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무기계약화 찬반 넘어 비정규악법 폐기 투쟁으로

[비정규법 패기! 폐기](4) - 어떻게 공동투쟁과 연대를 확대할 것인가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비정규법안의 기간제한 조항과 차별금지 조항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의 해법이 제기되면서 ‘분리직군제’, 공공부문 ‘무기계약화’ 대책 등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대응책에 대한 찬반 논란 이면에는 법안이 상정될 때부터 충분히 예고된 대규모 해고, 계약해지, 외주 용역화가 심화되는 상황이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안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권 박탈과 차별의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노동의 불안정화를 고착화, 심화하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법안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없이 일부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개선 방안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논란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랜드는 비정규법 시행을 이유로 계산원 350여 명을 집단 계약해지했다. 이들은 모두 여성노동자이다./참세상 자료사진

분리직군제가 여성노동자 고용조건 개선의 발판이 아닌 이유

우리은행 분리직군제 사례를 접하며 촉발된 노동운동계의 입장 차이는, 분리직군제가 ‘비정규직의 차별을 고착화하는 제도’냐, ‘여성에 대한 고용상의 차별을 해소할 정규직 전환’이냐는 것이었다.

통상 정규직이 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용 고용으로서 노동법상 해고 제한을 통한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전일제의, 단일한 고용주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를 일컬으므로, 우리은행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에게 무기계약화가 제한적인 정규직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업무 평가를 통해 계약해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노동 전반에 비정규직이 확대된 과정을 고찰해 본다면, 분리직군제를 통해 무기계약화된 여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분리직군제는 이미 금융권에서 실시하던 제도로서, 사측은 단순/주변 업무에 저학력의 여성노동자를 배치하여 여성노동자에 대한 승진/임금 체계에서의 차별을 정당화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비판이 있어 왔다(증권산업노조 2006 임단협 요구안에 ‘비정규직의 차별적 처우를 유지하고, 특정 직무나 특정 성의 노동자의 차별적 처우를 유지하기 위한 직군제 편제를 할 수 없음’이라고 명시되어 있음). 하나은행의 경우, 창구직 위주의 'FM/CL' 직군(vs 관리사무직 위주 '종합직군')의 97%가 여성으로서 종합직의 56% 임금차별에, 승진 상에서의 차별이 존재했었다(남녀고용평등법 상 성차별 금지 위반 판정 내려졌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음).

분리직군제는 남녀평등고용법 제정 이후 폐지된 여행원제가 직군 분리라는 외피를 쓰고 부활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규직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 외에 IMF 이후 여성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 해고되어 비정규직으로 금융권에 재입사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던 사례들을 감안한다면,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이 고용형태를 바꿔가며 지속되고 고착화되고 있는 경향을 알 수 있다. 즉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정규직 여성노동자는 고용형태만 다를 뿐 똑같은 임금/승진 상의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분리직군제 이후 급여나 승진 상의 차별이 어떻게 축소되는 가를 두고 그 성과를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한’ 주장은 금융권에서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순진한 발상이다. 분리직군제에 포함되는 일부 여성노동자의 상황을 성과로 포장할 경우,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은폐할 것이며, 여성노동자 내 정규직-무기계약직-기간제 등의 위계와 분할을 심화시킬 것이다.

무기계약화 찬반을 넘어 투쟁 전선 구축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 업무 무기계약화 방침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이른바 남성 정규직 노조 대 여성 비정규직 노조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상시업무를 담당하는 학교 비정규직을 무기계약화하는 내용을 담은 최순영 의원의 법안이 노조의 철회 요구로 발의 되지 못한 것을 두고, 남성 정규직 노조의 무기계약 반대 의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쟁취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는 일부 여성학계, 여성단체 진영 등의 입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에서 한계적인 것은 무기계약에 해당하는 노동자 외에 이러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 계획을 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노동자운동은 성별 차이와 결합된 고용형태 상의 차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노동의 여성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을 정규직의 고용안정과 맞바꾸는 성맹목을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가 그에 걸맞는 집단적인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혹은 각개격파당하면서 ‘비현실적이거나 원칙적인’ 선언 이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 대응의 한계는 여성노조에게서도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핵심/주변 업무 구분과, 그에 따른 외주화 방침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 없이 무기계약화에 (전국여성노조의 주요 조합원인) 여성노동자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조의 또 다른 실리주의에 다름 아니다. 전국여성노조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무기계약 전환 방침이라는 쟁점에 대한 노조 내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논의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의 투쟁을 봉쇄했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 전선을 흐리고 있다.

무기계약화 자체가 예산 배정의 문제, 고용안정이나 처우 개선 등에서 이후 상황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은 계속 비판되어 왔다. 이는 비정규직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에서 정규직과 달리 차별적으로 관리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무기계약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포함시킬 것인가, 처우 개선을 어떻게 진척시킬 것인가에 대한 개입을 넘어 노동의 불안정화, 또 노동자를 분할· 위계화하려는 시도에 대항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비정규직법안의 기만성을 인식하며, 전면적인 투쟁을 개시하고 있다. 10일 유통서비스 부문의 뉴코아노조와 이랜드일반노조 공동총파업이 시작되었다. “0개월 계약서” “백지위임 계약서” 등 언제 어디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통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법 자체가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고용형태를 합법화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노동3권 쟁취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비정규법안이 시행되면서 더욱 파괴적으로 진행될 해고, 계약해지 등에 맞서 개별적인 대응이 아닌 공동투쟁과 연대를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가, 이를 위한 운동의 연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투쟁으로!

비정규직 법안 이후 자본의 대응책의 대상이 거의 여성노동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동안 자본은 상시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저임금의 여성노동자를 활용해왔음을 드러내주는 증거다. 여성노동자는 여성의 생계를 부차화하고 따라서 저임금을 당연시해왔던 차별적인 관념과 제도 속에서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자층의 최하위를 구성해왔다. 여성이라는 성적 차이를 차별로 둔갑시키고 고용형태 상의 차별까지도 확대해왔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 전반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은 이제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문제를 당사자의 문제나 미조직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전반을 공격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사고하고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 전체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변혁적인 노동자운동의 상을 정립하는 과정이다. 저숙련, 단순 업무 등 이른바 여성에게 편재된 직종에 대한 불안정화 공격에서 시작하여 노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은 여성운동, 노동운동 양자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분리와 대립을 넘어 신자유주의 반대! 비정규직 철폐! 여성 노동권 쟁취!의 기치 아래 연대와 투쟁을 모색하자.
덧붙이는 말

김정은 님은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