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와 함께 광우병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미 지난 5월 2일에 1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포함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광우병은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실체를 알기 힘든 배회하고 있는 유령처럼 보인다. 촛불시위에서 나온 '광우병 쇠고기에 5천만이 다 죽는다'는 주장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객관화되지 않는 공포감이 얼마나 팽배해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광우병을 둘러싼 과도한 정보와 기사들은 결국 무엇이 더 과학적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수잔 슈와브 무역대표부의 대표도 정부의 이상길 농림부 축산정책단장도 광우병의 위험을 주장하는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도 모두 과학이라는 이름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광우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변형 단백질인 '프리온(Prion)'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자세한 사항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넘치는 정보 속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은 결국 새 정부의 장관의 말에서 "광우병은 복에서 독을 제거하듯이 특정부위를 제거하면 안전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 얼마 되지 않는 광우병 전문가들이 나서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쉽게 깨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과학자들도 시원스럽게 해답을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광우병 연구 분야의 과학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논란과 논쟁을 거듭하면서 과연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성격과 치료법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명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대중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이러한 과학적인 불확실성과 정부의 불확실한 입장이 결합되면서 더욱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 합의하고 있는 광우병과 그 연관질병에 대해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광우병은 1985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발생한 소에게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당시 영국에서 소들이 갑자기 체중이 감소하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마치 미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후 10년 동안 영국과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파동의 시작이었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새롭게 보고된 질병으로 죽은 소의 뇌를 검사하여 뇌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듯 뇌세포가 죽어버리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해면상뇌증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미 영국은 1725년부터 양에게서 나타나는 유사한 질병인 스크래피 (Scrapie)라는 질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광우병에 대한 이해는 스크래피에 대한 연구와 필연적으로 연관된다. 많은 과학자들은 스크래피를 광우병을 포함한 일군의 질병들, 즉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 (vCJD)과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에게서 발생하는 신경질환인 쿠루 (Kuru),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 (Fatal Familial Insomnia, FFI), 거스트만-슈트라우슬러-센커 (Gerstmann-Straussler-Scheinker, GSS)병과 북미의 사슴이나 엘크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성소모성 질환 (Chronic Wasting Disease) 그리고 사육되는 밍크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밍크뇌증 (Transmissible Mink Encephalopathy, TME)등 소위 전염성 해면상뇌증 (다시 말하면 전염성인 뇌에 스펀지형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질환, 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ies, TSEs)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광우병에 대한 과학자들의 설명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무엇인가?
인간이나 동물에게서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주로 곰팡이나 기생충,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원인이었다. 이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자체적인 복제능력을 가진 기본정보를 담고 있는 핵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알려진 프리온 (감염성 단백질인 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의 줄임말)은 단순한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도 우리 몸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무수한 단백질 중에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이 갑자기 그 모양을 바꾸면서 비정상적 형태의 프리온 단백질로 전환하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기존의 질병발생 과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병원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기존 병원체에 대한 치료법은 전혀 효과가 없다.
프리온 학설이 처음 발표된 1982년 이후 학계는 정말 프리온이 실제로 핵산정보 없이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단백질인가의 문제를 놓고 25년간에 걸친 논쟁을 벌여왔다. 물론 이 학설을 처음 제기한 미국의 신경학자인 스탠리 프루지너 (Stanley Prusiner) 교수는 1997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논란이 사라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일부 과학자들은 그의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보통 바이러스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바이러스와 비슷한 병원체가 발견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두 번째, 광우병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광우병이 처음으로 발견된 1985년 이후 과학자들은 어떻게 소에게서 스크래피와 유사한 뇌질환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의 부산물이 소의 사료로 흘러들어간 강한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영국을 포함한 서구국가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을 첨가하여 만든 동물성 사료인 육골분 (Meat-bone Meal, MBM)으로 알려진 사료를 소에 먹이기 시작했다. 동물성 사료에 들어가는 단백질을 높은 온도에서 동물성 지방을 녹여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1979년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이 분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육골분 생산업자들은 낮은 온도에서 지방을 처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방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지방에 둘러싸인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의 부산물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 즉, 완전히 고온 처리되지 않은 채 육골분의 재료로 유입되었다. 결국 육골분 사료에 유입된 스크래피 병원체는 양과 소 사이에 존재하는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광우병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세 번째, 광우병의 증상은 어떤 것인가?
