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계기로 촉발된 경향신문과 민주노동당의 논쟁에 여러 학자와 평론가들이 가세하면서 논쟁이 진보진영 전체로 확산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사평론가 유창선과 역사학자 김기협이 민노당 편에 섰다. 한편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또 한편의 글을 올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유창선, “경향의 민노당 비판은 색깔론”
시사평론가 유창선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경향의 민노당 비판을 ‘진보판 색깔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옹호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북주의’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정당은 주요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밝힐 책임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전략적 고려 하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을 권리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향의 민노당 비판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빚은 일종의 폭력”이며 “결국 <경향>의 민주노동당 비판은 진보정당의 분열을 낳았던 소모적인 종북주의 논쟁을 재연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논쟁 자체를 평가절하 했다.
김기협, “권력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싱가포르의 예를 들어 권력세습 그 자체가 ‘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9일 프레시안에 게재된 글 “<경향신문>과 이대근 씨! 권력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요” 에서 “싱가포르에서는 권력이 분명히 세습되었지만 싱가포르 주민들의 삶의 질은 아시아 최고”라며 싱가포르를 “자유와 삶의 질이 엄격하게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추켜세웠다.
그는 또 “‘권력 세습’에는 비용 절감의 효과가 분명히 있고 비용 절감을 위해 주민의 권리와 자유에 얼마간의 제약을 가하더라도 그 제약이 공평하고 공정한 것이라면 그리 큰 불만을 일으키지 않을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총체적 난국을 겪는 사회인 지금의 북한 사정으로는 적합한 권력 승계 방법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김기협은 문명 발생 이래 대다수 인류가 역사의 대부분 기간을 통해 겪어 온 권력세습은 근대 세계에서 사회·경제·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사라졌으며, 특정 사회의 조건에 따라서는 그 존속이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음에도 “이것(권력세습)을 절대악처럼 내거는 것은 북한의 문제를 모두 북한 자체의 책임으로 몰아붙이는 대결주의자들의 프로퍼갠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대근, “민노당아, 북한 지배세력보다 북한사람들의 이익을 중시해주라”
이처럼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9일 밤 자신의 블로그에 한 편의 글을 더 올렸다. ‘이정희 대표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글로, 8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당 게시판에 올린 글(“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 대표의 글을 읽고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더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운을 뗀 그는 “비판하지 않는 것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단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희 대표가 “3대 세습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남북관계 악화, 갈등 상황에 대한 우려를 들었”지만 오히려 3대 세습 비판을 통해 “민노당이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든지, 한국 진보세력의 대표로서 제역할을 다하고 있다든지, 시민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민노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그만큼 정치적 역량이 증대되고, 남북관계에 관한 민노당의 발언권도 제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바람직한 대북 태도로서 금강산 방문의 예시를 든 것에 대해서도 “남한은 금강산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북한의 기준으로 북한을 대한다는 것은 예외적이거나 그럴 필요가 있을 때 갖춰야 하는 것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정희 대표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한 데 대해 “민노당은 (대변인 논평, 새세상연구소 논평, 그 연구소 간부의 토론 등을 통해)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3대 세습을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충분히 토론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글 전체를 통해 “진보의 정체성이 의심받더라도 북한을 두둔해야 할 그런 정당이 진보정당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이 논설위원은 민노당에 대한 당부의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바라건대 민노당이 북한 지배세력의 이익보다 남한 시민들의 이익, 북한사람들의 이익을 더 중시해주기를 당부합니다. 3대 세습비판으로 북한과 마주 앉을 때의 불편을 그토록 깊이 생각하는 만큼 민노당이 3대 세습을 두둔하는 당으로 인식된 채 시민들과 마주 앉을 때의 불편에 대해서도 걱정해주기를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