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강경하다는 개혁언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점거 농성 76일째. 정부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개입하기는커녕 사측과 함께 공권력으로 농성 노동자 진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경찰이 언제 농성 노동자들을 끌어낼 것인가에만 집중하며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며 <한겨레>, <경향> 등 개혁언론들까지 들고 나선 것이 노조가 '강경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수수방관과 사측의 일방적 협상결렬 선언도 문제지만 노조가 정리해고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5일자 사설에서 “특히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면, 노조는 별 실익도 얻지 못하고 쌍용차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정리해고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며 “우선 회사를 떠나더라도 재취업 약속이 지켜질 수 있다면 일정 수준의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향>도 이날 논설에서 “노조 측도 ‘총고용 보장, 정리해고 철회’라는 당초 요구에 지나치게 얽매여 한발도 물러서지 못했다”며 “사측의 압박에 몰려 운신 폭이 좁아진 노조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는지 의문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쌍용차지부는 파업에 들어가며 조합원들과 약속했던 ‘총고용 보장’의 약속을 이미 지키지 못했다.
쌍용차지부는 지난 2일 교섭상황을 보고하며 “노조는 이미 2646명의 구조조정안에 따른 정규직 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포함해 2천 여 명이 실직으로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상황에서 총고용을 지키지 못했음을 뼈저린 상처로 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측은 70% 이상의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했으며 노조가 임금동결, 복지혜택 중단, 분사일부 수용까지 했음에도 이제 최후까지 남은 7백 여 명의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항복과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스로 평가하듯이 “뼈저린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쌍용차지부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경찰이 하늘에서 매일같이 최루액을 떨어뜨리고, 사측은 쇠파이프를 든 용역직원들을 투입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채권단은 파산신청으로 압박하는 등 모두가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이탈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쌍용차지부의 선택은 강경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강경’한가
문제는 사측과 정부의 태도다. 사측은 교섭에서 정리해고가 아니면 답이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집했으며 강성노조가 기업의 회생을 힘들게 한다는 논리까지 들고 나왔다. 교섭에서 노조는 농성 노동자 전원의 ‘6개월 무급 휴직’이라는 양보안까지 냈으나 사측은 50%만 무급휴직, 나머지는 정리해고 해야 한다고 했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사측은‘죽은 자’로 불리는 정리해고자 2646명 중 390명만 무급휴직으로 목숨을 부재하도록 하고 2256명은 정리해고 하겠다고 고집한 것이다.
사측은 정리해고를 고집하며 노조의 양보안을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쌍용차 법정관리인이 언급한 ‘청산형 회생계획’은 파산절차와 동일 해 정리해고에서 벗어난 ‘산 자’의 고용마저 불안하게 하고 있다. 파산이 될 경우 노동자들은 3개월 임금, 3년 치 퇴직금과 재해보상금 만 받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 파산이 선고될 경우 회사 청산 내지 파산에 따른 고용관계 종료로서 해고의 당부를 다툴 여지도 없다.
쌍용차 회생에는 관심 없는 이명박 정부
정부의 태도는 ‘기획파산설’까지 불러오고 있다. 노동자들은 위험 물질로 가득 찬 도장공장 점거라는 극단의 선택을 통해서라도 ‘함께 살자’며 회생방안을 고민했지만 정부는 쌍용차를 쓸모없는 기업 취급 했다. 정부는 최근 공공연히 쌍용차 파산 이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1차관은 지난 달 “시장 점유율이 2~3%밖에 안 되며 쌍용차의 생산차종인 고급차, SUV 분야에서 경쟁 압력이 조금 낮아지는 정도가 될 것”이라며 쌍용차 파산에 따른 악영향을 축소하기 급급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당장 생산에 들어가도 생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민주노총과 자동차산업회생범대위는 “정부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부동산 담보대출로 자체 조달하려는 회사의 움직임마저 봉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밝혀진 지식경제부의 ‘국내 5개 자동차업체를 3개로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애초부터 쌍용차 회생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 3월 보고서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재편 전망과 시사점’에서 미국의 GM, 프랑스 푸조 등과 함께 쌍용차를 언급하며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라며 군불을 지폈다.
민주노총 등은 “이미 관가에서 ‘쌍용차 기획파산설’이 흘러나온 지 오래”라며 “하반기 본격화 될 부실 기업 정리를 앞두고 쌍용차 공적자금 투입이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공공연히 언급되었으며, 청와대에서도 노조에 밀려 정리해고를 철회할 경우 기업 구조조정 원칙이 흔들린다는 점을 수차례 걸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입장이 없다면 법정관리인과 담보채권장인 산업은행이 파산을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태의 책임은 파산을 공식화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이명박 정부와 교섭 결렬 직후 청산형 회생계획안을 발표함으로써 사람 죽이기 식 구조조정이 아니면 ‘파산’이라는 법정관리인 측의 ‘극단적 사고’에 있다. 용산과 쌍용차에서 보여준 경쟁을 위해 약한 사람들의 죽음은 불가피하다는 MB식 사고가 아니라 어렵더라도 ‘함께 살자’는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