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주권이양 전야에, 과거에 사담 후세인의 장군들이었던 저항운동 지도자들이 그들의 비밀스런 입장을 잠시동안 포기하고 최근의 정세와 그들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 바트당 지도부들에 의하면, "최후의 결전"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미군이 전쟁을 준비한 반면, 우리는 전쟁 이후(post-war)를 준비했다. 그리고 6월 30일 주권이양이 우리의 목표를 전혀 바꾸지 못할 것이다. 미국이 임명한 새로운 임시정부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전혀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그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왜 이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은신하면서 기다렸을까?
"왜냐하면 오늘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기 때문에."
비밀접선
화요일 오후3시, 팔레스타인 호텔. 공식적인 요청 이후 일주일, 저항군과 면담할 가능성이 더욱 적어지고 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다. 그 순간 전에 만난 적이 없는 한 남자가 우리 테이블에 조심스레 접근한다.
"아직도 저항군과의 접촉을 원하는가?" 그는 이라크에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는 내 동료 아랍인 여기자에게 말을 건넨다. 대화는 간결하다. "내일 아침 바벨 호텔에서 만나자."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말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번 접촉은 이전의 시도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 같다.
수요일 오전9시, 바벨 호텔. 외국인 용병들이 득실거리는 인터넷 카페 입구에서, 전날 본 남자가 말한다. "내일 10시, 알사둠 거리, 팔레스타인 앞. 운전사 없이 오라."
우리는 목요일 아침 택시로 만날 장소에 도착한다. 접촉선이 거기에 있다. 간단히 "살람 아레쿰"이라고 인사한 후 우리는 그의 차에 올라탄다. "어디로 가는가?" 대답이 없다.
우리는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달린다. 바그다드는 군 검문소로 완전히 교통이 통제되지 않아도 언제나 교통체증이다. 지난 1년 간 30만대 이상의 차량이 밀수입되었다. 차량의 절반은 번호판이 없고, 대부분의 운전자들도 '운전면허'가 뭔지 모른다.
"곧 도착할 것이다. 바그다드를 잘 아는가?" 다른 남자가 묻는다.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사방으로 펼쳐진 도시에서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해선 마음대로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범죄 행위, 수없는 납치, 점령군에 대한 매일 50-60건의 공격, 미군의 무차별적 대응 때문에, 그렇게 돌아다닐 마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가 골목에서 멈추고, 근처에 창문을 가린 미니버스가 있다. 문이 열린다. 차안에는 세 명의 남자와 운전사가 있고, 운전사는 우리 주변의 거리와 집들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상황을 잘 모르지만, 안내인은 우리에게 말을 건 사람들을 아주 잘 아는 것 같다.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의 신분에 대해 의심을 갖기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먼지 쌓인 비닐봉지에서 문서를 꺼낸다. 신분증, 군번, 그리고 사담후세인 옆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몇 장의 사진. 그들 중 둘은 장군이고, 한 명은 대령이다. 이라크 군은 해체되어 현재 그들은 수개월 째 도피중이며, 연합군의 첩보대가 그들을 뒤쫓고 있다.
"우리는 서방 언론에 유포되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바로 잡고 싶다, 그것이 당신들과 만나기로 한 이유다." 우리의 대화는 세시간 이상 지속된다.
바그다드 함락 이전
"우리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기로 결정하면 미국의 첨단 군사력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전쟁은 이미 시작 전에 패배했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 후를 준비했다. 다시 말해, 저항전쟁을 준비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는 반대로, 우리는 2003년 4월 5일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에 진입한 이후에 도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라크의 명예를 위해, 사담 후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며칠 간 싸웠고, 그런 다음 우리는 해산 명령을 받았다. 4월 8일 바그다드가 함락되었고, 사담과 그의 군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리가 예상한대로, 전략지역은 미군과 연합군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우리로선 우리의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다. 점령에 대한 반대운동은 이미 조직되어 있다. 우리의 전략은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 급조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군을 완전히 따돌린 플랜 B는 2003년 3월 20일 이전에, '이라크 자유작전' 이전에 수년간은 아니지만, 수개월 동안 조심스럽게 준비된 것이다.
