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고한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초안 발표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전기본은 15년을 계획 기간으로 하여 2년마다 수립된다. 지난 10차 전기본은 2023년 1월에 발표되었지만, 정부는 11차 전기본 수립을 서둘렀다. 이미 작년 7월에 전기본 수립 총괄 위원회를 개최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연말부터는 전기본 실무안이 곧 공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언론은 이번 4월 총선 직후에 발표될 것으로 보도했지만, 여당의 총선 패배 여파로 실무안 발표는 더욱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무안이 공개된 후에도 전략 환경 영향 평가, 관계 부처 협의, 공청회, 국회 상임위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전기본 수립은 연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기본 수립을 서둘렀던 이유는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 결정을 되돌릴 수 없는 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탈핵 정책'을 뒤집어 핵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자신의 행태에서 스스로 교훈을 얻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결정 등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과연 탈핵 정책을 추진한 것인지 맞는지 이견이 존재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핵발전소 확대를 명백히 밝히며 앞선 정부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가능한 한 빨리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방침을 법정 계획에 명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임기 내에 부지도 확정하고 공사까지 시작하려고 할 것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최소 핵발전소 2기의 신규 건설을 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다. 정부 내 쟁점은 추가로 1-2기를 더 계획에 반영할지, 그것을 소형원자로(SMR)로 지정할지 여부에 있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확대 정책 때문에, 이번에 11차 전기본에서 최대 관심사는 신규 계획되는 핵발전소가 어느 정도인가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외에도 따져 봐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우선 전력 수요는 얼마나 늘어날지부터가 관건이다. 지난 10차 전기본부터 늘어가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도래하는 AI 기술의 전력 폭식 가능성이 차기 전기본에도 반영될 것인데, 그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차분히 물어볼 일이다. 탈물질적 IT 기술이 지구를 구하라는 장밋빛 전망이 점차 사기극으로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삼성 등이 구상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0GW 규모의 전력 수요가 필요하다는 전망이 차기 전기본에 어찌 반영될지도 주목할 일이다. 정책 결정 최우선에 놓이게 될 '삼성'과 '반도체'의 전력 수요 증가는 전기본 안에서 여러 핵발전소와 LNG발전소, 그리고 수많은 송전선과 송전탑 계획에 담길 가능성이 높다. 진지하게 묻는다. 대규모 전력 수요가 요구되는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이윤 추구를 위해 끝없이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는 자본/기업의 탐욕으로 자연과 지역주민 착취가 강요되는 현실을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편 핵발전 이외의 다른 발전원들은 어찌 될 것인지도 관심을 놓을 수 없다. 가동된 지 30년이 지난 석탄발전소의 폐쇄 결정이 계속 유지되면서 석탄발전의 비중과 설비용량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막아내지 못했던 삼척 석탄발전소 가동은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아마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은 이후로 추가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일명 '탈석탄법'이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허가를 금지하도록 했지만, 사실상 폐기되면서 상황이 불확실해졌다. 11차 전기본에서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탄소 포집 저장(CCS) 설비를 장착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반영하려는 시도는 분명 나타날 것이다.
11차 전기본에서 LNG발전의 설비용량은 10차에 비해 더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후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LNG발전소를 대체 건설하기로 하면서 현재보다 LNG 발전설비 용량이 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것 이외에 새로운 LNG발전소 건설 계획이 포함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높은 발전단가로 인해 이용률이 낮은 LNG발전을 더 많이 가동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한편 노후 석탄발전소를 대신하는 LNG발전소 건설 계획 중에서 아직 부지가 확정되지 않은 것들의 향방은 불확실해지고 있다. 지난 전기본에서도 거론되었던 수소와 천연가스의 혼소 발전과 암모니아와 석탄발전소 혼소 발전에 대한 구상이 진전되면, 기존 LNG 발전 건설 계획도 함께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차 전기본 수준을 유지한 채, 더 빠르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핵발전소에 의한 감축 전략이 결합된 결과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계획된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의 확대 자체도 만만한 과업이 아니며, 여러 쟁점을 수반한다.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의 개발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발전 입지를 둘러싼 갈등, 재생에너지 간헐성과 변동성에 대비하는 에너지저장 설비의 확충, 특히 양수발전을 둘러싼 갈등, 전남 등의 남부 지역에 집중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수요지를 연결하는 수많은 송전선로의 확충과 그에 따른 갈등 등이 예고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전망이 주로 에너지원의 변화 차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추가해서 검토해야 할 차원들이 있다. 우선 지리공간적 배치의 차원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며 저항한 밀양 주민들의 투쟁으로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이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되면서, 발전설비의 규모와 지리적 배치 문제가 전기본 속에도 검토되기 시작했다. 주로 LNG와 재생에너지 발전에 초점을 두어, 수요지 인근에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발전설비를 배치하겠다는 분산 전원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을 기술적 측면에서만 주목하면서 소형원자로(SMR)마저 포함하거나 에너지 민영화의 예외적인 공간을 허용하려고도 한다. 에너지전환이 에너지원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것을 규율하는 권력 구조의 변화까지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려했을 때, 지리공간적 배치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발전설비의 소유와 운영 차원에서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발전설비의 약 40%를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미 발전산업의 공적 소유는 상당히 무너진 상황이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에너지 민영화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폐쇄되어 축소될 석탄발전 설비의 대부분은 발전 공기업이 소유한 반면, 확충되고 이용률도 높아질 천연가스 발전과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상당수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전기본은 계획에 반영하는 발전설비의 소유자를 분별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민영화를 둘러싼 논쟁과 쟁투는 전기본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에 한전의 발전설비 투자를 계획하기 위한 기술 관료적 계획에서 출발했지만, 우회적으로 에너지 민영화를 소리 소문 없이 추진해 온 정부의 전략 때문일 것이다. 11차 전기본부터는 반영된 발전설비의 소유자를 명확히 물어야 하며, 공적으로 소유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핵발전 산업만은 전적으로 공적 소유로 남아 있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에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기왕에 건설된 핵발전소의 안전한 관리와 체계적인 폐쇄를 위해 공적 소유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공적 소유 아래에서 더 저돌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사회적 통제 밖에 놓인 공적 소유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현 체제의 지배 세력들은 기업과 자본의 지속적 생산 활동과 이윤 추구 보장에 필요한 안정적 전력 공급을 이유로 공적 소유의 핵발전 산업에 동의할 수 있겠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입장이 곤란하다. 공적 소유로 지원되고 보호되는 핵발전 산업을 차라리 민영화하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공적 소유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재구성하여 핵발전의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자고 주장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