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도 개발의 문제 심각하다
서울시의 무분별한 도시개발 계획으로 주거빈곤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이나, 지역에서도 개발사업 진행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대구 등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공간들과 쫓겨나는 사람들, 대책 없는 난개발의 문제 등이다. 예를 들면 대구지역의 경우, 273곳이나 개발 예정구역으로 고시가 된 상태이며, 서울 동탄 신도시의 2배가 넘는 450만평 규모가 아파트 건설지역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개발 사업은 대량 미분양 사태와 분양가 등락으로 인한 주민피해를 낳고 있다. 대책 없이 진행되는 무차별적 개발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부산지역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공사가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주변 땅을 매입해 인구 저밀집 지역으로 만들어 지역 공동화 현상을 낳고 있다. 또한 평택 미군기지 확장 과정에서의 강제 퇴거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환경이나 반전평화운동의 관점에서 접근되었으나, 주거권이 거주로서의 집의 문제를 넘어 주거환경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개발 사업들은 기존의 지역관계망을 해체시키고, 자생적 공동체의 형성을 어렵게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삶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립적 가족 구성권의 문제를 제기하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소수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한국사회는 ‘정상가족’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청소년, 장애인, 비혼여성,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여성/소수자의 독립은 결혼을 통해 ‘정상가족’을 구성했을 때 인정된다.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독립선언’은 깔끔하게 무시되거나, 끊임없는 설득과 강요에 의해 포기되며, 경제적 무능력자의 투정 정도로 취급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소수자가 독립적인 가족 구성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 즉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은 주거공간과 주거정책으로 이어진다. 여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은 “현재 주택자원의 분배가 특정한 가족모델을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가족을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대주택제도에서 청약가산점제가 도입되면서 비혈연 공동체 혹은 1인 가구는 임대주택의 입주자 선정 과정에서 불리해졌다”
주거 공간 또한 ‘정상가족’을 모델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비혈연 공동체 혹은 1인가구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주거환경, 도시 공간 자체가 성인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는 문제”가 지적되었으며, “성인지적 주거 및 도시 공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독립으로 가기 전, 시설의 문제를 풀어놓다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안전한 공간의 문제는 삶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닿아 있다. 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남성에 의한 폭력으로 위험에 처한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며, 피해 생존자들은 쉼터라는 낯선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하게 된다. “위험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했던 피해 생존자들은 쉼터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욕구를 발견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활동가들은 안전한 삶의 공간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쉼터의 입소기간이 제한되어 있어 안정적인 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주거 해결책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탈성매매 여성들도 1년 6개월의 입소기간이 지나 시설에서 퇴소해야 하는 시점에서 주거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여성단체들은 그룹홈 형태나 임대주택 제도를 통해 주거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는 가출 청소년들에게도 적용된다. 이처럼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의 문제는 바로 누구와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주거공간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여성과 청소년이 독립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주거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탈시설 문제를 보면, “정부는 시설에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장애인이 시설을 나오고 싶을 때, “현재 이들에게 제공되는 주거공간은 없는 상태”이다. 탈시설운동은 “장애인이 더 이상 시설에서 살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것을 실현하자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며, 탈시설 운동 핵심 중의 하나가 주거권 운동”일 수밖에 없다. 또한 장애인의 주거권 문제를 고민할 때, 접근성 및 이동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장애인에게 주거 및 사무공간은 비장애인의 공간에 비해 넓고 편의시설이 갖춰져야 하는 문제”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장애인은 열악한 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있다.
활동가들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한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주거권 운동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였다. 그러나 아직 주거권 운동을 활동의제로 구성하는 것에는 미약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고민하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 기숙사나 고시원에 거주하거나, 재개발 지역의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살다가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이직과 동시에 주거 공간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또한 한국에 온 지 몇 년 된 이주노동자들도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전월세 계약을 맺기 어렵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져 개발과정에서 주거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나 단속추방의 공포, 지역주민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속적인 주거불안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 단체에서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기적인 해결일 뿐이며, 이주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과 만나 주거권 운동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다
활동가들은 주거권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으면서, 주거권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고, 주거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시도된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활동가들은 주거권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답변하였다. 그 이유를 보면, 주거권(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역이라 접근하기 어려운 점, 현안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의 문제 등 이었다.
주거권운동워크샵 기획단은 앙케이트를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을 운동의제로 함께 만들어 나가기 위한 소통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운동 영역의 활동가들과 만나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여 주거권 운동으로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각 영역에서 주거권을 둘러싸고 어떠한 내용적 차이가 존재하는지 정리하는 징검다리 워크샵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워크샵을 통해 주거권운동으로 함께 소통하며,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앙케이트 관련 질문
귀하가 활동하는 영역/부문에서 집, 주거, 공간과 관련해 문제를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문제입니까? 그때 귀하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도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며, 시도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