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현대의 초한지를 읽다

[서평] <국공내전>(이철의 지음. 2023. 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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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군담(軍談)이 많다. 유명한 삼국지나 초한지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전쟁 이야기를 신나게 읽는 것은 좀 양심에 찔리기는 한다. 장수들의 활약은 멋있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지만, 몇만 몇십만 병사들의 죽음은 단 한 줄로 처리되기 마련이다. 전장에서 생때같은 죽임을 당하는 병사들의 비명이나 인세지옥(人世地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신음은 군담 속에서 잘 들리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전쟁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평화운동의 기치를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쟁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최선이 아닐 때도 적지 않으며, 냉정하게 말해 전쟁이 사회적 진보의 계기가 되는 일도 많았다.

중국의 역사를 보아도 도저히 전쟁이 아니 일어날 수 없어 보인다. 드넓은 대륙에 여러 나라들이 있어 각자 부국(富國)을 추구하다 보면 이웃 나라들과 부딪쳐 싸우게 되고, 지난한 싸움 끝에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평화가 왔는가 하면, 결국 강력한 국가는 점점 부패하기 마련이다. 현대 국가는 민주주의로 고인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잘 작동하지 않음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마당에, 그런 장치도 없던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민중들의 고통이 심해져 가고 참다못한 민중들이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를 계기로 다시 여러 정권으로 쪼개지고 또 이해관계가 부딪쳐 싸우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말마따나 ‘분열되면 통일을 추구하고 통일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분열되는’ 중국의 역사이다. 국공내전은 이 장구한 역사의 최근 판본이다.


진나라가 망하고 민중 반란과 군벌들의 쟁투가 벌어지다가 초와 한의 두 세력으로 정리되고 끝내 한이 초를 멸망시켜 한나라 통일왕조를 열게 된 역사에서 초한지가 나왔고, 그 한나라가 또 쇠약하여 봉기들이 발생하고 각지에 군벌들이 할거하다 위촉오 삼국이 정립된 시기를 그려낸 것이 삼국지이다. 근세에도 청나라가 쇠망하고 반봉건혁명운동과 군벌들의 쟁투를 거쳐 항일전쟁 후 국민당 군대와 공산당 군대의 내전 끝에 공산당 군대가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과정이 있었고, <국공내전>은 2차대전 종료 후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을 다룬다.

평화주의자의 양심에 찔려도 솔직히 군담은 재미있다. 진의 배치와 용병, 양동작전, 성동격서, 허허실실, 우회포위, 돌파, 기습, 유격, 공성전과 고지전, 회전, 도하작전, 간자들이 활약하는 정보전, 다수 적군을 분할해 소수 아군이 다수가 되게 하여 무찌르는 전법 등등, 고래(古來)로 활용되었던 전략전술들이 이 책에 다 등장한다. 그러나 물론 전쟁에서 전략전술이란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상황 판단에 따라 펼쳐지고 승패가 갈리는 것이므로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꼭 밀덕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하다.

군담이 재미있는 것은 무궁무진한 전략전술의 활용을 보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모습 또한 진미(珍味)다.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에 비견할 만한 양대 세력의 수장인 마오쩌둥과 장졔스는 물론이고, 린뱌오, 쑤위, 천이. 푸쭤이, 바이충시, 웨이리황 등 양쪽 군대 장수들의 모습은 삼국지에서 본 수많은 장수들의 다양한 개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투 속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거나 우직하게 자살한 사람들도 있고, 포로가 되어서도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투항하거나 귀순한 경우들도, 마음속에서 적의 사상에 동조하여 귀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 보다가 유리한 쪽에 붙기도 하고, 수세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투항을 선택하기도 한다. 부장(副將)의 의견을 물리치고 자기 전술을 고집하다가 패배하기도 하고, 우유부단하거나 변덕을 부리다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고? 그것은 당신이 삼국지나 초한지를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성격은 역사와 문학의 영원한 주제로서,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1차 국공내전에 대해서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같은 책을 읽고 약간은 감을 잡고 있었지만, 2차 국공내전에 관해서는 오직 ‘2차대전 종전 후 공산당이 국민당 군대를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분명히 군사적으로 열세였을 공산당이 어떻게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낼 수 있었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어 마음이 즐겁다.

국공내전의 역사를 잘 몰랐던 것이 단지 내 무식의 탓만은 아니라고 변명해 본다. 현대사이므로 자료는 엄청나게 많을 테지만, 잘 풀이해서 정리해 준 책은 거의 없다. 취미로 역사책을 좋아해도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런 자료나 논문들을 섭렵하기란 쉽지 않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전투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세(戰勢)의 변화를 잘 갈피잡아 정리한 것만 해도 저자의 엄청난 노고가 느껴진다.

처음 책의 겉모양을 보면 너무 두껍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열 권짜리 삼국지나 초한지도 읽지 않는가. 책을 펼쳐 읽다 보면 결코 두꺼운 책이 아니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저자소개] 이철의
철도노동자로 일하며 40여 년간 기차와 전철을 운행했다. 1988년 철도노조 민주화에 참여하고 노조 주요 간부로 활동했으며 공공부문 노동운동에 복무했다. 20여차례 배낭을 메고 중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어를 익혀 <나, 평더화이에 대하여 쓰다>와 <모택동과 한국전쟁>을 번역하였다. 철도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해남으로 귀농하여 닭을 키우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