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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통의 서면시장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연속 기고②] 서면시장에서 생긴 작은 노조가 말하는 희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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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씨가 예전에 일했던 건설 현장은 주로 남성 노동자들만 있었고, 물량 도급을 받아서 일했던 곳이다. 사장이라고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노동자들은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았다. 월급을 제때 주지 않거나 연장근무 수당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으면 작업을 중단해 버려서 사장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약속한 날짜가 지켜지지 않으면 연장을 챙겨서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건설노동자는 미련 없이 다른 현장을 찾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서면시장은 달랐다.

김태경 씨가 서면시장번영회로 출근하고 마주쳤던 것은 번영회 회장단이 사무실 여성 노동자에게 욕하는 모습이었다. 말로만 듣던 ‘인권침해’ ‘여성차별’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져 충격을 받았다. 회장단은 여성 노동자에게 ‘야’ ‘니’ ‘저게’ 등의 반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회장단이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가 심각하게 여겨졌다.

“여동생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동생을 잃은 충격에 잠깐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 곳이 서면시장번영회였어요. 여성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걸 처음 봤는데 그걸 보니까 내 동생이 저렇게 당한 게 아닐까, 내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 쓰지 못했던 게 후회로 남더라고요. 남 일 같지 않았던 거 같아요.”

회장단의 무시는 여성만 향하지 않았다. 김태경 씨를 부르는 반말도 자연스러웠다. 회장단의 기분에 따라 직원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했다. 저녁 6시는 직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회장단이 술을 먹는 날이면 술과 안주를 사 들고 올라와서 태경 씨를 붙잡았다.

“너도 한잔해라, 하는데 저는 술을 안 먹어요. 그런 데 끼는 것도 되게 싫어했거든요.”

태경 씨가 퇴근 준비를 하는데 허진희 씨가 퇴근하지 못한다.

“왜 퇴근 시간인데 안 가냐고 하면 회장단이 먹고 있는 거 다 치우고 가야 한다는 거예요. 못 나가고 눈치를 보고 있는 거예요. 9시든, 10시든 남는다는 거예요.”

사무직원만 차별받는 게 아니었다. 시장 도로변에 주차장을 관리하는 주차요원들의 점심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다. 주차요원들은 밥을 먹을 곳이 없어서 길 위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밥상 삼아 밥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도 주차 손님이 부르는 소리에 뛰어나가야 했고, 플라스틱 의자가 넘어지는 바람에 밥그릇을 엎어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녔다. 밤 9시까지 근무하지만, 야간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했다. 임금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태경 씨는 그냥 보아넘길 수가 없었다. 서면시장 내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회장단에게 말해보지만, 돌아온 대답은 무시였다. ‘모른 척해라. 이때까지 다 한 거다.’ 회장단의 비난이었다. 또다시 ‘직원 탓’이었다.

“진희 동지가 제게 자꾸 그러면 총무님만 불이익을 받는다고 걱정하더라고요.”

회장단의 비리는 상인들에게 피해를 줬고, 인권을 무시하는 회장단의 갑질은 직원과 상인들 모두를 힘들게 했다. 김태경 씨는 외면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주차요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내고 싶었다. 김태경 씨의 노력에 영향을 받은 허진희 씨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서면시장번영회의 시설관리 업무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현장을 뛰어다니는 총무를 보좌할 문서 행정직원이 필요했다. 회의록 문서 작업을 하고 230개가 넘는 상가마다 고지서를 나눠주는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11월에 가장 나이 어린 신입직원이 채용되었지만, 첫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근로계약서 안에는 네가 잘못하면 민사소송도 붙을 수 있고 형사로도 고발하고 막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겁나잖아요. (김태경) 총무님이 이건 아니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신입직원이 따지니까 회장단은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려고 계속 회유하고 협박했다가 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업무를 시키는 거죠. 제가 할 업무를 이 사람한테 시키고 모르면 계속 괴롭히는데, 그 사람 (신입) 입장에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둘러싸여서…. 직원이라고 해서 막 하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노무사도 같이 협박하고 부회장이 사인하라고 윽박질렀어요.”

