도, 모레도, 온 국민이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그날까지, 촛불은 모인다! 이명박, 각오해라!
덧붙이는 말

문설희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교육부장입니다.

  • 진우

    저도 동생에게 문자보내고 싶네요^^ 항상
    글 잘보고 있습니다.

  • H

    학생회실에서 애들이랑 같이 글 보고있는데,
    애들 중 한 명이 눈물이 나려고 한다고 하네요.
    함께 청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