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운반 중인 물건 때문에 운전자가 전방을 제대로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고 지게차를 운전한 데에 있다. 신호수가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고, 설령 사고가 났더라도 곧바로 지게차를 멈췄으면 사망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 있었으나 운반물에 부딪힌 사람이 지게차 바닥에 끼인 것도 모른 채 15미터 이상을 끌고 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 두산중공업에서의 지게차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인을 끼어 숨지게 한 지게차 [출처: 경남지역 사내하청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그러나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작업장의 안전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원청 회사인 두산중공업에 있다. 특히 2004년 11월과 2005년 1월 두산중공업에서 연이어 지게차에 의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두산중공업은 2005년 2월 4일자로 ‘지게차 작업 종합 안전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신호수 안전교육’, ‘신호수를 대상으로 표준 신호방법 교육’, ‘전문 신호수 배치/육성’, ‘신호수를 배치하여 접촉사고 예방’, ‘신호수 배치기준 재정립’ 등 신호수 배치와 관련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두산중공업의 ‘지게차 작업 종합 안전대책’은 다만 계획과 형식에만 그쳤을 뿐 실질적이고 책임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똑같은 지게차 사고로 또 한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또한 세 차례의 지게차 사고는 모두 지게차 운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와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속한 하청업체가 서로 달라 작업에 대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런 점에서 정규직의 일을 사내하청으로 대체하는 무차별적인 구조조정도 반복되는 사망사고의 한 원인이며 그 책임 역시 두산중공업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사망사고의 근본 책임이 두산중공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두산중공업은 모든 책임을 사내하청 업체에게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사고 다음날인 5월 17일(토) 유족들이 사고현장인 두산중공업 터빈공장을 찾았을 때, 사고 현장엔 지게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두산중공업의 현장 관계자나 안전 관계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유족들이 본관을 찾아가 사고에 대해 두산중공업의 해명을 요구하며 강하게 항의하였고 그 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사내하청업체 대표들과 함께 두산중공업의 터빈공장 관리 책임자인 장인평 공장장이 나타났다.
두산중공업 장인평 공장장은 유족들의 질문에 처음에는 작업장의 안전관리감독 책임이 원청인 두산중공업에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유족들에게 사과하였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자신은 도의적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고, 두산중공업은 이번 사망사고 문제 해결에 관여할 수 없고 책임은 사내하청 업체에게 있으니 사내하청 업체들과 협상하라는 것이 회사의 공식 입장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여 유족들의 더 큰 분노를 샀다. 결국 두산중공업은 사망한 노동자가 정규직이 아니라 사내하청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회피하는 부도덕한 대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 사고 현장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 [출처: 경남지역 사내하청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이에 민주노총경남본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등으로 구성된 ‘경남지역 사내하청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는 연이어 반복되는 사내하청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두산중공업의 책임을 분명히 묻기 위해 오늘(19일) 부산노동청 창원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을 비롯한 30여 명의 대책위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가진 부산노동청 창원지청장과의 면담에서, 노동부가 사고 당일 현장을 잠깐 보고 간 후 오늘까지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제기하고 관리감독 소홀에 대해 항의했다. 또한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인 지게차 작업의 안전 미비에 대해 지난 몇 년간의 사고 이후에도 시정이 없었던 점을 들어 '두산중공업 전체 지게차 작업에 대한 작업중지'를 요구했다.
이에 창원지청장이 "오후부터 진행되는 현장 조사에 유가족과 공대위를 참여시키고, 사고 원인을 신속하게 조사하겠다"고 약속, 대책위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산업안전공단 및 노동부 감독관들과 현장 조사에 동행했지만 두산중공업 측이 "현장 조사 인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해 오늘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대책위원회는 안전관리감독 책임자인 두산중공업 사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대기업 원청의 부도덕한 책임회피를 규탄하는 시민선전전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해 나갈 계획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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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님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소속으로, '경남지역 사내하청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