하루는 여자 화장실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신입직원이었다. 진희 씨는 2015년 입사할 당시에 자신을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반성을 했어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진짜 이래 살다가 제2의 신입, 제2의 허진희를 만들겠구나 싶었고, 김태경 씨는 공청회를 열어서 시설이 잘못되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여기 계량기가 있을 곳에 없고, 당신 가게는 계량기가 뒤바뀌었다고 말했어요.”

허진희 씨도 직원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용기를 냈다. 번영회 대의원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그동안 경리직원이 알 수 있는 만큼의 내부 비리를 사실 그대로 폭로했다. 회장단이 벌금 30만 원을 안 내기 위해서 상인들이 낸 관리비로 과도한 변호사 비용을 지출했고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 공사 수주는 정관에 따른 절차를 무시하고 회장단의 친인척이나 지인에게 맡겼던 문제, 공사비용을 과다 지출했던 것 등 사실 그대로 폭로하자, 연루된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번영회 대의원 회의에 참석한 상인들이 진희 씨를 둘러싸고 위협했다. 손가락질하고 행패를 부렸다.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진희 씨는 직원들을 위해서 참고 견뎠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저 고민 많이 했어요. 내가 둘러싸이고 잘릴지언정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려도 나는 내 할 말을 한 거예요.”

휴일이 되자 서면시장 상인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경리직원의 폭로 내용이 사실인지 궁금했을 거다. 진희 씨는 회장단의 부정과 비리, 부조리를 상인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허진희 씨가 법원으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포스터 하나를 발견했다. 노동권익센터에서 노동 상담을 해준다는 안내문이었다. 그걸 휴대전화로 찍어서 주차 부장님께 알려드렸다.

“주차요원은 평일에 휴무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노동권익센터로 문을 두드렸어요”

주차요원들은 비 피할 곳도 없는 길 위에서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했지만, 주차비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고 회장단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김태경 씨의 노력으로 번영회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였지만 그때까지는 노동조합이란 걸 몰랐다. 노동권익센터에서 부산일반노동조합을 알려주었다. 서면시장같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동아줄을 잡은 양 민주노총을 찾아갔고 부산일반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20년 12월의 일이었다. 김태경 씨가 부산일반노동조합 서면시장번영회 지회장을 맡았다.

60년 전통의 서면시장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번영회 회장단이 노동조합을 반길 리가 만무했다. 회장단은 큰 비용을 들여서 노조의 활동을 마비시킬 수 있는 노무사를 들였고, 노동조합을 흔들었다.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번영회 회장단은 나이 많은 주차요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팔을 꺾고 카드단말기를 빼앗아 일을 못 하게 방해했다. 주차요원들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종용했다. 회장단의 끈질긴 협박과 괴롭힘을 주차요원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주차 아저씨들은 2021년 4월에 탈퇴하셨어요.”(허진희)

회장단은 또 교섭에 참석하는 김태경 지회장을 사업장 무단이탈로 징계 회부했다. 7차 교섭을 할 때쯤에 조합원은 사무직원 세 명만 남았다. 회장단은 시간을 끌면서 노조를 궁지로 몰았다. 김태경 씨는 교섭하는 동안 혹여나 실수할까 봐 숨소리도 제대로 내보지 못했다.

“월차 쓰고 연차 써서 교섭에 참석했지만 우리는 잘 모르니까 교섭하는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하고 지켜봤어요. 우리 (부산일반노조) 위원장님께 다 맡겼고 우리는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차 교섭에 회장이 안 나오더라고요.”(김태경)

의도적이었다. 10차 교섭에 회장이 나오지 않자, 사측 노무사는 교섭을 미루자고 졸랐다. 시간 끌기만 하다간 공중분해가 될 거 같은 위기를 느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어서 그때 교섭장에서 처음으로 김태경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교섭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파업을 하겠다고 쟁의권을 요구했다.

“지회장은 단 하루만이라도 싸울 테니까 권리를 달라고 했어요. 쟁의권도 엄청 힘들게 받았어요.”(허진희)

불과 몇 달 만에 노조는 사라질 뻔했지만, 번영회 사무직원 세 명은 싸울 의지로 노동조합을 지켰다. 지회장인 김태경 씨는 5월 1일 해고를 당했다. 문서 행정직원은 5월에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고, 경리직원인 허진희 씨는 대기발령을 받았다.

