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고교 안에서 실제로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얼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축복 속에 꽃피는 아름다운 첫사랑…은 분명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로맨틱하지 못한 국가다. 그럼 무엇일까. 현재 고교 학칙에 근거해 볼 때 이들의 가장 현실적인 미래는 이런 거다.
▲ MBC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의 한 장면 |
이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네? “불건전한 이성교제(어깨동무, 팔짱끼기:15점, 껴안기, 기대기:30점, 무릎에 앉기, 뽀뽀:50점)로 풍기를 문란하게 한 행동”이므로 벌점 15점(부산정보과학고.
▲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한 장면 |
이성의 어깨에 기댔어? 역시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풍기를 문란하게 했으므로 벌점 30점(부산정보과학고).
▲ 영화 '어린 신부'의 한 장면 |
헉, 결혼을 해? 퇴학이다.(결혼 또는 결혼과 동일한 상태에 있는 자는 퇴학:부산성심보건고)
특별한 몇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중고교에서 이같이 남녀 학생 간의 연애를 학칙으로 ‘금지’하고 있다. 구체적인 행위마다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16일 정동 프란체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청소년 ‘연애 탄압’ 실태와 사례를 발표하며 청소년의 사랑할 자유를 요구했다.
이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의 경우 연애나 성행위에 관해 징계, 처벌 규정을 가지고 있는 중학교는 16개 중 14개교, 고등학교는 총 16개 중 12개교로 관악구 중고교의 81.3%가 학칙상 학생들의 연애를 규제하고 처벌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들도 유사했다. 같은 방법으로 조사했을 때 경기도 화성시의 경우 86.7%, 부산시 고교의 경우 83.8%가 이에 해당됐다.
중, 고교 학칙 중 이성교제를 제한하는 조항들
서울 광신정보산업고
제25조 [풍기문란에 관한 선도]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학생은 교내봉사 이하의 선도에 처한다.
2. 교내에서 이성과 손을 잡고 다니며 풍기를 문란시키는 학생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학생은 사회봉사 이하의 선도에 처한다.
4. 이성을 교내에서 껴안는 행위를 한 학생
7. 기타 풍기문란에 관하여 사회봉사 이하의 선도가 요구되는 학생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학생은 퇴학 이하의 선도에 처한다.
3.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학생
5. 기타 풍기문란에 관하여 퇴학 이하의 선도가 요구되는 학생
경기 남양주 오남고
제18조 [양성평등 및 이성교제]
교내에서는 이성간의 예절을 지키고 건전한 교제를 한다.
남녀 학생의 만남은 항상 개방된 장소를 이용해야 하며, 입맞춤이나 포옹 등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경기 수원 매탄고
제110조 [이성교제]
남녀 학생 간에 손을 잡거나 신체접촉을 하는 등 학생신분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한다.
아수나로는 이날 청소년들이 직접 경험한 ‘연애 탄압’ 사례도 발표했다. 이중에는 학교에서 키스를 하다 교사에게 발각돼 부모님이 학교에 소환되고 남학생은 체벌을 받은 사례(수원C고), 연애 중인 것이 세 번 발각돼 남학생은 다른 지역 고교로 전학조치 되고 여학생은 자퇴를 한 사례(인천I고), 교사들이 ‘윤리거리’라는 것을 만들어 남녀 간 50cm 이상의 거리를 유지케 하는 웃지 못할 사례(안산D고)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사랑하는 감정, 성적인 행위와 마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학교들은 때로는 입시공부, 때로는 학생다움을 내세우며 학생들의 사랑과 성을 금지하고 처벌하기에만 급급하다”며 “사랑은 19금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민다영 아수나로 활동가는 “연애가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를 따지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입시를 아무것에도 방해 받아서는 안 되는 제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이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감정을 탄압하는 원인으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사회가 10대를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연애 탄압도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소년들의 성을 금지하거나 훈육, 훈계하거나 유예하는 방식으로만 해결하고 있는 것이 소통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라며 “사회가 해야 하는 것은 청소년의 성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어떻게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러한 성 경험이 자기에게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얘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사랑이 ‘19금’이 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교육청, 학교들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학칙들을 폐지할 것과 △학교와 가정에서 실효성 있고 인권적인 성교육을 실시할 것 △임신, 출산을 한 청소년이 출산,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사회적 지원을 할 것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