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밀양송전탑 투쟁 시즌2, "굴하지 않는 인간정신 보여줄 것"

밀양대책위, 행정대집행 이후 투쟁 계획 발표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많은 투쟁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썰물처럼 빠져나간 파장(罷場) 이후의 시간 중에 벌어졌습니다. 송전탑이 우뚝 솟은 마을에서,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선 아래서도 어르신들은 살아야 합니다. 그때 ‘아무것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므로, 누군가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지난 6월 11일,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던 네 곳의 움막 농성장이 철거됐다. 8개월간 밀양 할매, 할배들이 자기 집 삼아 지키던 움막은 밀양시와 경찰의 신속하고도 정교한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뜯겨 나갔다. 몇몇 할매들이 알몸에 쇠사슬을 묶어가며 저항했지만, 경찰은 이를 말끔하게 진압하고는 V자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유유히 사라졌다.

압도적인 물리력, 그리고 처참한 패배. 이날의 행정대집행으로 한전의 송전탑 공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싸움은 완전히 끝난 것일까? 이것으로 송전탑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 무거운 질문 앞에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하고 있다.

  6.11 행정대집행이 있기 전 밀양 송전탑 127번 공사 예정지에 세워져 있던 움막 농성장. [출처: 비마이너]

대책위는 23일 공식 블로그(http://my765kvout.tistory.com)에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이라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하고 밀양 송전탑 싸움의 ‘시즌2’를 선언했다.

대책위는 이 글에서 밀양에 들어선 송전탑을 가리켜 “그것은 패가망신한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빨간딱지처럼 당신들(밀양의 노인들)의 사지육신을 조여들었다”라며 처참한 심정을 전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공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171건의 응급 후송사고가 일어났다”라며 “하루에도 수십 번 오고가는 헬기 소음이 불러일으킨 지옥 같은 신경증과 불면의 고통으로 아직까지 주민 33명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또 “밀양은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정작 밀양 주민들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는 가혹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이 싸움으로 인해 입건된 사안만 89건이고, 무려 70여 명의 주민들이 검찰조사를 거쳐 기소될 예정이어서, 벌금 폭탄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나긴 싸움으로 인해 마을 공동체는 반으로 쪼개졌고, 주민들은 결국 “지난 10년의 싸움은 대체 나에게 무엇이었나?”라며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책위는 “이 모든 짐을 왜 밀양 어르신들만이 떠안아야 합니까? 10년 투쟁의 뒷설거지를 왜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했던 어르신들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라며 “우리 사회가 밀양 어르신들을 함께 모셔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대책위는 “우리 사회는 남은 생애 내내 당신들을 괴롭힐 패배감, 외로움, 상실감을 치유해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라면서 ‘밀양 송전탑 시즌 2’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책위는 ‘밀양 송전탑 시즌2’에 함께해야 할 9개의 과제를 제시했다. 제시된 과제에는 7개의 마을 농성장을 새롭게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송전탑 공사 저지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혔다.

대책위는 또 6.11행정대집행 참사의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그간 진행됐던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묻고, 밀양 인권 침해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대책위는 송주법·전기사업법·전원개발촉진법 등 ‘밀양 송전탑 3대 악법의 개정 운동’과 고리1호기·월성1호기 등 노후원전 폐쇄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연대자와 주민들이 농산물을 통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은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을 연대자 시민들에게 판매하고 연대자들은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일손을 거드는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며, 오는 7월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으로 첫발을 내디딜 예정이다.
덧붙이는 말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