2021년 4월 30일, 김태경 씨와 허진희 씨가 지킨 작은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문서 행정지원) 신입직원이 떠날 때는 둥근 달의 반이 잘린 듯한 느낌이었어요.”(허진희)

이제 둘만 남았다. 둘 뿐이었지만 노조는 지키고 싶었다. 회장단이 사무실 여성 직원들을 향해 ‘야’ ‘니’ ‘저게’라며 멸시하던 반말지거리와 손가락질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었다.

“그 사람(문서 행정직 신입직원) 몫까지 내가 더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허진희)

서면시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탄압받는 같은 시각, 부산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와 계약이 만료되고 집단해고를 당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신라대 본관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하고 있었다.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조합원들은 낮에는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신라대를 찾아갔고, 그들의 투쟁을 자신의 투쟁처럼 열렬히 지원했다.

“신라대에 문화제를 하러 갔더니 우리 위원장님이 저더러 머리 쓰는 거 할래? 힘쓰는 거 할래? 하고 물어요.”(김태경)

신라대에 가면 할 일이 많았다. 깃발과 현수막을 달고, 물건을 나르고, 음향기도 날라야 했다. 천막도 쳐야 했다. 태경 씨는 힘쓰는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위원장님이 알았다고 힘쓰는 걸로 딱 정했다고 하더니 부-경 몸짓패 민주 동지한테 ‘얘 몸짓패 한 대요’ 이러는 거예요.”

힘만 쓰겠다던 그는 부-경 몸짓패에 들어갔다. 그는 음치의 박치였다.

“박치의 문제점이 뭐냐면 내 편한 대로 부르니까 힘들면 늘어지고 어떤 때는 빨라지고 혼자만 틀리는 거예요. 되게 많이 틀렸어요.”

하지만 그는 용감했다. 몸치에 박치라던 그가 몸짓패의 일원이 되었고, 몸짓 연습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시켰다. 10차 교섭을 결렬시키고 쟁의권을 획득하던 날, 노동위원회 심문관은 “하루 파업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비웃었지만, 그는 생에 첫 무대에 올랐다. 부산지역에서 수천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몸짓 공연을 했다. 마치 앞으로 기나긴 민주노조 파업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예고하듯이 열정을 쏟아부어 몸짓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2021년 메이데이 노동절은 김태경 씨가 하루 파업하고 해고되었지만, 허진희 씨가 하루 파업을 이어받아서 부산일반노조 서면시장번영회지회는 46일간 파업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출처: 비주류사진관(정남준 사진가)]

김태경 씨가 해고당한 건 서면시장이 처음이었다. 날마다 서면시장으로 출근하고, 날마다 번영회 사무실 앞에서 싸웠다. 번영회에서 회장단 다음으로 자주 만나야 했던 사람은 경찰이었다. 해고자 김태경 씨와 파업하는 허진희 씨 두 사람을 돕기 위해서 연대하는 이들이 올 때면 회장단은 업무방해로 신고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4층 사무실 앞 옥상 공터에서 몸짓 연습을 하는 날에는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번영회 회장단의 핍박이 심해질수록 부산일반노조의 대응도 다양해지고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라대 본관 로비를 점거 농성하던 청소노동자들이 서면시장으로 찾아왔다. 페트병을 두드리면서 서면시장을 행진했다. 번영회 사무실 앞에서 두 사람의 농성을 거들었다. 상인들이 달려와서 욕하고 따지면 가차 없이 “당신들도 자식이 있지 않냐, 자식이 억울하게 잘려서 이러고 있으면 당신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고 맞대응해 주었다. 주로 다수의 중년여성들이 조합원인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이 핏대를 세우면서 상인들을 몰아칠 때면 상인들도 어쩌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회장단은 사무실 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사람은 신라대 청소노동자뿐 아니었다. 서면시장이 인권 사각지대라는 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시민 사회, 여성, 인권 단체의 활동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진보정당의 당원들도 찾아왔다. 노래하고 춤추고 사진 찍는 예술가들이 하나둘 찾아와서 두 사람의 곁에 서 주었다. 외부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번영회 사무실 앞으로 찾아올 때마다 번영회를 비호하는 점포주 상인들이 찾아와서 거칠게 욕을 하고 삿대질하면서 ‘빨갱이’라고 몰아부쳤다.