광우병은 다른 인간광우병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이나 스크래피와 달리 매우 일관되고 안정적인 감염증상을 보여준다. 특히 광우병의 발생연령은 대부분 4세에서 5세 사이에 나타난다. 이러한 발생연령의 일관성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30개월령 소의 수입제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광우병에 걸린 소는 30개월 이상이 되었을 때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의 축적이 시작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단 초기증상은 소가 예민해지고, 발로 차기 시작하고 운동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다른 소들과 떨어져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그리고 뒷다리의 힘이 약해지고 주저 앉게 된다. 그리고 소리나 접촉에 매우 예민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광우병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소가 미쳐서 걸린 병이라기보다는 예민해지고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버둥거리는 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네 번째, 광우병은 어떻게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광우병의 발생은 자연적인 형태의 감염이라고 볼 수 없다. 지난 250년 동안 일상적으로 영국의 양에게서 나타난 스크래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스크래피 병원체가 자연적으로 인간이나 다른 동물로 전염된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수행한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인공적인 감염연구에서도 스크래피는 인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실험쥐로 전이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스크래피가 소로 전이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했듯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했던 골육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스크래피 감염물질이 유입되었고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던 것은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간 장벽은 광우병이 인간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연적인 장치였고 일종의 보호 장치였다. 하지만 인간이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섭취하는 경우 직접적으로 프리온 단백질이 인간에 유입되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간 장벽은 또한 질병의 발생을 지연시키고 인간의 유전자형에 따라 각기 다른 잠복기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학계에서 광우병의 병원체인 프리온 단백질의 종간 장벽을 넘는 원인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얼마나 많은 광우병이 지금까지 발생했는가?
1985년에 시작된 광우병 파동은 전 영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1993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2000년 말까지 영국에서는 거의 2십만 마리에 가까운 소가 광우병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되었고 모든 광우병 감염 소는 폐사 처리된다. 그리고 이웃 유럽국가들인 프랑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고 스위스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영국과 유럽연합에서 단행한 동물성 사료사용의 금지와 육골분 생산금지조치 이후 광우병의 발생건수는 감소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은 전세계 국가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03년 캐나다에서 수입된 소에서 광우병이 처음으로 발생했으며 2004년과 2005년에 텍사스와 앨러바마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발견 건수는 미국이 2003년 광우병 발생 이후 시행한 759,000마리의 소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발견한 것으로 미국의 동식물보건조사 서비스 (APHIS)는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영국과 유럽의 경험은 광우병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통해 발생건수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광우병 발생율이 극히 낮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의 발생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파급력은 다른 어떤 질병보다 강력하다. 이미 영국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단 광우병이 발생하게 되면 그 국가의 농업분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영국의 쇠고기 및 유제품은 최근까지 수출을 금지하고 있었으며 유럽연합에서 정치적인 고립을 면치 못했다.
영국은 광우병 진단과 억제를 위해 수십억 파운드를 사용해야 했으며 지금까지 경제적인 손실은 약 655억 달러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광우병의 발생으로 인한 피해액은 2001년에 최소 7억 6500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럽의 상황으로 인해 전세계 경제 전체에 수십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추산했다. 그 경제적인 충격과 함께 인간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은 통계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소에서 발생하는 광우병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원인과 감염경로 그리고 증상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앞으로 1996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발생한 소위 인간광우병이라 불린 변종 크로이츠펠트-야곱병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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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2003년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 과학학 연구소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유럽에서 최대규모의 의사학 연구소인 런던대학교 (Uiversity College London)의 웰컴 트러스트 의사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광우병과 연관 신경퇴행성 질환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위해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 (Imperial College London)의 화학공학과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광우병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연구인 “Social Construction of Disease: From Scrapie to Prion" (Routledge, 2007)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문제를 다룬 ”광우병 논쟁“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