목표는 "이라크를 해방시키고 점령군을 몰아내는 것.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고, 미국에 의해 강요된 민주주의가 아닌 세속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라크는 항상 진보적 나라였고,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길 원치 않는다"라고 세 명의 군인이 말한다. 물론 지하 네트워크의 이름이나 숫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우리의 숫자는 충분하고,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은 것은 바로 자원병들이다."
팔루자
지난 3월 팔루자에서 일어난 미군에 대한 치명적 공세는 저항에 관한 한 전환점이었다. 수색 작전 중 미군이 자행한 무차별적 폭행과 바그다드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를 포함한 감옥에서 자행된 성적 학대는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이 느끼던 분노를 확대했을 뿐이다. "더 이상 미군에 대한 신뢰는 없으며,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항군 지도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것은 이틀 전에 만났던 한 시아파 여인의 관점과 똑같은 것이다. 그녀는 과거에 사담에 대항한 비밀 저항투사였다. "점령군이 저지른 최대의 실수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사회 기반 시설을 포격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사회제도와 우리의 존엄성을 파괴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을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 상처는 깊고 치유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외국점령의 수치 속에 사느니 차라리 우리 자신이 만든 테러 속에 살기를 원한다."
사담의 장군들에 의하면, "전쟁 시작 후 1년 넘게, 불안과 무정부 상태가 여전히 이라크를 뒤덮고 있다. 미군은 상황을 통제하지도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도 못했기 때문에, 민중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 저항은 수천 명의 활동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구의 75%가 우리를 지지하고 직간접적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전투원과 무기를 숨겨준다. 연합군과 협력자들에 대한 작전에서 민간인들이 불의의 피해를 입음에도 이렇게 우리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협력자'로 간주하는가? "점령군과 함께 일하는 모든 이라크인과 외국인이 타겟이다. 행정관료, 용병, 통역, 사업가, 요리사, 식모 등 협력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다. 점령자와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은 당신의 사망증명서에 서명하는 것이다. 이라크인이든 아니든, 이들은 모두 배신자들이다. 우리가 전쟁중임을 잊지 말라."
저항군의 위협으로 점령군이 제안한 정부 요직의 후보자 리스트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13년 간의 경제봉쇄와 두 차례 전쟁으로 황폐화된 나라에서 실업이 가장 중대한 문제인데도 이러하다. 단지 만연한 혼란 때문에 사람들이 직업활동을 재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약 미국이 상황에 압도되어 과거의 바트당원들(경찰, 비밀경찰, 군인, 석유관리)을 복직시켜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라크의 탈바트당화를 추진한 2003년 5월 16일자 행정장관 폴 브레머의 법령의 대다수 대상자들도 여전히 은신중이다.
저항의 네트워크
본질적으로 바트당원(수니파와 시아파)으로 구성된 저항세력은 현재 "종파, 민족, 정치적 차이와 관계없이 점령에 반대하는 전민족적 투쟁의 모든 운동"을 재조직하고 있다. "서구에서 상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라크에 동족 살해의 전쟁은 없다. 적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이 있을 뿐이다. 팔루자에서 라마디까지, 그리고 나자프, 카르발라, 바그다드의 시아파 지구를 포함해서, 전투원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젊은 시아파 지도자 묵타다 알-사드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라크 민중, 다양한 종파와 아랍의 단결을 원한다. 우리는 전술-병참의 측면에서 그를 지원한다.
모든 이라크 지역은 독자적 전투원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그룹은 자유롭게 목표물과 작전방식을 선택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행동은 점차 통합되어 가고 있다. 사담의 장군들은 이들 서로 다른 조직들이 한가지 점, 누가 가장 많은 수의 미국인을 제거하냐를 제외하고는 경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제 무기
"공격은 신중하게 준비한다. 공격은 20분 이내로 끝내고,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밤이나 매우 이른 아침을 선택하여 작전을 수행한다." 그들은 우리의 다음 질문을 기대한다. "우리에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5천만 정 이상의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있다." 사담의 주도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라크 전역의 실제 무기고가 은폐되었다. 중무기도, 탱크도, 헬리콥터도 없지만, 러시아제 카튜사 로켓포, 박격포(이라크인들이 haoun이라 부르는), 대전차지뢰, 수류탄발사기, 러시아제 로켓 발사기, 미사일, AK47소총, 상당량의 각종 탄약 등이 있다. 무기의 종류는 제한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인 무기는 가미가제식 자폭 공격이다. 90%의 이라크인과 10%의 외국 전사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에는 5000명 이상의 엄격하게 훈련된 남녀 전사들이 있다. 그들에겐 폭발물을 실은 차량을 운전하라는 명령만이 필요할 뿐이다.
