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다시 보는 현대차 비정규직 25일 공장 점거투쟁

[포토] 불법파견 투쟁 의지 보여줬던 추위와 굶주림의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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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으로 가는 계단. 농성장 아래 1층은 정규직들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비정규직들은 25일 동안 정규직으로 가는 계단 아래로 내려갈 날을 꿈꾸며 잠들었다.

2010년 7월 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 씨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 받은지 1년 반만에 다시 대법이 이를 확정했다.

최병승 씨가 2년 이상 불법 파견으로 일했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판결이다. 처음 지방노동위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한 지 7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2010년 대법 판결은 현대차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한줄기 희망이 됐다. 그리고 그해 겨울 초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차 울산 1공장 2층 CTS(도어 탈착) 공정라인 점거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1공장 의장라인은 완전히 멈췄다. 대법원 판결이 났으니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현대차의 정규직 사원임을 인정하고 비정규직 노조(지회)와의 교섭을 통해 정규직화를 하라는 요구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일 농성 몇 일째를 바꿔갔다. 농성은 다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25일로 멈춰 섰다.

  농성 둘째 날인 11월 16일 밤. 급작스레 들어온 농성이라 농성장에선 그 흔한 은박매트 하나 없었다. 신문지와 비닐 등을 깔고 잤다.

  준비된 공장 점거가 아녔던 탓에 농성 초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닐을 덮고 잤다.

아쉽게도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25일 동안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공장 점거 투쟁은 패배로 끝났다. 당시 정규직 노조의 교묘한 농성해제 압박에 지친 비정규직들이 회사와의 제대로 된 교섭도 열지 못하고 농성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 노조 주요 간부들과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막대한 손해배상과 수배, 해고, 징계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비정규직 노조는 계속 비대위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농성 초기 매일 아침 화장실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농성이 장기화 되고 먹는 양이 줄어들자 화장실 줄도 따라서 줄어들었다.

  2010.11.19 오전

  11월 18일. 농성장 진입을 시도하는 사측과 이를 막으려는 정규직 현장활동가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이 다시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노조를 정비하고 투쟁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참세상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지난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진행됐던 현대차 울산 1공장 점거 투쟁 당시 사진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돌아본다. 울산노동뉴스, 미디어충청, 참세상은 당시 합동취재팀을 꾸려 울산 공장 점거 투쟁을 기록했다.
  2010.11.19 오전

  2010년 11월 19일 아침

  2010.11.19 아침

  2010년 11월 20일 1공장장 농성장 진입

  1공장장은 구사대 호위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내면서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기 시작했다.


  1공장장 진입 잠시 소강상태

  이경훈 당시 현대차 정규직 노조 지부장(왼쪽)과 이상수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 이경훈 전 지부장은 이상수 지회장에게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반말을 했다.

  아침, 저녁 결의 대회가 진행 되면 2층에 있던 농성 조합원들이 난간에 모였다.


  농성 조합원들에게 들어온 협박 문자




  조합원들은 옹기종기 모여 넷북이나 핸드폰으로 주요 뉴스나 드라마 등을 함께 봤다.



  2010년 11월 23일. 야간 결의대회.

  11월 26일 밤. 회사 쪽 몰래 농성장에 들어온 조합원이 몸에 테잎으로 담배 수십 갑을 붙여서 들어오자 조합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11월 27일

  농성 13일째 김진숙 지도위원의 교육이 있었다. 이경훈 정규직 노조 지부장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교육이 정규직 노조 허락도 없이 이뤄졌다고 김 지도위원을 쫓아내다시피 밖으로 보냈다. 교육이 끝난 김진숙 지도위원은 조합원들과 변변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11월 29일. 농성이 장기화 되자 지친 조합원들을 위한 간식 배분 가위바위보

  동료 조합원의 아버님 제사를 준비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

  12월 1일. 그새 12월이 됐다. 매일 열리는 농성 조합원 결의대회. 목장갑이 인상적이다.


  2010.12.02 아침 겸 점심. 식사반입량이 줄어들자 생라면을 배급했다.

  2010.12.02. 오후 6시 27분. 회사 쪽의 단전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 후레쉬 불빛을 비추며 간만에 들어온 쌀밥을 먹었다.

  농성이 장기화 되자 한 정규직 조합원이 회사 몰래 핫팩 등을 다리와 몸에 청테잎으로 붙여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12월 4일 회사의 포크레인 공격. 분노한 한 조합원이 조그만 창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맞섰다.


  회사가 포크레인 공격을 하자 창문에 매달려 공격을 중단하라고 소리치는 조합원들


  회사는 12월 초 공장창문을 부수기 쉽게하기 위해 포크레인에 H빔을 달았다.

  12월 5일 아침. 농성 21일째.


  12월 6일 오전. 농성장 풍경.

  2010.12.06 오후 단전된 공장 안


  12월 6일. 농성 장기화에 대비한 농성장 잠자리 유지보수.

  12월 6일 사수대가 농성장 계단을 지키고 있다.


  12월 8일 농성 해제 전 날. 농성해제를 예감한 조합원들이 어둠속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회사는 시시때때 농성장 단전으로 비정규직들을 압박했다.

  2010.12.08. 1공장 1층 라인에 투입된 대체인력을 바라보고 있는 조합원

  12월 8일 오전. 농성일자를 기록한 달력. 농성을 해제한 12월 9일 부터는 X자 표시가 없다. 농성해제 10여일 뒤인 12월 18일까지 화장실 청소 조를 표기해 놨다. 크리스마스가 낀 주엔 집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달력 뒤로 아침 해가 스며든다.

  12월 9일 아침. 8시 27분의 농성장. 농성 해제를 결정할 가능성이 큰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한 농성자가 담배를 피고 있다.

  농성장 입구. "나가면 남아있는 동지 다 죽는다". 농성 해제냐 유지냐를 두고 조합원들의 토론이 이어지자 노조에서 나가도 함께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붙여놨다.

  2010.12.09 오전. 나는 정규직이다.


  이경훈 정규직노조 지부장이 농성해제를 결정한 비정규직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농성해제를 결정하고 내려가는 조합원들.

  농성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내려가지 직전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농성 조합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박점규 전 금속노조 교섭국장(오른쪽)과 1공장 대표(왼쪽). 박점규 전 국장은 금속노조에서 파견돼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했다. 그는 농성이 끝나고 '25일'이라는 르포집을 냈다.

  농성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김미진 대의원이 농성장 입구에서 농성장을 나가는 조합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2010.12.09 오후 3시 41분. 1공장 건물 밖으로 나온 조합원들. 25일 만에 맞은 공장 밖 햇볕.

  정규직으로 가는 계단 위로는 언제 올라갈 수 있을까

  • 사가지

    왜 이리도 눈물이 앞을 가리나! 동지들 사랑합니다. 투쟁!!!

  • 투쟁

    가슴이 찡합니다. 사람무시하는 이경훈 얼굴보이구요 고생하신 전지회장님 얼굴보이구요 그때 정말가슴아팠습니다. 지금도 눈물나려하네요.. 종이조합원절대 안됩니다.

  • 쌍용차지부

    동지들이 희망입니다. 동지들의 투쟁이 담긴 사진을 다시 보니 가슴이 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