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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삽질을 멈춰라!

[기고] 대추리 점령자들의 잔치와 빼앗긴 자들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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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시나요?"

12일 저녁 나는 대추리 이장인 신종원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13일 오후에 있을 평택 미군기지 확장 기공식 규탄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이내 말을 바꿨다.

“아니에요. 오지마세요. 보지마세요.”


13일 오후 2시 국방부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기공식을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송명호 평택시장 등 12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공식이 열리는 장소는 하필이면 대추리 주민들이 살던 집터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말한 대로 대추리에 확장되는 미군기지는 “주한미군의 중심적인 운영기지가 될” 예정이다. 하기에 국방부와 주한미군에겐 ‘미래 한미동맹’의 1차 고지였던 대추리에서 기공식의 첫 삽을 뜨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대추리 점령자들 애드벌룬을 띄우고, 풍선을 날리고, 폭죽을 터트리며 자축했다.


한편, 마을 반대편 황새울 들판이 빤히 보이는 함정리 부근에서는 대추리에 들어갈 수 없는 마을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기공식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이들의 수는 기공식 참여자의 십분의 일 정도 밖에 안 되는 150여 명 남짓이다.

황새울 들판을 가로질러 걸쳐있던 철조망은 이미 성토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모두 걷혔고, 검문초소도, 경비 병력도 줄었다. 철조망도, 경비 병력도 없는 그 들판엔 이제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살지 않고, 물길은 끊겨 물이 흐르지 않고, 벼가 자라지 않는 생기 없는 땅에는 누구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공식 규탄대회를 시작할 무렵 대추리 신종원 이장과 팽성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을 비롯하여 대추리 주민 십여 명이 규탄대회를 참석하기 위해 왔다. 할머니들은 “속 터져서 욕이나 해주려고 왔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항상 투쟁대열의 맨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던 할머니들은 좀처럼 대오 앞으로 나서기를 꺼려했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은 이내 대추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노영희 할머니는 도장산 중턱에 올라 앉아 저 멀리 대추리를 바라보며 “우리 집에는 은행나무도 세 그루가 있었는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집이 다 헐리고 터만 남은 곳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국방부는 미래 한미동맹의 첫 삽을 뜬다고 기공식을 홍보했지만, 집회 참석자들은 “전쟁의 삽질을 멈추라”라며 기만적인 정부와 국방부, 주한미군을 규탄했다. 그리고 기공식에 재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우리는 대추리에도 들어가지도, 논바닥에 뛰어들지도 못한 채 규탄대회가 끝나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평택싸움은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 묻는다. 언론에서는 졌다고 말하고, 시민들은 머릿속에서 대추리를 잊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말처럼 싸움에 진 것이 맞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주민들은 돈을 쫓지 않고, 흩어지지 않고, 새로운 곳에서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대추리 주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돌아오는 18일 일요일에는 마을을 빼앗긴 패배한 농민들의 잔치가 열린다. 폭죽이 터지고, 풍선이 날아가는 점령자들의 잔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마을을 떠나 첫 번째 수확을 거 둔 대추리 농민들의 소박한 잔치이다. 논과 밭을 다 빼앗겨서, 농사지은 땅이 1천 5백 평밖에 안 돼 예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수확량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들은 평택싸움을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과 이 쌀을 나누고 싶어 한다. 평화는 빼앗음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생기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실천하듯이. 대추리 주민들은 넉넉한 맘이 그리운 사람들은 18일 정오에 새로운 대추리마을(송화리)로 모이기만 하면 된다.

<대추리 마을잔치>
- 날짜 : 2007년 11월 18일(일요일) 낮 12시
- 장소 : 송화리 포유빌라

가을걷이를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지킴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1500평 논의 수확을 했습니다.
그 논은 물이 빠지지 않는 수렁논이라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어 직접 벼를 베고 볏단을 날라야 했습니다.
그 힘든 일을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항상 대추리 주민들을 잊지 않고 함께 해 주시는 분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확을 끝내고 대추리를 생각하는 많은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부디 참석 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대추리 이장 신종원의 편지 중에서..

덧붙이는 말

여름 님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