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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고집말고 다양한 협력방안 모색해야

[기고] 2.13 합의와 북 에너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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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였던 BDA 문제가 난항을 겪으면서 2.13합의 이행조치가 지연되고 있다. 북미 양측의 입장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양측 모두 아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양측 모두 유연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게다가 진즉 예상했지만, 북한이 지난 1988년 이래 20년 동안 테러지원국이라는 불명예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올해는 작년 보고서에서 포함됐던 일본인 납북자에 관련한 기술내용이 상당정도 축약되었고, 한국인 납북자 및 일본 이외 타 국가 납북자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하는 등 지정 근거를 많이 줄여 이후 전망을 생각할 때 그나마 다행스럽다. 앞으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워싱턴의 봄바람을 조심하라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역풍 조짐이 확연하다. 봄바람은 봄바람이되 변덕이 심해서 왕짜증 나는 바람이 불수도 있다.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는 사람들이 북한 불신론을 들고 나오면서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울부짖고 있다. 이들은 북한과의 대화나 외교적 협상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던 강경파들로서 라이스-힐 협상파 외교라인을 압박하면서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작년 중간선거 이후 네오콘의 대부인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볼턴 유엔주재 대사 등 강경파들이 부시 행정부를 떠났으며, 최근에는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마저 퇴장함으로써 부시 행정부 내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강경한 대외정책을 입안하여 이라크, 이란, 북한 등에 대해서 그동안 줄곧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로 판명나거나 채택되지 않으면 일말의 망설임이나 미련도 없이 집단적인 대이동을 벌이면서 권토중래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2.13합의를 마뜩찮게 생각했으며, 불만의 표시로 소수를 제외하고는 줄줄이 자신들의 특별한 지위를 박차고 나와 부시 행정부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지만 2.13합의를 처음부터 ‘문제아’라고 비판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틈새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와 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다시 돌아가곤 한다.

그런데 BDA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퇴조하고 있는 워싱턴의 강경파들에게 불씨를 살려주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네오콘은 BDA 문제를 기술적 절차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선결조건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당초 2.13합의 이행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BDA 문제에 대한 접근의 난맥상이 나타나고 있다. BDA 문제를 기술적인 문제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 것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BDA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해결을 전제로 해서 기술적인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것이다. 2.13합의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차적 방법을 제시한 것이며, 여기에서 나타난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북핵문제 해결로 드러났다. 그런데 북미 양 국가는 BDA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접근하여 북핵문제가 아닌 북한문제에의 집착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포기할 수 없고 아직도 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면 문제해결을 무조건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임이 분명하다(김근식, “북미 양자협상의 함정”, 프레시안, 2007.5.2 참고).

그래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BDA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나 인식은 곤란한 것이다. BDA 문제가 한반도 비핵화 전략의 전술임에는 분명하지만 북미 모두 정치적인 문제로 북핵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문제의 핵심은 상호 신뢰성이었던 것이다.

심각한 북한의 에너지 문제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서 에너지난 타개에 상당한 비중을 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만큼 식량난, 외화난과 함께 고질적인 에너지난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폐쇄’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겨우 5만t의 중유다. 중유 100만t에 상당하는 실질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60일 이후 불능화를 빨리 하면 할수록, 그만큼 경제적 실리도 빨리 얻을 수 있다. 제네바 합의 때는 핵시설 동결만으로 매년 50만 톤씩 중유를 지원받았다. 8년 동안 북한이 받은 중유는 총 365만t이다. 그에 비하면 이번 지원은 매우 적은 편이다. 남한의 대북지원이 재개된다 해도 과거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북한이 받는 중유 100만t이 지난 19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비교할 수는 없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숨통을 트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미 관계정상화로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100만t 이상의 가치를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중유 100만t으로 대북 지원이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 북한의 선택에 따라서 추가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중유 100만t은 향후 있을 보상의 첫걸음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가 협상 향배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통일부에 의하면 2004년을 기준으로 북한의 총 발전설비용량은 777만kW로서 남한 5천996만kW의 13%인데다 전체 발전설비의 70% 정도가 낡아서 폐기하거나 보수를 해야 하는 실정이며, 전력 생산량(발전량)도 206억kWh로 남한 3천224억kWh의 6%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수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61%로 남한(1.7%)에 비해 월등해 높은 비중을 차지해 강수량이 줄 경우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고 화력발전소는 석탄 채굴 장비 노후로 인한 석탄 공급 부족으로 역시 제 기능을 상실한 상황이다. 또한 북한의 원유 도입량은 1988년 320만t에서 2004∼2006년에는 3년 연속 52만∼53만t으로 떨어지며 에너지난이 가중돼 공장시설이나 철도 등 운송시설 등에도 영향을 미쳐 산업 전반이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양한 에너지 협력이 필요하다

2.13합의의 초기 이행조치 이후 단계에서는 경수로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차별화를 하고 싶어 하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에 대한 언급 생략과 북한 핵시설의 조기 불능화는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부시 행정부는 경수로를 클린턴식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에 경수로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다. 또, 핵시설의 동결(freeze)과 해체(dismantlement)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불능화(disablement)도 제네바 합의 때에 비해 진전된 성과라고 선전하고 싶은 개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경수로가 일종의 전리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포에서 공사가 재개된다고 해도 완공까지 5년은 걸릴 경수로 문제를 놓고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와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또 핵심부품을 제거하여 핵시설을 불능화한다고 해도 부품은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핵시설의 불능화가 동결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시설의 해체가 불능화보다 낫고, 불능화가 동결보다는 낫겠지만, 핵시설이 사라진다고 해서 핵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지식기반과 유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핵시설의 해체도 중요하지만 핵개발을 부른 안보위협의 해소에 더욱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감안하면 경수로 지원 문제는 부시 행정부 이후로 미루고, 북한 핵시설의 해체 및 안보위협의 해소에 보조를 맞춰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타협안이 실현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지원 방안으로는 중유 공급이나 대북송전 이외에도 북한내 주요 산업거점에 화력발전소를 지어 북한의 경제개발 및 남북경협을 촉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협력을 위해서는 북한 에너지 공급선의 다변화를 포함, 에너지 자원 개발에 목표를 두어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북한의 광물자원 중 석탄을 비롯, 경제성 있는 에너지 자연자원을 공동 개발, 북창 화력발전소, 동평양 화력발전소 등 북한의 대형발전소를 정상 가동시키는 일에서부터 남한기업이 진출하는 북한 경제특구와 공단용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가장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2.13합의 이행은 네오콘의 반발 외에도 미국 내부의 복잡한 법과 절차, 부처간의 입장차, 부시 행정부의 의회에 대한 리더십 약화 등의 요인으로 지체될 것을 우려했다. 또한 북미 상호 불신과 일본의 비협조적 태도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힐 차관보 등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5월은 4월처럼 변덕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지나치게 일찍 오면, 이 또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해서 적응하기 힘든 시간이 계속될 수도 있다. 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는데, 벌써 여름 문턱이라니 봄이 그립기만 하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 들국화

    북한의 에너지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기왕의 발전소라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소보다 자연친화적인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운동이 일게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습니다..

    햇벛발전, 바람발전등의 에너지 자치(에너지 민주주의)로 북한의 숨통도 트고 아래의 민주주의도 발전하였으면 합니다

  • 배성인

    저도 당연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 등등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형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여하튼 북한문제는 여러가지로 고민할 것도 많고 한계도 많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