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기획연재](1) 여성살해, 여성의 죽음을 정치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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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여성살해(Femicide)’가 전 세계 곳곳에서 시시각각 여러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남아선호에 근거한 여아 살해나 여성 성기절제에서부터 명예 살인, 염산 테러,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통한 살해, 지참금 살해, 전쟁 상황에서의 여성 집단 살해, 이주 여성 살해, 성 노동자 살해, 그리고 폭력적 상황에서의 여성 자살까지 수많은 여성 살해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가부장체제의 영향 속에서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역시 여성 살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다.

또한 여성 살해는 가부장체제의 유지를 위한 남성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인 구조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수많은 레즈비언들이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폭력과 살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참세상>은 2013년 공동 행동의 날을 통해 전 지구적인 여성살해에 맞서는 것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여성살해의 맥락과 의미들을 함께 분석하고, 의제화하기 위해 <여성살해에 관한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기획연재]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연재순서

(1) 여성살해: 여성의 죽음을 정치화하기 (황주영/서울시립대학교)
(2) 여성살해의 지구지역적 현황과 맥락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3) 한국의 여성살해 현황(1) 가정폭력과 친밀관계에서의 살해 (란희/한국여성의전화)
(4) 한국의 여성살해 현황(2)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허오영숙/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5) 한국의 여성살해 현황(3) 성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살해 (밀사/성노동자권리모임지지)
(6) 여성살해를 중단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들 (고정갑희/한신대학교)




지금 여기

최근 몇 년 사이 언론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들을 보도해 댔다. 특히 장애여성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 및 살인 사건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정치인들은 이례적으로 한 목소리로 성급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형량 강화는 물론이고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사회적 합의나 공적 토론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나 언론, 대중 여론까지도 정작 어떤 여성이 어느 공간에서 누구에 의해 무엇을 이유로 살해당하는지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 한 국가의 주요 언론이라고 하는 매체들에서 알려주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노출이 심한 차림을 한 술 취한 여성이 밤늦은 시각에 어두운 골목에서 불우한 성장배경을 가진 싸이코패스에게 재수 없게 당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성폭력, 살해 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수원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과 같은 소위 ‘묻지마 범죄’의 경우 빈곤, 현대사회의 공동체 붕괴, 사회적 약자의 소외 등을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장애인 화재 사망사건, 해고노동자의 자살 등 직접적인 타살이 아닌 경우에도 사회적 차원에서의 살인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설명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최소한(언론에 보도된 경우만 조사함) 120명의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의 손에 살해당했다. 3일에 한 명 꼴이다. 또 한 연구에 따르면(강은영, 박형민, 2008) 1997년-2006년 사이 여성 피해자의 37.5%가 (현/구)배우자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남성 피해자의 경우 25.9%)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인 비율은 26.1%로 친밀한 관계인 경우보다 10% 이상 낮았다. 어둔 밤 흉흉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여성을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간주되는 가정이나 보호자로서의 남성이 여성에게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 피해자의 49%가 4-50대인데, 이는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결국 살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진 것임을 보여준다.(<한국여성의전화> 자료.) 이런 점에서 볼 때,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이 사건들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며 가부장제나 성차별주의 혹은 남성중심주의와 무관한 것도 아님을 가르쳐 준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처벌

살해로 인한 여성의 죽음에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살해 femicide”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있다. 다이애나 러셀이 1976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1차 <여성대상범죄 국제 재판>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공식화했다. 여기에서 러셀은 페미사이드를 “남자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여자들에 대한 혐오 살인”으로 정의했다. 이후 여러 페미니스트들의 개념 제안들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2001년) 여성살해를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이 여자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러셀은 여성살해가 여성에 대한 성차별주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폭력과 테러의 연속체의 가장 극단적 형태로 규정함으로써, 여성살해를 성정치학의 장 안으로 들여온다.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급기야 죽게 만드는 것은 남성의 권력이 피지배자인 여성에 의해서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제력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주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폭력과 그 폭력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여성살해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관력관계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질 래드포드는 여성살해가 “일종의 사형으로서 ... 성계급으로서의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 가부장제적 현상유지에 핵심에 있다”고 주장한다.(1992) 남성은 여성에 대해 가부장적 권력을 가진 지배자로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며, 또한 여성이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 처벌하기 위해서도 폭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한 사회의 성적 불평등의 정도가 높을수록 여성살해가 증가하지만, 다른 때에는 불평등이 완화될 때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증가한다. 말하자면 남성들이 자기 권력의 관할 구역이 줄어드는 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반여성적 폭력의 증감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살해가 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떤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지를 추적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여성살해의 사례들과 범위

여성살해는 보통 인도나 아랍권 국가에서 가부장제적인 전통이나 관습, 의례, 미신, 종교적 규범에 따라 여성의 목숨을 끊는 일들로 비교적 제한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여성살해는 소위 ‘미개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관습이 아니라, 각 국가와 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할 뿐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집단적인 학살, 현재나 과거의 남편 및 애인에 의한 살인, 남아선호에 의한 여아 살해(직접적인 살해 및 유기나 방치에 의한 죽음),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비전문적인 낙태로 인한 죽음, 연쇄살인, 가정폭력의 결과로 인한 죽음, 여성성기절제술에 의한 죽음, 강간이나 의도적으로 콘돔사용을 거부한 남성에 의해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경우, 소수인종 여성에 대한 살해, 결혼지참금 문제로 인한 살해,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가족이 죽이는 경우, 강간피해자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 등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은 갖가지 이유로 살해당하고 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살해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 의해 벌어지거나 구조 자체에 의해 벌어지기도 한다. 아래의 사례들은 그와 같은 경우에서의 여성살해에 대한 쟁점들이다.

