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이런 부정적인 면을 혁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파당과 가문의 상호견제와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경술년에 조선을 병탄한 일제와 그 앞잡이들은 ‘파벌주의’를 널리 선전하면서 조선인의 분열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지금도 한국인의 분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일부 학자들의 근거는 여기서 발원한다. 정말 그런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각설하고, 5.16 군사쿠데타 이후 한반도 남쪽에는 새로운 ‘벌’이 등장한다. 이른바 ‘재벌財閥’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내세운 군부독재자와 하수인들이 일군의 대기업 총수가문과 통혼한다. ‘정경유착’과 ‘가문의 영광’이란 신조어를 만들면서 그들은 남한사회의 신흥 지배집단으로 떠오른다.
얼마 전에 일어난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벌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와 연계된 경찰 수뇌부 인사들의 집단적인 파면과 구속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리의 건승을 입증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최근 '유전무죄'의 덕을 톡톡히 보지 않았는가!
근자에 세 번째 ‘벌’이 나타나 우리에게 혼란과 경종을 선물하고 있다. ‘학벌學閥’이다. 느닷없이 불거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로 시끌벅적하던 한국사회를 더욱 소란스럽게 몰아간 것이 학벌문제다. 사전에 다르면 학벌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이며, 그 둘은 ‘출신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이다.
첫 번째 정의 가운데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진 학벌과 그것이 불러오는 긍정적인 결과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를 아직도 대중은 실제 현실로 믿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없이 사는 학생이 불철주야 노력하여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다면 박수쳐 줄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출신학교에 따라 달라지는 신분상의 차이와 차별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고교 평준화 이후 정형화된 대학간 등급과 서열문제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고교시절의 개인적인 노력과 집안의 배려로 국내 명문대학이나 유명 외국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장래가 보장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스무 살에 어떤 대학교에 입학했는가 하는 것으로 개인의 인격과 능력과 미래의 가능성 모두가 평가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교육에 의지하여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개인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정상적인가. 더욱이 같은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여 끼리끼리 모여 짬짜미를 하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그들만의 리그 풍경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요즘 세간에 떠도는 ‘학력學歷위조’ 망령은 학벌사회의 폐해 가운데 일부가 공론화된 것이다. ‘학력學歷’과 ‘학력學力’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학벌사회에 살고 있기에 두 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혼동한다.
‘스카이’ 출신이라면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능력이나 실력으로 인간을 검증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간판만 들여다본다. 여기에 편승한 상황이 ‘학력學力위조’가 아니라, ‘학력學歷위조’인 것이다. 학력검증 체계가 없는 희한한 학벌사회 대한민국의 희극적인 진풍경이 백주대낮에 벌어진다.
대한민국 사회를 말아먹는 세 가지 병폐가 혈연, 지연, 학연이라고 한다. 삼성과 현대 같은 굴지의 재벌들이 대놓고 해먹는 변칙상속이 뿌리 깊은 혈연의 적폐다. 수십 억 세금 내고 조 단위가 넘는 차익을 우려먹어도 멀쩡한 사회는 중병이 든 것이다. 그런 자들을 사회지도층 인사라 부르면서 내남없이 굽신대는 풍토는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사회정의를 무한실종시키는 그런 풍조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선거 때만 오면 좌파 운운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부언론과 정치집단 및 모리배들의 해악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얼마 전에 어느 정당의 대선후보가 주한미국 대사를 만나서 했다는 소리는 참으로 섬뜩하다.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익의 대결이다.” 이런 낡고 고약한 <색깔론>은 지연에 크게 의지한 박정희 군부독재 이후 선거 때마다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출신고교와 대학으로 인간을 나누고 줄을 세우는 학연의 폐해는 유구하며, 그것의 현대적인 양상이 학벌과 학력위조로 드러나고 있다. 위조에 연루된 사람들의 거짓말과 변명이 언론과 세상에 회자된다. 속이고 속는 사회적 병폐를 극복하는 여러 방안을 지식인 논자들은 열심히 궁리한다. 해결책도 백출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 ‘학벌’이라는 학문권력, ‘재벌’이라는 경제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해오지 않았는가를. 이제라도 냉철하게 숙고해야 한다. 보다 인간답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진실로 선진국 대열에 오르고자 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모든 것을 폐절하고, 불의한 모든 것을 저승세계로 날려보내야 한다. 과거의 추악한 그림자로 미래를 그늘지게 하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무하마드는 말했다. “산이 내게로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가겠다!” 벌(閥)이 폐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벌을 폐하면 된다. 이제는 벌을 폐할 시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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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님은 경북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