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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 자격과 인간의 자격 맞바꾸는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 20년, "근본적 변화 필요성 드러났다"...다음 달 20일 투쟁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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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변정필 기자]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사업주가 사업장 이동을 동의해 주지 않는다. 사장들은 이주노동자를 자신들의 노예라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직장 변경과 선택할 권리를 비롯해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일 오후 1시 용산 대통령실 앞, ‘이주노동자 기본권 제한, 사업장변경 개악하는 정부 규탄 공동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든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의 목소리가 폭우를 뚫었다.

2003년 7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2004년 8월부로 시행되었다. 비전문직 취업비자(E-9)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고용허가제를 성토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20년에 이르도록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비닐하우스 숙소, 차별과 욕설은 여전히 이주노동자 앞에 붙는 수식어다.

10년 약정 무권리 노동자 공급제도 ‘고용허가제’...“근본적인 변화 필요한 때”

그런데 이 고용허가제가 이번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권역별로 제한할 수 있게 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인권단체들은 지난달 말 노동부가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에서 이 안을 제출했을 때부터 사업장 이동의 자유제한에 더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이중으로 침해하는 개정안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5일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이와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9월부터 신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가 수도권, 충청권, 전라·제주권 등 일정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고용허가제는 2003년 도입 당시 인력이 부족한 ‘업종’에 노동자를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법안의 취지와 무관하게 ‘지역 제한’이 더해졌다. ‘업종’이 아니라 이제 ‘지역 인구 소멸’에 대응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에는 같은 업종이라면 이주노동자가 전국적으로 사업장 이동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최초 입국한 지역 내에서만 사업장 이동이 가능해진다.

이주노동자들이 최초 정착 지역에서만 사업장을 이동하게 되었을 경우, 제한된 권역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일자리를 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규모와 맞아떨어질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고용허가제가 법률적으로 도입 취지인 ‘업종’을 벗어났다는 비판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 사유를 어렵게 입증했다고 해도, 재취업할 수 있는 사업장이 권역별로 제한되어 재취업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주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업장 변경 신청을 더욱 주저할 수밖에 없다.

박영아 공익법인재단 공감 변호사는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벗어날 방법이 없거나 재취업을 하지 못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더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박영아 변호사는 “인력 제공만이 이주노동자의 유일한 존재 이유 인양 체류자격의 조건이라는 명목으로 노동권과 기본권을 마구잡이로 제한하는 것은 체류할 자격을 부여함과 동시에 인간로서의 자격을 박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용자의 편익 극대화를 위한 개정을 거듭해 온 고용허가제가 마음대로 사직도 못하는 노동자를 10년 약정으로 공급해 주는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라며 “이번 개악안은 오히려 고용허가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출처: 변정필 기자]

[출처: 변정필 기자]

고용허가제는 ‘강제노동’...다음 달 20일 집중 투쟁 예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번 “개악”에 대해서 ILO에 보고하고 적극 대응하며,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2021년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인 제29호 강제노동금지 관련 협약을 비준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협약의 효력이 생겼다. 노동계는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하여 고용주가 노동자의 의사에 반하여 노동을 강제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노동’이라고 보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부본부장은 “정부가 겉으로는 사회통합을 외치면서 국제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중삼중의 인권침해이자 ILO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도 어긋나는 독소조항 개악 안을 밀어붙였다”며 “이주노동자를 이동 제한의 울타리에 가둔 채 인구 위기, 지역소멸을 왜 이주노동자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와 같은 내용을 ILO에 강제노동과 관련된 국제협약 위반으로 보고하는 한편, “8월 20일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20일에는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철폐 △ILO협역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을 요구하는 민주노총과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결집하는 투쟁대회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