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광우병의 발생은 영국의 농업분야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새로운 질병의 출현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광우병은 소에게서만 나타나는 질병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으며 당시 보수당 정부는 애써 소에게서 발생하는 이 질병이 인간의 건강에는 큰 해를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여론을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기존의 과학자들은 광우병의 증상이나 뇌에서 나타나는 스펀지형태의 변화 등이 양이나 염소에서 나타나는 스크래피와 너무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더욱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은 이러한 스크래피와 광우병이 보여주는 뇌 세포 퇴행현상이 이미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점이었다.
일부 의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이미 인간의 신경질환 중에서 두 가지 질환이 이들 스크래피와 광우병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독일의 신경학자인 한스 게하르트 크로이츠펠트 (Hans Gerhard Creutzfeldt)가 1913년에 보고한 새로운 질환이었다. 그의 환자 중에 23세의 한 여성은 급격한 행동변화와 음식섭취 거부, 신경질적인 행동 및 시공간의 혼란의 경험 이후 온몸이 마비되고 경련을 일으킨 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녀에 대한 사후 부검에서 뇌 세포의 퇴화현상이 발견되었다.
또한 1921년 다른 독일의 신경학자인 알폰스 마리아 야콥 (Alfons Maria Jakob)도 크로이츠펠트가 발견한 유사한 증상을 세 명의 환자에게서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운동신경의 마비와 언어 및 감정표현장애 증상 이후 사망했으며 이후 이 새로운 신경질환은 크로이츠펠트 야콥 (Creutzfeldt-Jakob)병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전염성 질환이 아니었다. 사실 이 질병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이 질환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믿어왔다.
하지만 뇌 세포의 퇴화현상이나 그 패턴은 놀랍도록 스크래피와 광우병의 그것과 유사했기 때문에 광우병 발생 이후 일부 학자들은 서서히 인간에게도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섭취한 사람들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과 같은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질환은 좀더 끔찍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호주의 관할령으로 독립이전의 파푸아 뉴기니아의 오지에 살고 있는 부족 중 포레 (Fore)라는 부족은 부족의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나누어 먹는 식인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들 부족에게는 ‘몸을 떠는 병’이라는 의미의 쿠루 (kuru)라는 질병이 확산되고 있었다. 특히 이 질병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대부분 발견되었으며 대부분 여성들의 사망원인이 되었다. 일부 학자들이 직접 포레부족 지역에 들어가 조사한 결과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장례식에서 남자들이 대부분 시체의 근육부분을 먹고 난 후 남은 뇌와 내장부분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으며 질병의 피해자들의 사후부검을 통해 뇌 세포 퇴화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영국의 과학자들이 이들의 뇌 세포의 변화와 증상이 스크래피와 너무 유사하다는 사실을 이미 1960년대 초에 밝혀내었다. 미국의 의학자이며 생물학자인 칼튼 가이듀섹 (Carleton Gajdusek)은 쿠루환자의 뇌 세포를 원숭이에 접종하여 실험용 원숭이가 유사한 증상으로 죽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질환이 단순히 유전적 요인과 같은 질환이 아니라 전이될 수 있는 질환이라는 밝혀냄으로써 1976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인간의 퇴행성 뇌질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영국의 과학자들은 광우병이 발생한 2년 후부터 줄기차게 광우병이 인간의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감염을 일으키는 특정부위의 제한성 (뇌와 척수, 비장을 포함한 내장 - 현재 많은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특정위험물질이 그것이다)과 섭취를 통한 전이가능성의 한계 그리고 종간 장벽의 문제를 이유로 인간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직접 병원체를 뇌에 주입하는 방식과 섭취방식을 통해 병원체를 전이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면서 섭취방식이 수십억 배 감염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종간 장벽의 문제를 보아도 스크래피는 지난 250년 동안 양에게서 나타났지만 인간으로 전이되었다는 보고는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1996년 이전에 과학자들이 광우병이 인간으로 전이되기 힘들다고 보는 견해의 대부분 기본 주장은 현재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과 광우병이 한국에서 나타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는 일부 견해와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960년대 영국 과학자들은 스크래피의 병원체는 단순히 한 가지가 아니라 감기에도 코감기, 목감기, 두통, 고열 등의 각기 다른 증상과 특이성을 보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계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스프래피 병원체의 계통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실험실 동물을 이용한 실험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관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경우 특정한 스크래피의 계통이 다른 계통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이었다. 즉, 병원체가 숙주에 따라 자신의 특성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우려는 결국 1996년 영국의 젊은이들이 갑자기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증상으로 죽어가면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인간에게서 광우병과 같은 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만 166명의 젊은이들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여러 가지 변수를 사용하여 영국에서 광우병으로 사망할 수 있는 숫자는 수백 명에서 136,000명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인간광우병 취약성에 대한 오해와 추측에 대해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대한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논의와 영국에서의 경험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소위 “광우병 취약성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불거지고 있는 미국 소고기 수입문제와 광우병의 위험성의 중심에 있는 논란거리이다.