여성의 여성살해: 물론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대체로 남성의 학대나 성폭력에 대한 자기방어가 그 목적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여성이 여성살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마가 여아를 무관심 속에 방치함으로써 죽게 만드는 것이나, 결혼지참금 문제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살해하는 경우들이 포함된다. 여성이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여성을 살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가해자들을 남성의 이익을 위한 대리 행위자, 공모자나 방조자, 혹은 가부장제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대리 행위자 정도로 보고 있다.

남아선호로 인한 여아낙태: 임신·출산·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은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쟁취하려고 애쓰고 있는 여성의 권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성감별 후 여아낙태를 여성살해로 인정하게 되면 태아를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이 제한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에서처럼 여아낙태가 남아선호사상과 인구정책이 결합되어 매우 대규모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이때는 여아낙태가 여성살해의 핵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아선호로 인한 여아낙태를 여성살해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살해: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는 이성애라는 규범과 젠더정체성이라는 규범을 위반한 죄로 비난, 폭력,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집단이다. 일반적으로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의 살해가 여성살해의 역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레즈비언에 대한 이른바 교정강간 및 폭력과 살해의 가해자는 이성애자 남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성소수자들이 살해는 그 특수성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별도의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여/성노동자의 죽음: 잘 알려져 있듯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다양한 위험에 처해있다. ‘윤락행위’라는 낙인으로 인해 혐오살인의 대상이기도 하고, 성구매자에 의한 구타․강간․살해 및 에이즈 감염에 의한 사망, 포주에 의한 폭력, 집단 거주지의 안전문제로 인한 화재 사망 등이 그것이다. 한편 이렇게 명확한 여성살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별분업에 따른 여성의 노동의 결과로 사망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던 여성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대체로 여성을 고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산업재해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여성살해로 볼 여지가 있다.

성폭력과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살: 성폭력이나 학대를 경험한 여성들이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이 죽거나 가해자를 죽여야 문제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는 폭력적인 양자택일로 내몰리고 있다. 이때의 자살을 단순히 개인의 비윤리적 선택으로 볼 수는 없다. 이는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자살이나 장애인 화재사망 사건을 ‘사회적 살인’ 혹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해 생각해볼만하다.

펼쳐보기와 초점 맞추기

미처 다루지 못한 인종, 국가, 계급, 종교, 장애여부 등에 따른 차이들과 특수성들도 여성살해 개념 정립과 유형화 및 사건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여성들의 소득이 낮을수록 여성의 살해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에서 흑인여성의 경우 소득의 고저는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의 노동이 가족과 흑인 집단을 부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성의 소득 증가가 흑인남성에게 위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보호와 도움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 차이들과 수많은 요인들을 하나하나 펼쳐놓고, 각각의 것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 극단적 형태인 여성살해의 발생에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살인사건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며, 여성의 살인사망률은 남성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살해의 동기와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점점 더 반여성적이고 성차별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성평등의 수준과 여성에 대한 폭력의 발생비율은 일관되게 비례관계인 것도 반비례관계인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여성살해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를 남성의 반격으로 설명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평등의 증대로 인해 위협을 느낀 남성들이 권력 유지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는 이 반격이론의 증거들이 자주 그리고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된장녀, 꼴페미, 김여사, 보슬아치 등으로 세세하게 분화하여 경멸적인 이름표를 붙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보여주는 남성들의 분노,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지금은 인터넷상의 언어적 폭력으로 나타나지만 언제 어디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그리고 여성의 살해로 전개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여성살해는 1970년대 중반에 제기되어 지금까지 꾸준한 논의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중심의제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여성살해를 경험한 피해자 여성 자신의 목소리가 생존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 갖는 보편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성의 살해가 갖는 젠더화되고 반여성적이며 여성혐오적인 특성이 은폐되는 한편 상당히 예외적인 개별 사건으로 치부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강간과 살해로 대표됨으로써 가정과 일터를 비롯한 온갖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들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더 컸을 것이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 때문에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문제설정을 하고 담론과 운동을 만들어 가는 작업을 미룰 필요는 없다.

* 참고자료:
강은영, 박형민,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범죄자를 중심으로>, 2008.
<한국여성의전화>, “2013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 및 언론보도 분석”, http://www.hotline.or.kr.
Diana E. H. Russell, Jill Radford, Femicide: The Politics of Woman Killing, 1992.
Diana E. H. Russell & Roberta A. Harmes, Femicide in Global Perspective, 2001.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여/성이론>에 실릴 예정인 글의 일부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논의는 곧 출간될 <여/성이론> 제28호의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