보유한 무기가 줄어든다면? "걱정 없다. 한동안 우리는 스스로 무기를 제작했다."
이 모두 그들 스스로 밝힌 바다.
책임 소재
"그렇다, 우리는 지난 3월 팔루자에서 미국인 용병 4명을 처형했다. 미군은 시신을 치우기 전에 4시간을 기다렸다. 보통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틀 전에, 젊은 기혼여성이 임의로 체포되었다. 팔루자 사람들에게 이것은 최후의 통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네 구의 시신에 그들의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미국인들은, 살아있는 이라크 포로들에게 훨씬 더 나쁜 짓을 했다."
2003년 9월 22일, 외교관이자 이라크 과도통치 위원인 아킬라 알-하시미가 사망한 자살 공격 또한, 저항세력에 의한 것이다. 올해 5월 17일 녹색구역(저항공격이 많아서 이라크인들은 적색구역이라 부르는)의 입구에서 에제딘 살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의장이 차량폭탄 공격도 저항군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외국인 납치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외국인 납치가 우리 이미지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라. 우리는 우리 영토 내에 있는 사람들의 신원을 통제해야 한다. 그들이 인도주의자거나 기자라는 게 증명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놓아준다. 만약 그들이 스파이나 용병, 협력자라면 그들을 처형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명백히 보자. 우리는 참수된 미군 닉 버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
2003년 8월 20일, 바그다드의 UN 본부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 "우리는 UN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으며, 브라질인인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델로(공격 때 죽은 UN 특별대표)를 매우 존경한다. 그러나 이 자살공격의 기획이 다른 저항그룹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설명한대로,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견뎌야 했던 13년 간의 봉쇄정책에 UN도 책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그다드의 적십자사에 대한 2003년 10월 27일의 공격은? "이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적십자와 직원들에 존경심을 가졌다. 이라크 민중을 수년동안 도와온 소수의 단체를 공격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우리가 알기로 일부 팔루자 단체가 이를 주도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저항세력의 일부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치적-경제적인 이유로,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자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6월 30일 이후
"6월 8일 채택된 UN결의안 1546호는 수많은 이라크인들에게 강요되는 수많은 거짓말 중 한 가지를 더 보탠 것에 불과하다. 먼저, 결의안은 형식적으로 외국군의 점령을 종식시키면서도 철수일자에 대한 명기없이 미국의 지휘 하에 다국적군의 주둔을 허용한다. 둘째,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요구했던 중요한 군사행동에 대한 이라크의 거부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워싱턴은 이라크 당국과의 협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부여할 뿐, 불일치의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이라크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6월 30일 이후 미군의 이라크 주둔과 그들이 미 의회로부터 얻어올 구호금은 누가 실제로 이 나라를 통치하는지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나토의 역할이 가능하지 않은가? "만일 나토가 개입하면, 이라크인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미국이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라크인의 안녕을 바란다면, 사전에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저항군 장교들은 시계를 보면서 말한다. 늦은 시간이고, 우리는 허락된 시간이 한참 초과했다.
"지금 미군이 할 수 없는 것을 나토군이 나중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점은 서방 군대가 이라크인들에게 점령군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조지 부시와 그의 충실한 동맹군 토니 블레어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들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다. 위대한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바그다드의 해방은 멀지 않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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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릭스 드 라 그랑주(Alix de la Grange). 이 글은 <아시아타임스> 2004년 6월 24일자 기사이며, 캐나다 세계화연구소(http://globalresearch.ca/articles/GRA406A.html)에서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