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의 봄은 오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다른 형태로 2007년 4월 2일 이 땅에 재현되었다. 혹시나 하는 미련과 한 줌의 희망마저도 잔인한 국가와 막가파식 권력 앞에서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굴욕적 협상도 협상이다(?)
2007년 4월 2일은 21세기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정해국치, 정해늑약이다. 뭔 놈의 나라에 이렇게 국치도 많고 늑약도 많은지 창피하기 그지없다. 정말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집념과 집요함에 경의 아닌 경의를 표하면서 이제는 그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이번 한미FTA 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는 숨이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과 사기로 점철된 이번 협상에 대해서 그저 참담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처음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백기를 들고 시작하더니 국민들을 속이고 기만하다가 결국에는 퍼주기 협상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협상은 노무현 정권의 자발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이외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협상과정에서 지렛대로 삼아야 할 4대 선결과제들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시종일관 미국의 전략에 끌려 다닌 친미 사대주의 협상이었다. 또한 국민들에게 일체의 정보를 은폐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반민중적 반민주적 협상이었다. 노 정권의 집착이 돋보인 한판 승부였다. 집착은 독선과 오만을 낳고 이는 위선과 거짓으로 이어진다.
협상결과는 애초에 우려했던 대로 현실화되고 말았다. 한국의 비관세 제도, 비가격 정책, 국민들의 삶의 질, 사회권과 사회 안보를 송두리 채 내주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관료들의 상상력이다. 섬유 관세와 교환하려고 유전자변형생물(LMO) 개방을 먼저 제안해서 타결한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 발상이었다. 또한 국민들이 그렇게 우려하고 우리의 건강과 직결되는 쇠고기도 구두합의를 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은 관세철폐와 쌀 개방제외를 집중적으로 선전하면서 자동차, 섬유, 철강, 전자 등등의 품목을 얻어냈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얻어낸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킨 것뿐이다. 여전히 노 정권은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 최대의 ‘통상 깡패국가(rogue state)’인 미국을 상대로 이 정도 지켜낸 것이 어디냐며 소중한 성과라고 버럭 질러댄다면 이해가능하다. 그들의 사고와 삶의 양식이 그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말 하면 잔소리요 세말 하면 헛소리밖에 안 된다.
관능의 정치, 노골적인 정치적 에로티시즘
한미FTA 타결 이후 노무현 정권이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한미FTA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10% 이상 상승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 한나라당 중심의 보수세력, 그리고 노무현 직계 그룹들 모두가 한미FTA 찬양가를 연일 합창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으로 언론매체를 도배질하면서 융단 폭격식 선동정치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500선을 돌파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순매수가 1조원을 넘어섰다는 소식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50% 이상이 찬성을 하고 있으며, 한미FTA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이 더 유리한 협상을 했다고 답을 하는 논리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공청회 한 번 하지 않고 밀실협상으로 일관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게 만든 구조에서 여론 조사결과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능력이 있음에도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국민들의 합리성 수준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미국에 유리하지만, 꼭 해야 한다는 논리. 잘은 모르지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 국민들도 여론조사를 통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이들에게서 목격되는 공감대는 현재의 이러한 상황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양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다. 농업이 파괴되고 농민들이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빨리 옷 갈아입고 꽃놀이도 가고 맛기행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과 싸워서 이길 수 없을뿐더러 거역한다는 것이 귀찮고 마뜩치 않은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들이 ‘인생 뭐 있나, 즐겁게 살아야지’라는 삶의 철학을 체득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부동산, 교육, 국민연금, 양극화, 고용, 비정규직, 정치적 불안정 등 어느 것 하나 거치적거리지 않는 것이 없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미래 사회에 대한 불확실은 그들을 더욱 찌들게 한다. 이들의 가슴은 뻥 뚫려 있어서 황량하고 앙상하기만 하다. 미래가 바닥난 사회에서 오랫동안 외롭다 보니 감각마저 무뎌진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보장과 장밋빛 전망이 흥분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한미FTA를 들이밀어 일시적으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이 정확히 국민들의 급소를 자극한 노골적인 정치적 에로티시즘(eroticism)이다.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노무현 정권이 자신들의 자본을 통한 쾌락추구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국민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관능적인 사랑의 이미지로 한미FTA를 표출한 것이다.
