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투쟁’은 대단히 중요하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올바른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과 기념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 뿐이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고 올바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과 기념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형태와 방법에 대해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 맞선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식민과 독재의 역사에 맞선다면서 오히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닐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우선 두가지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국가주의적 방식에 대한 대응이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기억투쟁’은 결코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주의적 방식은 무엇보다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기념물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묘지나 전쟁기념관이나 독립기념관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기억투쟁’은 그 내용에서 달라야 할 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크게 달라야 할 것이다. 국가가 주체가 되어 추진하고 관리하는 거창한 공간과 건물을 짓는 것이 과연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기억투쟁’의 올바른 방식일까? 나는 이런 국가주의적 방식은 결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국가주의와는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주의도 거부해야 한다. 단순히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반생태주의에 대한 대응이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잘 가꾸어진 숲과 들을 밀어 없애고 거창한 시멘트 건물들을 짓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식민과 독재의 역사에 대한 기념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면, 그에 맞선 민주주의의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기념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자연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빌린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손의 것으로, 또한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요구와 특징을 올바로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 자체가 반민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공간이 반민주주의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요구를 올바로 읽고 그 흐름을 이끌고 갈 수 있는 공간의 건설을 추구해야 한다. 대규모 반생태적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민주주의를 내걸어도, 그 자체로 반민주주의적 사업으로 귀결될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오늘날 생태적 전환은 민주주의의 핵심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잘 닦인 포장도로와 대규모 시설이 아니라 자연이 원래 그대로 살아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과 기념관을 상상해 보자. 울창한 숲을 없애고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울창한 숲을 지키고 만드는 방식으로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을 만들자. 민주화운동은 나라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었다.
숲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숲을 지키고 만드는 것이야말로 민주화운동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한 올바른 방식이다. ‘민주화 숲’ 앞에 작은 마당을 만들고 그곳에 큰 나무를 세워 그 나무에 민주화의 역사와 주요 인사의 이름을 새기는 조촐하지만 의미깊은 반국가주의적이고 친생태주의적인 기념방식을 추진하자.
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관도 마찬가지이다. ‘민주화 숲’ 앞에 조촐한 친생태적 건물을 지을 수도 있고, 또한 기존의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기념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햇빛발전과 중수도 등의 친생태적 건물을 짓는 것을 뜻한다. 이 건물에서 지내는 것은 다소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친생태적 건물만이 시대의 흐름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부합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건물이다.
후자는 행정복합도시건설계획에 따라 비워질 여러 건물들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비워질 많은 건물들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인가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관도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 물론 기존 건물의 친생태적 개조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 나라에는 사실 이미 많은 각종 국가주의적이고 반생태적인 기념 공원과 기념관들이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 공원과 기념관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화운동은 그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식민과 독재의 세력이 거창한 국가주의적 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해 민주화세력도 거창한 국가주의적 공원을 만드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민주화세력은 기존 장묘문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수목장을 활성화해서 ‘민주열사’의 영혼이 깃든 도시 숲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정말로 올바른 것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