“회장단이 가장 나쁜 게 자기는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는 거예요.”

허진희 씨가 파업하는 동안 번영회는 직장폐쇄를 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했다. 사무실은 전자키를 달았고, 컴퓨터를 비롯한 기존에 쓰던 비밀번호를 다 바꿔버렸다. 허진희 씨는 46일간의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회장단은 허진희 씨가 일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사무실 밖 회의실 한쪽에 책상을 두고 모든 업무에서 배제한 채 벌을 세웠다. 사무실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한 회장단은 오히려 허진희 씨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주임님 안에 들어가서 일하세요”라고 말하며 녹음했다. 징계사유가 될 만한 근무 태만의 증거 자료를 거짓으로 꾸며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결국 허진희 씨도 그해 11월에 징계해고를 당했다. 부당해고로 판정받고 2022년 3월에 복직하기까지 혹독한 겨울을 시장 바닥에서 선전전을 하고 투쟁문화제를 하면서 김태경 씨와 해고자 복직 투쟁을 했다.

[출처: 비주류사진관(정남준 사진가)]

“해고되고 맨날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보다야 몸을 움직이는 게 좋겠다 싶어서 청년 동지들하고 깃발춤을 연습했어요. 투쟁문화제를 하니까 뭐라도 하는 게 좋잖아요. 깃발춤을 같이 하니까 엄청 재미있더라고요.”(허진희)

김태경, 허진희 두 사람이 번영회 사무실 입구에 회의실을 차지하고 농성을 이어가자,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이 찾아왔다. 학생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연대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투쟁이 길어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물품도 점점 많아졌다. 옥상에 천막을 치고 창고를 만들어서 물품을 보관했다. 회장단이 회의실에 에어컨을 끊어버리면 건설노조에서 에어컨을 연대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손 글씨를 써서 붉은 깃발을 만들고, 현수막을 제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부적을 만들어서 농성장을 꾸몄다. 사진을 전시하고 강연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재구성했다. 두 명이 시작한 투쟁은 열 명이 되고 스무 명이 되고 서른 명이 되었다. 선전전과 투쟁 집회와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면 뒤풀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신라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본관 건물을 점거 농성하고 있을 때, 우리가 가면 해고된 분들이 직접 밥을 하고 밥상을 차려주셨어요. 우리도 투쟁하면 연대 오는 동지들한테 밥을 꼭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요일 투쟁문화제를 할 때면 뒤풀이했어요. 저희가 멀리서 오는 분들께 차비를 드릴 형편은 안 되지만, 뒤풀이라도 해서 대접하고 싶었어요. 연대 오는 동지들께 꼭 대접하고 싶었어요.” (태경)

김태경 씨는 부당해고로 인정되었지만, 회장단은 그를 계약직이었다고 주장했고, 계약종료라며 복직시키지 않았다. 허진희 씨는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직했지만, 대체인력이 경리업무를 하고 있어서 두 달 동안 업무에서 배제당했다. 노동위원회가 원직복직을 이행하라는 압력을 넣고, 두 달이 지나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허진희 씨가 파업하고 해고되는 11개월 공백 기간의 회계장부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경리가 없는 동안 월급이 나갔을 것이고, 공사도 많이 했더라고요. 또 문제는 총회 자료도 안 만들었는데 돈을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1년 치의 공백 기간 장부가 없는 거예요. 그걸 갑자기 들어오자마자 쓰라고 하는 거죠.” (김태경)

현장 복귀는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제가 앉아있는 책상 위에 CCTV를 달아놓은 거예요. 소방문도 잠갔어요. 그거 불법이잖아요.”(허진희)

사무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면서 싸워야 했고, 회장단을 자문하는 노무사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진희 씨에게 지불해야 할 체불임금은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단체교섭은 진도가 안 나갔다.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 자리가 되었다. 진희 씨는 해고자인 김태경 지회장을 출근시켜야 하고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2022년 9월이었다.


# 기록노동자 시야
-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노동자가 담대해지는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 <회사가 사라졌다> , <숨을 참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