위선과 거짓부렁이 정치
문제는 대통령 담화에서부터 드러났듯이, 정부의 한미FTA 홍보라는 것이 모두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마치 뭔가 큰 실익이 보장되는 것처럼 허황된 ‘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 체결의 숨겨진 의도를 드러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그 방향은 농업 및 국민들의 건강권을 포기하고 재벌들의 이해를 더욱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또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더 확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의료시장이 개방되지 않아서 아쉽단다. 한미FTA 반대론자들에게도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를 갖지 못한 비판이었으며, 특히 근거도 밝히지 않고 막연히 양극화를 주장해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작된 논리와 근거로 토론에 나섰던 세계적 망신의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의 주역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이제까지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화, 개방과 세계화로 인한 공공서비스의 파괴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상식을 대통령은 정녕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정부는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 100조원이 넘는 미국 조달시장의 문턱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제 우리 기업들이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2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의 맨 첫머리다. 현재 미국 조달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한 미군 시설 건설과 유지보수 등 5억 달러에 불과하다. 5일에는 개성공단 문제로 한미간 이견이 노출되어 논란을 빚자, 청와대가 “한미FTA 협정에 개성공단 명확히 포함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분명 전날 바티야 USTR 부대표가 “개성공단은 한미FTA 대상이 아니다”고 확언했는데도 고집을 부린다. 정치적 계산 없이 손해를 무릅쓰고 국가적 차원에서 한미FTA를 추진했다고 자신의 진정성을 주장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위선과 거짓의 정치는 단기적으로 성공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실패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지금 대통령은 너무 자신만만하여 미래의 장밋빛만을 역설할 뿐 예상 가능한 고통에 대한 대중의 호소는 도외시 하고 있다. 사회정치적으로 공론화하거나 소통시키는 것 자체도 봉쇄하겠단다. 그는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자신만의 독특한 이념에 매몰되어 이를 절대시하는 소아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참과 거짓 사이에서 흔들리는 단순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가끔씩 그리스 신화의 망각의 화신인 레테(Lethe)의 강을 건너곤 한다. 현재의 고통과 불안을 만든 장본인이 노무현 정권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어느 순간 망각한다. 바로 자신들의 급소를 제대로 찔러줄 때이다. 그리고 그 정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역설의 사회가 바로 현재의 한국사회이다.
노무현과 박정희를 비교하지 말라
이번 협상 과정을 보면서 1972년의 10월 유신을 자연스럽게 떠 올렸다. 시대착오적인 발상, 얄팍한 정세인식, 알량한 자존심, 권위주의적인 태도, 민주주의 무시 그리고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행태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2007년 4월 유신이라면 지나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역사의 비밀을 배웠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소한 박정희의 유신체제 그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통상독재이겠지만, 2차적으로는 관료독재,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초국적 기업과 독점 기업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끌고 나가는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우석훈, “노 대통령, 박정희 수준은 돼야 하지 않는가?”, 프레시안, 2007.4.4)는 분석이나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양보할 수 있다는 발상은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강조했던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연상시킨다”(전홍기혜, “노무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되다”, 프레시안, 2007.4.5)는 분석은 모두 적실하다.
그렇다. 한미FTA는 ‘노무현식 민주주의’가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계승한 결과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식 개발정책이 양극화의 뿌리”라고 지적했던 것이 진실이라면, 그의 한미FTA 전략은 양극화의 고착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정당화해주는 기제로 작용할 소지가 있어서 다소 위험하다. 박정희 정권의 성장우선주의, 차별정책, 불균형 정책과 일맥상통하지만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박정희가 항상 1위를 놓친 적이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정치사회적/역사적/학술적 평가가 이미 끝났다고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현재의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역사를 쓰고 있는 대중들의 인식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반동적 지배이념인 신자유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도 후대에 박정희처럼 역사적으로 평가받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절망․좌절의 정권과 제대로 맞짱 뜰까
협상이 타결된 현재도 미국에서는 노 정권에게 압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 쇠고기 등의 내용 수정과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들의 요구사항을 더 이상 수용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한미FTA 협상 체결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항상 사뭇 다른 반대편의 입장에 서 있다.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지금껏 협상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한국의 노동자 민중에게 두 번의 재앙을 안겨주게 되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FTA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먹을 수 있는 파이를 키우는 게임”이라면서 윈-윈 게임이라고 선전해 왔다. 자본을 유일한 가치판단의 척도로 삼는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과연 윈-윈 게임이 가능한가. 아마 지지기반도 허약하고 정치적 공간도 좁은 양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만 승리를 안겨다 주는 게임이 될 것이다. 패배의 상대가 바로 노동자 민중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분명한 점은 노동자 민중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한미FTA 협상을 통해서 존중의 대상인 노동자 민중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노무현 정권의 본질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확인하였다.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과 희망 대신 절망과 좌절만을 안겨주었다. 이제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감히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민중의 삶을 통째로 팔아넘긴 죽음의 협상을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신자유주의의 노예가 되어 미국의 수구노릇을 하는 현 정권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끔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 정권은 오늘의 치욕의 역사를 국민들에 의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깨우치는(擧一反三) 영리함은 아니더라도 둘을 알려주면 열을 잊어버리는 우둔함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노릇 해먹기 힘들다는 대통령이 이제는 제대로 해먹으려 할 것이다. 권력과 국민간의 진실한 대화가 필요한 이 시대에, 그 소통 구조를 내팽개친 노 정권과 계급장 떼고 제대로 맞짱 한번 뜰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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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인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