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하루 5만 원 보장도 안 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에 지적 쏟아져

OECD 국가 중 상병수당 제도 없는 유일한 나라지만…4명 중 3명 ‘상병수당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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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도입을 찬성하지만 현재 제도는 지원 범위나 금액 등이 실제 아프면 쉴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적극적 개선이 필요하고, 건강보험 보장 범위도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시범사업 지역을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등 대도시로 하지 않고 왜 특혜를 주듯 협소하게 선정해 1년이 넘게 시행해 오고 있는지 정책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효과 있게 폭넓게 전국적으로 도입, 실시 바랍니다.”

“주부도 아프다. 저소득층 및 영세 자영업자들 그리고 영세 농부들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5만 원 안팎의 상병수당은 솔직히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할 정도로 금액이 너무 적습니다. 제가 가장이라 쉬면 생활비가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아프면 죽음이라는 정말 절박함으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고,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를 포용하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쉬면 동료들이 힘들기에 아파도 눈치 보며 쉬질 못합니다. 대체인력이 필수입니다.”

-<상병수당 제도 관련 경험 및 인식 조사> 주관식 의견 중-

상병수당 1단계 시범사업 관련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시범사업 수행 지역 범위, 급여 수준, 최대 보장 기간, 지원 대상을 모두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부는 ‘아프면 쉴 권리’로 요약되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보장 수준이 현저하게 낮고, 이주노동자, 65세 이상의 고령의 노동자 등의 취약계층을 제도에서 소외시키며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과 의료 및 보건 시민사회단체들이 속한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은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득 ·고용 걱정 없이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조기 도입”을 촉구했다.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은 ▲시범사업 대상자의 축소(소득하위 50% 취업자) ▲고용 보장 등 안전망 미구축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 보장액과 보장 기간 ▲65세 이상의 고령의 노동자, 단시간 불안정 노동 및 가사노동 종사자, 이주노동자의 배제 등을 상병수당 시범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지난 6월 14일부터 7월 2일까지 실시한 ‘상병수당 제도 관련 경험 및 인식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상병수당 제도와 관련해 보완해야 할 점을 피력했다. 해당 조사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됐으며, 현재 취업 중이거나 과거 취업 경험이 있는 전국의 19세 이상 시민 총 634명이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 상병수당 제도와 현재 시행 중인 시범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답변이 52.1%,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는 응답이 26.3%로, 응답자 4명 중 3명이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현재 시행 중인 상병수당 시범사업 역시 응답자의 87%는 모르고 있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병수당 제도와 법정 유급병가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지만, 상병수당 제도의 필요성이 국민들에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내용에 대해서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시범사업에서 보장하는 보장액은 소득과 상관 없이 모두에게 최저임금의 60% 수준(하루 기준 4만 6,180원, 월 110만 원)을 보장한다. 보장 기간은 최대 90~120일이다. 위의 인식조사에선 급여 수준이 충분치 않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93%, 최대 보장 기간이 짧아 이를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은 71%를 차지했다.

더불어 2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경우 제공 대상을 소득 하위 50% 취업자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에 제공 대상 범위가 협소하므로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94%에 달했다. 강성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근로형태, 연령, 국적 등을 기준으로 적용 범위가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단계 시범사업에서 소득에 따라 대상을 더욱 축소시켰다”라며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보장을 위하여 시작하였지만, 대상자 측면에서 보편적 사회안전망 기능은 약화되어 가고 저소득 대상만을 위한 선택적 복지제도로 변질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은 상병수당과 더불어 필요한 연계 제도들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ILO는 법정병가와 상병수당을 묶어 유급상병휴직으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손실된 노동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정의한다”라며 법정병가의 법제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진우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법정 유급병가 제도와 상병수당이 모두 있는 국가들에서는 상병 수당을 지급받기 전까지, 즉 대기기간 동안 쉴 권리와 그동안의 소득을 함께 보장하는 제도로서 법정 유급병가 제도를 활용한다”라며 “법정병가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한국, 아일랜드, 멕시코 정도”라고 덧붙였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배제하고 있는 이들, 쓴소리 쏟아내

이날 기자회견엔 상병수당 제도의 설계와 운영, 평가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노동자 등 당사자들이 나와 상병수당에 대한 구체적인 제언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에서 간병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문명순 씨는 “환자의 모든 일상생활에 함께해 각종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수면과 휴식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 근골격계 등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부분 가계의 생계를 담당하고 있어 일하다 다쳐도 다쳤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짧은 휴식과 불안정한 몸으로 현장에 복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 씨는 “의료보험도, 산재보험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제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내용을 보면 그동안 품어왔던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라며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건강권마저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간병서비스를 제공받는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지부장은 배달노동자들의 건강권 실태를 소개하며, “특수고용 프리랜서 노동자가 700만 명을 넘는 시대에 하루빨리 제대로 된, 보편적인 상병수당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구 지부장은 “배달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겐 병가라는 개념이 없다. 앱을 안 켜면 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기본급이라는 건 없고 배달 한 건 한 건의 수입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구 지부장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상병)수당이면 배달노동자는 수당 포기하고 차라리 일을 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하루 8만 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으로도 생계가 너무나 빠듯한데, 그것조차도 안 되는 수당이면 그건 쉬라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고위험 노동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병수당은 누구보다 필요한 제도지만, 상병수당 시범사업에서 이들은 제외돼 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건강보험료도 내고, 세금도 내고 모든 의무를 지고 있는데, 왜 상병수당 시범사업에서 제외돼야 하냐” 라며 “한국에 이주민이 236만 명 있고, 그중 절반 이상이 노동하는 이주민들인데, 여러 가지 차별 중 너무나 힘든 것이 건강권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외국인 건강보험은 한 해 5천억 원 이상 흑자라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젊고 아파도 병원에 잘 못 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 건강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건강보험료를 걷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라며 “상병수당을 도입한다고 하면서, 시범사업에서 대한민국 국적자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은 이주민, 이주노동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영업자도 상병수당 제도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송승리 씨는 “자영업 특성상 거래처의 대금 지급일이나 진행하는 프로젝트 기간에 따라서 노동은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수입이 존재하지 않는 때가 발생하기도 한다”라며 “상병수당을 신청하기 위한 조건으로 직전 3개월의 평균 매출이 기준이 된다면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그 조건에 해당하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