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광우병 전문가인 한림대의 김용선 교수팀은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인의 광우병과 연관된 유전자형 (소위 프리온유전자)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크로이츠펠트-야콥병과 연관되는 유전자의 유전형질 중 한국인들의 94.33%가 MM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머지 5.48%는 MV형 그리고 0.19%정도 만이 VV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그럼 MM형은 무엇이고 VV형은 무엇이고 도대체 MV형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문제가 되었고 한 연구자를 그토록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는가?
지금까지 학자들은 광우병의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발견했으며 이 유전자가 만들어낸 프리온 단백질은 메티오닌 (M)과 발린 (V)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이 두 가지 단백질 구성물질은 유전형에 따라 메티오닌-메티오닌 (MM형), 발린-발린 (VV형), 그리고 메티오닌-발린 (MV)의 결합으로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광우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전자형 대부분이 MM형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통해서 많은 학자들은 MM형 유전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취약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정확하게 확인해보고 가야할 점이 있다. 현재 광우병 연구계에서 모든 과학자들이 합의하고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질병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즉, 불확실성에 대한 합의만 이루어져 있을 뿐 병원체의 기본 성격에서 치료법까지 광우병 연구자들은 불확실성의 지뢰밭을 지나가는 군인과 같은 처지이다. 인간 광우병 취약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 질병의 취약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전자라는 변수만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특히 광우병은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질병이기 때문에 어느 부위를 얼마만큼 많이 섭취했는가, 종간 장벽의 문제, 어떤 과정으로 전이되었는가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영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는 한 가지 문제는 2명의 광우병 환자가 소고기 섭취가 아닌 수혈을 통해 전이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광우병의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은 수술도구에 붙을 경우 소독과정을 거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전국의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외과수술 도구에 대한 강력한 소독작업과 일회용 수술 장비의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전형에 따른 광우병의 취약성에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인간 광우병은 대부분 MM 유전형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걸린다고 생각해왔으며 MV형이나 VV형은 광우병에 상대적인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작년 MV형 유전형을 가진 환자가 인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함으로써 이러한 과학자들의 믿음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더 커다란 우려는 MV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광우병 잠복기간이 MM형 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지금까지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은 1차 파동에 불과했으며 제2차 파동이 닥쳐올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파푸아 뉴기니의 쿠루병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질병의 잠복기는 40년을 넘는 경우가 있어서 과학자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이처럼 유전형을 가지고 취약성을 결정하는 판단요인으로 보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킬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광우병은 언제나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의 공포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질병에 대한 공포라는 두 가지 공포가 결합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불확실성의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아주 미세한 문제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질병의 발생 가능성 및 패턴 등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우리에게도 이미 광우병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실수와 오류를 거듭하면서 광우병의 공포를 제거한 영국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 덧붙이는 말
-
김기흥/ 2003년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 과학학 연구소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에서 최대규모의 의사학 연구소인 런던대학교 (Uiversity College London)의 웰컴 트러스트 의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우병과 연관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위해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의 화학공학과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우병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연구인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From Scrapie to Prion" (Routledge, 2007)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를 다룬 ”광우병 논쟁“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