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믿지는 않았지만 막상 그들의 행태를 보니 부아가 치민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지만, 무엇을 작정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왕 짜증이다. 버럭.
2.13 베이징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논의들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일본만 납치자 문제를 가지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에 대한 강경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힘을 키워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한 협상용은 아닐 것이다. 다음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락해온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다시 납치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우파의 지지를 결집시키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종군위안부를 밟고 올라서려는 아베의 추락
이와 함께 ‘종군위안부’에 대한 ‘강제성’ 부인과 사죄를 거부한 발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역시 지지율 저하를 강경책으로 정면 돌파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지난 16-18일 실시해 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1달 전 조사 때 보다 6% 하락한 43%로 나타났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5%로 4% 포인트 상승했다. 이렇게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비비지율 보다 낮은 것은 2004년 12월 고이즈미 총리 내각 이후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강제로 위안부 여성들을 끌어들였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고 말한 데 이어 5일에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 하원의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의결되더라도 사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들이 미 의회에서 역풍을 일으키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자, 아베 총리는 12일 “고노 담화를 계승해간다. 당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분들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우리는 계속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고노 담화를 계승해 나간다는 것은 일관된 자세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하시모토 전 총리도 과거 위안부 여러분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냈다. 그런 마음은 나도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사죄할 마음은 없으며 과거 총리들의 마음을 내세워서 묻어가려는 것이다. “강제성의 증거가 없다”거나 “날조된 허구”라는 그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소신’을 바꿀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국 내 지일파 의원들조차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미 의회에서는 종군위안부 결의안(HR121)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과 유대 관계를 강화해온 오스트레일리아도 일본 정부 비판에 가세하고 나섰다. 캐나다에서도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종군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특히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를 다루는 자세나 방식, 정치적 의도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이 파생시킨 총체적 정세변동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 두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귀결된 뒤틀린 근대가 낳은 쌍생아이며,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는 근대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할 수 없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가는 현재진행형이다(한겨레, 3월 9일).
하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그것도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구두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생존자들을 귀향시키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온 몸으로 거부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것도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2.13합의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어느 한 실무그룹의 진전이 다른 실무그룹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에 다른 실무그룹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납치자 문제가 6자회담 합의 이행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비정상에서 정상으로의 모드 전환이 가능할까?
동북아의 냉전 모드가 탈냉전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그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평가한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일 것이다. 뒤틀린 그들의 역사인식과 현실 인식을 정상적으로 바꿔놓고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만드는 것이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도 1943년의 대동아공동선언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를 비롯한 극우들의 신념에는 과거의 조잡한 제국주의 욕망과 현재의 탐욕적 제국주의로 가득차있으며, 그것이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당시 일본의 파시즘 체제를 작동시키는 주체와 객체는 남성이었으며, 일본여성만이 ‘전사’를 생산하는 역할에 무게를 두었을 뿐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에게는 종군위안부 강제의 대상이며, 남편과 자식을 공출하는 자랑스러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어떠한 민족간에도 문명간에도 우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타자를 멸시하거나 소멸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일본에게 있어서 전선 바깥의 존재들은 식민지의 기생충 집단 또는 저급한 인종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의식이 오늘날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용되는 ‘일본’을 만든 것이다.
10년 전에도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기생집 문화에 빗대어 망언을 한 사람이 국가의 수반으로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북한을 극도로 증오하고 한국의 성장을 싫어하는 나라, 한반도의 통일도 원치 않는 나라, 미국 뒤에 숨어서 꼼수를 부리지만 틈만 나면 미국을 뛰어 넘으려는 나라. 그러면서 천왕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들의 미숙함과 용렬함은 동북아 평화 정착의 근간인 한반도 평화 정착에 커다란 걸림돌일 뿐이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공동체나 평화를 외친다면 스스로 동북아에서의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역사는 아무리 위대한 정치지도자라 할지라도 시대적 흐름에 역행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는데, 아직까지 일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이 자기도취에서 깨어나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일장기의 둥근 원이 인간들의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해주는 태양으로 보이지 않고 빨간 핏빛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